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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생활 Mar 28. 2016

울퉁 불퉁한 동굴벽을 스케치북 삼아, 그림의 기원

모든 사람이 그림을 멋지게 잘 그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림을 그릴 수는 있다.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배울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선긋기이고, 직선과 곡선만 이용해 누구든 쓱쓱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프랑스 화가 고갱도 그림의 기본인 선들에 대해 ‘직선은 무한함, 곡선은 창조를 암시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최초의 그림은 단순한 형태의 직선과 곡선을 사용한 몇 만년 전의 동굴 벽화다. 하지만 벽화들이 그냥 단순하기만 한 건 아니다. 오래 전의 시간임을 감안하면, 어떤 그림들은 이런 단순한 선과 곡선으로 어떻게 이렇게 그릴 수 있었을까 경이롭기까지 하다. 


동굴 벽화는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발견되는데 기후와 식량에 따른 인류의 이동 경로와 관련이 깊다. 약 16만 년 전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가 아프리카 동부에서 나타나 따뜻한 곳과 사냥감을 찾아 세계 각지로 떠난다. 약 12만 년 전 서아시아, 5만 년 전 동아시아, 4만 년 전 유럽, 2만 5천 년 아메리카 등으로 이동한 걸로 추정된다.


 특히 약 1만 2천 년 전까지는 빙하기로 지구의 3분의 1 가량이 빙하였다.(현재는 약 10%가 빙하) 기후는 식량과 더불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고 추위와 사나운 짐승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동굴을 생활 터전으로 삼았다. 그래서 4만 년~ 1만 년 전 사이에 전 세계 각지에서 황토, 석탄 등을 활용해 손가락이나 나뭇가지, 돌 같은 걸로 동굴벽화가 활발하게 그려졌다. 



최초 그림의 발상지, 스페인 엘 카스티요와 인도네시아 슬라웨시섬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는 408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스페인의 '엘 카스티요' 동굴벽화(1904년 발견)였다. 들소, 사람 손바닥, 큰 점들로 그려진 사각형 같은 것들이 발견되었는데 각 그림마다 그려진 시기가 다르다. '엘 카스티요'뿐 아니라 다른 동굴 벽화들도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각 그림마다 그려진 시기가 다르다. 이를 보면 벽화가 있는 장소가 오랜 시간 동안 전해 내려오며 벽화와 더불어 종교적인 의식을 위한 집단의 모임 장소로 쓰였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전용 공간으로 쓰였을 가능성도 높다. 


이 외에도 유명한 선사 시대의 동굴벽화들이 많이 있다. 프랑스 '쇼베' 벽화(1994년 발견)는 기원전 약 3만 2천 년 전, 스페인 '알타미라' 벽화(1879년 발견)는 기원전 1만 8천~2만 2천 년 전, 프랑스 '라스코' 벽화(1940년 발견)는 기원전 1만 5천~1만 7천 년 전으로 추정된다.(방사선탄소연대법, 우라늄 토륨법 등 측정방법에 따라 추정 시기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에서 300개 이상의 동굴 벽화들이 꾸준하게 발견되어 왔기 때문에 학자들은 그림을 비롯한 예술의 기원이 유럽에서 발생했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 '네이처'지를 통해 발표된 연구는 좀 다르다. 호주와 인도네시아 공동 연구팀의 조사 결과, 인도네시아 '슬라웨시' 섬에서 발견된 동굴벽화의 손바닥 자국 그림이 최소 4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의 '엘 카스티요' 동굴에서 발견된 것과 시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또 멧돼지로 보이는 동물 그림도 있었는데 약 3만 5천 년 전 것으로 추정했다. 동물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걸로 알려진 프랑스 '쇼베'의 동물그림보다 약 3000~5000년 정도 앞 선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슬라웨시'의 동굴벽화가 유럽보다 오래된 것일 수 있고 추가로 훨씬 이전의 벽화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간 유럽의 학자들은 동굴벽화를 근거로 선사시대의 도구 제작 수준이나 그림 같은 예술 발달 수준이 아시아보다 유럽이 훨씬 앞선 걸로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 연구로 그게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 따라서 최소 약 4만 년 전부터 유럽의 스페인 지역과 아시아의 인도네시아에서 초기 형태의 그림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쇼베, 알타미라, 라스코의 울퉁 불퉁한 스케치북에 그려진 명화 


발견된 벽화들의 규모나 작품들의 수를 보면 쇼베,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이 제일 유명한 곳이고 그림들이 몇 만년 전에 그려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쇼베'는 가장 최근인 1994년에 발견된 곳으로 코뿔소, 사자,  들소 등 1000점 이상의 그림이 발견되었다. 특이하게 어떤 동물은 다리가 8개이기도 하고, 머리도 여러 개인 것처럼 겹쳐서 그린 게 있다. 


