전 세계에서 종교서적을 빼고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다. 67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4억 5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하지만 이 작품이 처음부터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7권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12곳에서 계속 출판 거절을 당하다 블룸즈버리라는 출판사를 통해 간신히 책을 내는데 초판이 고작 500부에 불과했다. 또 지금은 5 조가 넘는 재산가이지만 그녀가 처음 받은 인세는 겨우 250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근래 20년간 가장 인기 있는 문학 작품인 해리포터 시리즈를 어떤 이들은 그냥 아이들이 보는 판타지 소설일 뿐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해리포터를 재미난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 선과 악, 우정과 사랑, 운명의 변화와 성장, 영웅담 등 문학이 가진 다양한 요소가 잘 버무려진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여러 가지로 표현했다. 몸을 움직여 춤을 추고, 아름다운 소리로 음악을 만들고, 선과 색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말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문학이 뭔가 대단하고 어려운 게 아니다. 말로 하던 것에 문자가 만들어진 뒤 말과 글로 하는 걸 묶어서 문학이라고 한 것이다.(말로 전하면 구비문학, 글로 전하면 기록문학이다)
결국 문학은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하나의 형식인 셈이다. 또 같은 주제와 내용도 짧게 쓰면 시, 길게 쓰면 산문, 상상을 가미하면 소설, 대사와 행동이 중심이면 희곡(드라마)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나눈 것을 문학의 갈래 혹은 장르(종류를 뜻하는 프랑스어)라고 한다.
가장 오래된 기록 문학의 아주 초기 형태는 이집트 피라미드에 남겨진 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약 2350년경 만들어진 이집트 우나스 왕의 피라미드 동서남북 벽면에는 고대 이집트 글들이 가득 새겨져 있는데 이를 ‘피라미드 문서(Pyramid Text)’라고 부른다.
우나스 왕의 피라미드에서 최초의 피라미드 문서 283개가 발견되었는데 일종의 주술적인 주문들이다. 왕이 죽은 후 장례식 동안 낭송된 걸로 추정되는 데, 주로 사후 세계에서 잘 살기 위한 안내와 그곳에서 부활해 권력과 영광을 누리며 영원히 살 길 기원하는 내용들이라고 한다.
오, 우나스 왕이여!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오시리스의 왕좌에서 다시 살 것입니다. 당신손의 지팡이는 살아 있는 것들에게 명령을 내릴 것이며, 당신의 연꽃 모양 지팡이는 죽은 자들에게도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 피라미드 문서, 주문 213번
예시처럼 피라미드 문서는 종교의식 문구에 가까우면서도 염원을 담은 글이다. 아마도 노래처럼 부르던 주술적인 내용이 일정 수준 정형화되어 시처럼 낭독되고, 이것이 문자로 기록된 걸로 추정된다. 하지만 좀 더 세련된 형태로 문학의 모습을 갖춘 건 좀 더 시간이 흘러 ‘서사시’로 나타난다.
서사시는 주로 신과 영웅, 건국, 전쟁 같은 큰 사건과 인물에 대해 시간 흐름에 따라 구체적인 일들을 기록한 이야기 형태의 시를 말한다. 최초의 서사시는 기원전 약 2000년부터 수메르인들이 쓴 ‘길가메시 서사시’이다. 길가메시는 기원전 2800년경 수메르의 초기 도시국가 우르크를(현재 이라크 바그다드 남쪽 부근) 126년간 통치했다고 알려진 왕이다.
사후 그의 치적과 영웅담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로 전해지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수메르어, 아카드어, 히타이트어 등 여러 문자로 일부가 기록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나중에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묶고 정리한 것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1853년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네베 유적지에서(현재 이라크 모술 부근) 발견된 것이다. 기원전 약 1200년경 제작된 걸로 추정되는 12개의 점토판에 아카드어로(아시리아,바빌로니아인이 사용했던 문자) 기록되었다.
내용은 위대한 영웅 길가메시 왕의 모험과 생애에 대한 것으로 전형적인 서사시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길가메시 왕은 3분의 2는 신, 3분의 1은 인간으로 엔키두라는 친구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숲을 지키는 괴물을 처치하고, 여신과 싸우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신의 황소를 죽이고 신의 노여움을 사 친구 엔키두는 죽는다.
길가메시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그 답을 찾아 영생자 우트나파시팀을 찾아 여행을 한다. 하지만 불사의 방법을 찾지 못하고 길가메시 역시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종이책 분량으로 수백 페이지가 넘는 이 서사시에는 신, 창조, 우정, 사랑, 모험, 운명, 삶과 죽음 등 다양한 주제와 교훈이 담겨 있는데 가장 큰 주제는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하려는 욕망에 대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우트나피시팀(영생자)의 이야기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 일부 있다는 점이다.
