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도연 Jan 10. 2022

초봄에 해바라기 구하기 미션

내한공연 호스피탈리티 라이더는 뭔가요?

빈센트 반 고흐에게 영감을 주었던 꽃인 해바라기가 어느 계절이 피는 줄 아시는지 모르겠다. 힌트는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해’바라기는 뜨겁고 강렬한 해를 따라가는 꽃이고 그래서 8~9월 여름이 한철이다. 아직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전인 3월 초봄, 몇십 센티미터의 줄기가 있는 해바라기 예닐곱 송이를 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 팀에게는 아주 난감한 일이었다. 주변 꽃집들과 끽해야 양재나 고속터미널 꽃시장에 전화 몇 통 넣으면 구할 수 있을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 없다고 했다. 어떻게 하지. 딱 봐도 ‘호스피탈리티 라이더(Hospitality rider)’에서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호스피탈리티 라이더. 음악에 특히 라이브 공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는 봤을 수도 있다. 아티스트가 원하는 것들을 적어둔 리스트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투어를 하는 아티스트라면 일종의 매뉴얼로 구비해두고 공연을 준비하는 현지 업체에 전달한다. 보통은 호텔과 식사, 대기실 스낵과 주류 정도로 크게 구성이 되어 있다. 그밖에 이동수단 등에 대한 언급도 있는 경우가 있고 없기도 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교통이나 숙소에 대한 것은 계약 전 합의를 따로 해두는 편이다.


유명한 아티스트일수록 그 분량이 수십장에 이르기도 하고, 5~10장 이내면 대게 무난한 편이다. ‘차에 넣을 생강 3쪽’, ‘허브 티백’, ‘유기농 딸기’, ‘토스터기’, ‘콜라 15캔, 제로콜라 15캔’, ‘나초’, ‘설탕’ 같은 품목이 한 줄씩 차지하고 있으니까 생각만큼(?) 엄청나진 않다. (아니면 내가 너무 길든 것일까) 수백 명 관객 단위의 공연을 하는 팀의 무난한 호스피탈리티 라이더여도 대부분을 충족하려면 70~12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 술 값과 양에 따라 단위가 크게 달라진다.


모모 아티스트가 얼마나 까다로운 호스피탈리티 라이더를 전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업계 풍문으로 돌기도 한다. A 아티스트는 호텔 방을 전부 블랙으로 꾸며달라고 해서, 동대문 가서 천 떼다가 방을 전부 검게 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실무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비건이자 환경주의자인 B 아티스트의 호스피탈리티 라이더 난이도가 극상이었다, C 아티스트 라이더에는 무슨 무슨 바이크 기종이 정확히 쓰여 있는데 그게 한국에 없는 거라 그것 때문에 아직 내한을 못했다 카더라 류도 있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즈음, 뉴스에서 호텔 방에 스크린, 조명, 대형거울로 꾸미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슨 록스타랑 똑같네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대부분 과거의 것이다. 요즘은 그런 기이한 요청 대신 합리적인 라이더가 온다. 또한 최근 바뀐 경향이라 한다면, 일회용 용기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는 편이다.


호스피탈리티 라이더에 대한 세부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를 말해보려고 한다.


멤버 수와 동일한 숫자의 1달러짜리 즉석복권. 봤던 것 중 단연 재치 있는 품목이었다. 한국 동전 하나 옆에 놓으면 센스도 증가.
속옷, 색상과 사이즈 명시. 아마도 업체가 라이더를 꼼꼼히 읽어보았는지 체크하는 용도로 적어 놓았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검은색 수건 XX개. 보통 검은색을 요구한다. 자주 사는 온라인 업체가 있는데, 타 내한공연업체 이름으로 후기가 적힌 걸 본 적이 있다. 여기도 이거 쓰네 싶었다.
후무스. 이제 한국에서도 조금 대중적으로 되었지만 의외로 구하기가 까다로운 물품이다. 대형마트와 사러가마트, 외국 식자재가게, 이태원까지 찾아갔지만, 하필 그때 후무스 공급이 끊겨 찾기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  
셀러리. 보통 사놔도 입도 대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우리 셀러리와 그들 셀러리가 너무 다르기 때문.
한국 전통 과자. 약과나 전병, 유과 등을 준비하는데 거의 먹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기들 국가 기준으로 달달한 스위츠를 예상했겠지만, 한국 전통 디저트는 서양과 차이가 큰 편이다. 아무튼 그 국가의 전통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건/베지터리안 식사. 이 주제는 아예 따로 다뤄볼 생각이다.
한국에 공식 수입되지 않은 특정 브랜드 스낵 등. 캐X즈 감자칩이 써있다고 반드시 그걸 구할 필요는 없다. 그냥 포X칩을 카트에 집어넣음 된다.
The Chemical Brothers 때 대기실에 액자를 걸어달라고 했는데 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스태프들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액자와 꽃 등을 알아서 차려놓았다. 또한 특정 주류 역시 한국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 판매점에서 추천받은 대체 술을 넣어뒀더니 역시 밴드 쪽 스태프가 직접 챙겨온 술로 일부 바꿔두었다. 현지에서 못 구하는 경우가 많은 걸 알아 미리 다 챙겨 다니는 듯하다.