다리나 머리의 수를 셀 줄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횃불을 들고 다니면 벽의 그림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냥 단순히 그림만 그린 게 아니라 보일 때의 느낌까지 생각했으니 기원전 3만 2천 년 전의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현재는 보호를 위해 실제 동굴은 관람할 수 없고 4년간 640억을 들여 만든 복제 동굴이 2015년에 개장되었다.


기원전 약 3만 2천년 전의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1879년 스페인의 사우투올라와 그의 딸이 발견했다. 하지만 그림의 수준이나 상태가 너무 완벽해 유명세를 얻으려고 미리 가짜 그림을 그려 놓은 걸로 고고학자들에게 오해를 받고 사기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알타미라 벽화는 사실적이고 훌륭하다. 유명한 상처 입은 들소 그림은 울퉁 불퉁한 벽면을 활용해 색의 농도가 다양하게 표현되어 명암이 느껴지고 입체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연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라스코'는 2차 세계 대전 중인 1940년에 네 소년이 발견했고, 전쟁이 끝난 1945년부터 3년간 발굴작업을 진행했다. 이 동굴은 1500여 점의 그림과 다른 유물들이 발견되어  ‘선사시대의 루브르궁’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말, 들소, 사슴 등 생생한 묘사로 선사시대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100여 점의 훌륭한 동물 그림들이 있다. 또 5m가 넘는 웅장한 들소 그림은 선사 시대의 동물 벽화 중 가장 큰 것이다.


기원전 약 1만 5천 년 ~ 1만 7천 년 전의 라스코 동굴 벽화(복제품)


울퉁 불퉁한 동굴 벽을 스케치북 삼아 그림을 그리던 시기는 약 1만 년 전 정도까지다.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져 식량인 동식물의 공급이 늘어나고 인류는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1만 년~1만 2천 년 전부터는 바위에 새기는 암벽화가 발달하는데, 농작과 목축 생활의 영향으로 그림에 인간 활동들이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암벽화


우리나라에서는 동굴벽화는 발견되지 않았고, 빙하기 이후의 특징인 바위에 새긴 암각화가 있다. 1971년에 발견된 울산 울주군 대곡리의 반구대(거북이가 엎드린 모습이라는 뜻) 암각화다. 약 7000년~3500년 전 사이에 걸쳐 만들어진 걸로 추정된다. 가로 8m, 세로 2m 정도의 바위에 300여 점의 그림이 있는데 사슴, 멧돼지, 개 같은 육지 동물과 고래, 물개, 거북 같은 바다 동물도 있고 배, 작살, 그물 같은 도구와 사냥꾼, 무당, 어부들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복제품, 용산 전쟁 기념관)


전문가들은 신석기에서 청동기시대까지 같은 장소에 지속적으로 그림이 그려진 걸로 추정한다. 특히 고래 그림 46점이 있는데 고래 몸에 작살이 꽂혀 있고, 배를 탄 사람들이 끌고 가는 등 고래사냥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있다. 학계에서는 세계 최초의 고래 사냥 그림으로 평가하고 있다. 



동굴벽화를 그린 이유는?


왜 동굴벽화를 그렸는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많은 학자들이 보통 성공적인 사냥을 위한 염원(주술) 때문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사냥감들을 그려 놓으면 그 동물을 현실 세계에서 잡을 수 있거나, 동물 그림에 창을 던지면서 사냥의 두려움도 없애고 창에 맞은 짐승이 실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리 지어 뛰어다니는 동물 그림을 통해 사냥감들이 번성하기를 기원했다고도 본다. 


그런 의미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매우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묘사되어있는 그림들을 보면 주술적인 의미 이상의 무엇인가가 느끼지기도 한다. '쇼베'의 말 그림은 말들의 얼굴 표정과 눈동자의 위치, 입을 벌린 정도가 다르다. '알타미라'의 상처 입은 들소는 머리를 파묻고 웅크려 있는 고통의 모습이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너무 생생하게 느껴진다. 또 꼿꼿하게 서 있는 들소는 우람한 몸집과 곤두선 털이 금방이라도 벽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얼마나 생생한 그림이었으면 '알타미라'를 방문했던 피카소는 “알타미라 이후의 그림들은 다 퇴보한 것들이다”라는 말을 했고 실제 '알타미라'의 들소와 비슷한 “황소” 작품들을 남기기도 한다.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 그림(복제품)


피카소가 그린 황소 그림들, 알타미라 벽화와 비슷한 느낌이다 (출처: www.flickr.com/photos/sorarium/8578925321)


피카소의 찬사처럼 사물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그것을 잘 그리려는 혼신의 힘 또는 열정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런 웅장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벽화들이 나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알고있는 많은 역사 속의 훌륭한 예술가의 노력이나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선사 시대의 벽화를 남긴 사람들 역시 치열하게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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