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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도연 Aug 14. 2023

우리가 아무리 슈퍼을이라지만...

밴드 1975에 35억 고소한 말레이시아 뮤직 페스티벌

불볕더위가 지속되던 올해 여름 7월 2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더 굿 바이브스 페스티벌(The Good Vibes music festival)'의 헤드라이너 영국 아티스트 'The 1975'의 만행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한동안 위가 쓰렸더랬다. 무슬림이 주도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는 동성애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는데, 공연 도중 보컬리스트 매티 힐리(Matty Healy)가 이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멘트 후에 동성 멤버인 로스 맥도날드(Ross MacDonald)와 무대 위에서 키스한 것이다. 그리고서 강제로 무대 쪽 전기가 끊어지고 1975는 공연을 멈추어야 했다.


하지만 그 행위의 파급력은 단순히 공연 중단에서 그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그다음 날부터 페스티벌의 일정 자체를 모두 막아버린다. The 1975는 페스티벌 첫날인 금요일 헤드라이너로, 2, 3일 차 헤드라이너인 키드라로이(The Kid Laroi)와 스트록스(The Strokes)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모인 많은 우수한 아티스트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2일차와 3일차가 열리지 못한 굿 바이브스 페스티벌의 라인업


여러 달 전에 티켓을 사놓고 손꼽아 그날을 기다렸을 페스티벌 고어(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같은 공연기획자로서 헤아릴 수 없는 페스티벌 측의 손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저 정도 급의 라인업을 유치하는 페스티벌 제작에 들였을 노력과 시간, 비용이 한순간에 날아간 것이다. 당장 페스티벌 환불(3일권 구매자의 부분할인을 포함)부터 계약서에 따른 프러덕션 마무리, 공연을 위해 체류해 있던 아티스트들 정리(공연을 못 했음에도 아티스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출연료는 100% 지급해야 한다)까지의 현실적인 업무를 악몽 같은 시간 속에서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자의로 페스티벌을 멈추는 국가 치하에서 한번 눈에 났으니, 향후 페스티벌의 행로에도 간섭받을 수 있다는 것은 손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해외 기사에 따르면 1975는 다음날 말레이시아를 황급히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지만 해외 아티스트가 해외 투어 도중 마약 등의 문제로 인해 구금도 되었던 사례가 충분히 있어 문제가 더욱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은 팀 내부에서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공연기획자로서 이들에게 더 화가 났던 것은 이들이 말레이시아 이후 예정된 아시아 투어를 일괄 취소한 것이다. 일단 아시아 지역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 분명하다. 매진에 가깝게 안정적으로 티켓을 팔고 공연을 준비할 계획이었던 프로모터들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더욱이 의도가 빤히 보이는 것은 아시아 투어는 모조리 취소하고 가깝게 붙어있던 롤라팔루자(Lollapalooza) 페스티벌 출연 건은 수행한 것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에 따른 일로 공연을 진행하지 못할 경우, 귀책 사유는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에 계약에 따른 책임이 원만하게 정리될 수 있다. 실상 지진이나 쓰나미, 혹은 삼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경우이기 때문에 극히 적은 확률의 경우다.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취소될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계약의 리스크는 프로모터에게 있다. 현재까지도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었을 때도 프로모터에게 책임이 있다는 계약서 조항이 존재하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하는 투어 및 공연 취소의 사유로 아티스트의 정신 건강 문제(Mental Issue)가 있는데 이 역시 공연기획자는 수용해야만 한다.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고서는....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사유로 인한 취소의 경우 프로모터에게 보장되는 안전장치는 지불했던 아티스트 개런티를 100% 돌려받는 것에 그친다. 일반적으로 티켓 판매 전에 완불해야 하는 공연장 대관비, 홍보비, 티켓 취소 수수료, 일부 선행된 프러덕션 비용 등은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혹은 에이전시 쪽에서 보상하지 않는다. 더욱이 아티스트가 이미 한국에 있는 상황이라면 숙박비나 교통비 등 체류비까지도 책임져야 한다. 공연을 진행하지 못할 경우라도 말이다.


이렇듯 프로모터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피해와 손실을 감수해야만 하는 슈퍼을의 위치이다. 공연 제작과 판매 리스크에 더해 상시 발생할 수 있는 공연 취소에 대한 리스크까지 떠안고 공연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 동남아시아 페스티벌 취소 소식은 재앙같이 느껴졌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제작자 측에서 1975에게 고소해야 한다고 여겼는데 마침 소식이 들려왔다. 1975를 대상으로 35억 7천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넣은 것이다.


The 1975의 The 1975 앨범 커버 이미지


이리 뒤집어 보고 저리 뒤집어 보아도 하나같이 불합리한 조항들 사이에서도 드물게 합리적인 문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아티스트는 공연이 벌어지는 현지의 지침 및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아티스트와의 계약서에서도 공연에 해를 끼치는 아티스트의 품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규정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조항에 근거하여 말레이시아 페스티벌은 아티스트에게 법적인 행보를 시작하였다.


1975의 퍼포먼스가 비판받는 것은 동성애적이거나 정치적인 행위라서가 아닌, 안전지대에 있는 제일세계 국가 남성들이 무책임하게 과시적인 피씨(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한 메시지를 그저 배설해 버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다른 국가보다 더 크게 억압받는 말레이시아 LGBTQ+ 커뮤니티는 이 백인들의 퍼포먼스가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이들이 언뜻 봤을 때 응원하려 했던 말레이시아 LGBTQ+ 커뮤니티에는 아무런 정치/도의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이튿날 비행기를 타고 떠버린 것은 물론이고, 아시아 지역 투어까지 취소해 버린 일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술 먹고 무대 위에서 표현한 오만한 정의감은 애꿎은 페스티벌의 취소와 동성애 커뮤니티에 정치적 후폭풍만을 일으켰다.


우리가 아무리 슈퍼을이라지만... 굿바이브스 페스티벌이 반드시 법적으로 승소하기를 바란다. 물론 한편으로 비록 객기에 가까웠지만 한 출연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로 많은 팬과 뮤지션이 공연 예정인 페스티벌을 일순간에 문 내리게 만드는 국가가 있다는 사실은 참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저 오만한 락스타의 얄팍한 퍼포먼스에 대한 비웃음 정도로 사태는 끝났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태국이나 중국 같은 전제국가에 가까운 나라에서 정말 어렵게 페스티벌을 만들고 있는 기획자 친구들을 알고 있다. 사회적 불합리함을 견뎌내며 공연을 만드는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일은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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