신들이 홍수로 인간을 벌 주기로 했는데, 사제였던 우트나피시팀은 자신이 모시는 신에게 미리 이야기를 듣고 배를 만들어 살아남는다. 그 뒤 신의 축복을 받아 그와 그 아내도 신이 되어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홍수설화는 성경에 있는 내용과의 유사성으로 지금도 여러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좀 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흔히 기원전 8세기의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최초의 서사시라고 학교에서 배우는데, ‘길가메시 서사시’가 이보다 약 15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서사시가 담긴 점토판의 발굴과 해석 자체가 비교적 최근인 19세기인 점과 수천 년에 걸친 고대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아직까지는 폭넓게 알려지지 못했다. 따라서 처음과 끝이 있는 서사 즉 이야기의 구조를 가진 최초의 문학 작품은 ‘길가메시 서사시’이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학의 최초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또 학자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지만 완전히 전해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소설은 대체적으로 로마시대 아풀레이우스가 라틴어로 쓴 ‘황금당나귀’를(원제: 전 11권으로 된 변형담) 꼽는다. 기원후 200년경의 소설로 젊은 귀족 루키우스가 당나귀로 변해 겪는 모험담이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액자식 구성이며, 유명한 큐피드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도 있고 전문가들은 이 소설이 그리스로마 신화의 뼈대가 된 걸로 평가한다.
기록으로 남은 우리의 최초 문학 작품은 고조선의 시가인 ‘공무도하가’와 고구려 2대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이다. 임과의 이별을 노래한 ‘공무도하가’는 고조선 때라는 것만 전해지고 정확한 창작 연대나 작자를 알 수 없다. 송나라의 ‘악부시집’과 중국의 다른 책에 먼저 기록되었고 실제 우리 문헌에 기록된 건 조선 정조 때 한치윤이 엮은 ‘해동역사’에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록 된 고구려 시대의 ‘황조가’는 기원전 17년경 지어진 것으로 이 역시 이별의 슬픔을 노래했다. ‘공무도하가’보다 시기는 늦지만 우리 문헌에 기록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우리 문학의 뿌리는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종교의식과도(제천) 관련이 있다. 제천 의식 중 번영과 안전을 기원하며 집단적으로 노래와 춤을 추었는데, 거기에서 노래(시)와 이야기(서사)가 시작된 걸로 본다. 가장 오래된 것은 ‘구지가’로 기원후 40~50년에 만들어진 걸로 추정되며 일연의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실려 있다.
‘구지가’를 집단 가요라고도 하는데 ‘공무도하가’, ‘황조가’ 보다 뒤의 작품이지만 이는 실제 전해진다는 측면의 이야기다. 문학의 기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기록되거나 전해지지는 않지만 ‘구지가’ 외에 ‘공무도하가’나 ‘황조가’보다 먼저인 다른 집단 가요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한글 창제 전의 작품으로 일정한 형식을 갖추는 걸 중요하게 여긴 최초의 한시는 612년 을지문덕 장군이 지은 ‘여수장우중문시’이다. 수나라군 대장 우중문에게 퇴각을 권하며 은근히 조롱하는 내용으로 고구려인들의 용맹함과 기백이 느껴진다.
최초의 소설은 ‘금오신화’로 김시습(1435년~1493년)이 1460년대에 지은 걸로 추정된다. 한문으로 된 소설이고 그 안에 ‘이생규장전’, ‘만복사저포기’ 등 5편의 소설이 전해진다. 최초의 한글 소설은 허균(1569년~1618년)이 쓴 ‘홍길동전’이다. 정확한 시기는 전해지지 않고 1600년대 초반으로 추정한다.
이보다 100년 정도 앞선 1511년 최초의 한글 번역 소설이 있는데 채수(1449년~1515년)가 한문으로 지은 소설 ‘설공찬전’의 한글 번역본이다. ‘설공찬전’은 귀신과 저승에 대한 이야기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사회 체제와 임금을 비판했다고 금서로 지정된다.
왕명에 따라 수거되어 불태워져 전해지지 않고 중종실록(1511년)에 필사되어 시중에 유포되고 있다는 기록만 있었다. 그런데 1996년 이복규 교수가 그 일부를 발견해 세상에 '설공찬전' 이야기가 알려진다. 왕명에 의해 불태워지고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뒤 약 500년 만의 일이다.
오늘날에는 글로 쓰이고 예술적인 것에 한정해서 순수문학이라고 하기도 하고, 재미나 오락에 치중된 것은 급이 낮은 대중문학이라고 구분 짓기도 한다. 서두에 이야기 한 해리포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문학은 계급처럼 층을 나누거나, 고상하기만 하거나, 저 멀리 있어야 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마 길가메시 서사시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해리포터처럼 굉장히 인기있고 재미있는 이른바 대중문학이었을 것이다. 그러했기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전파되고 긴 시간 동안 남겨진 것이다.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 뜨거운 느낌과 감동, 진실 혹은 진리 이 중 그 어느 하나만 있어도 그것은 문학이라 할 수 있고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
비록 500부로 시작했지만 해리포터가 출판되어 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건 조엔 롤링을 담당한 출판기획자의 딸 ‘앨리스 뉴턴’의 공이 크다고 한다. 당시 8살 이었던 앨리스는 아빠가 가져온 해리포터 원고를 읽었는데, 1시간 정도 읽고 나서 “아빠! 이건 정말 다른 그 어떤 것들보다 멋진 이야기예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로 몇 달 동안 후속 편들을 대체 언제 읽을 수 있냐고 아빠를 계속 들볶았다고 한다. 문학이 주는 줄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고, 이게 없었다면 해리포터도 이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