라이더는 보통 아티스트가 직접 작성한다. 원하는 것을 멤버별로 내놓고 추가하고 빼고 하면서 계속 바꾸는 것이다. 계약 직전에 오기도 하고 계약 직후에 오기도 한다. 업체의 입장으로서 딜레마에 빠지는 일이 있다면 아티스트가 그 라이더에 적힌 것을 거의 먹지 않아서 대부분 버리거나 처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사 후 공연 전에 대기실에 놓여있는 것이라 대부분 배가 이미 차 있고, 공연 전 긴장해서 뭘 잘 안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나절 이상 장을 봐 차려뒀는데 대부분 멤버나 스태프가 입 한번 댄 정도로 끝이 난다. 그래서 언젠가 아티스트 및 관계자에게 질문했던 적이 있다. 이 라이더 중에 몇 퍼센트 정도가 충족되어있으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답은 70% 내외였다. 물론 주관적인 대답이지만 동시에 제법 객관적인 것처럼 들린다.


호스피탈리티 라이더의 70% 정도는 채우자.

혹시나 이쪽 일을 꿈꾸는 사람에게 팁을 하나 주려고 한다. 호스피탈리티 라이더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보고 너무 무리다 싶은 것은 미리 아티스트 측과 이야기하면 된다. 이건 이러저러해서 구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대신 이렇게 하자는 이야기를 솔직히 할 수 있어야 한다.(언젠가 다루게 될지도 모르는 테크라이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호텔 같은 경우도 의례적으로 1인 1실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큰 아티스트 같은 경우는 예외겠지만, 계산해보았을 때 지나치게 금액적인 무리가 있고, 괜찮은 컨디션의 호텔에 2인 1실도 충분하다 싶으면 그렇게 하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하면 된다. 앞으로도 언급하게 되겠지만, 실질적으로 아티스트가 까다로운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 일이란 것은 똑같다. 서로 간에 합리적으로 조정할 여지는 늘 있다. 소통이 어렵고 주저되어서 다 맞춰주는 것보다는 다툴 것은 다투고 조정할 건은 조정해야 서로 즐겁게 공연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다.




꽃집들을 수소문하다가 정말 기적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아티스트가 요구한 숫자만큼의 해바라기를 구할 수 있었다. 가격이 엄청 비쌌고 꽃송이가 정말 작았다. 아무렴 어때! 해바라기를 구했다. 해바라기를 요청했던 건 Joss Stone이었고 당시 스태프가 대기실에서 해바라기를 보고 “우와 해바라기가 있네! 우리 이거 진짜 한동안 못 봤는데 너네 어떻게 찾았어?”라고 했다. 살짝 힘이 빠졌었다. 꼭 안 구했어도 되었던거구나.



초봄 어렵게 구한 해바라기와 조스 스톤

호스피탈리티 라이더에 대해선 정답이 없다. ‘Hospitality’의 뜻은 번역하면 환대, 접대의 의미가 있다. 아티스트를 환대하기 위해 마련하는 것이다. 후무스를 구하기가 어렵고, 높은 확률로 아무도 입에 대지 않을 것이며, 결국 우리 쪽 감독, 스태프들의 냉장고를 채우게 될 것이란 걸 잘 알면서도 이태원이며 분당까지 수소문하게 된다. 코로나가 끝나고 공연이 재개되면 우린 앞으로도 70%가 아닌 100%를 목표로 장을 보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와, 멋진 일을 하시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