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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도연 Jan 12. 2022

너넨 삼겹살 일주일에 몇 번이나 먹어?

해외 아티스트 밥 먹이기

한국에 온 아티스트를 맞이하고 함께 공연할 때 괜히 뿌듯함이 차오르는 몇 단계가 있다. 첫째로 공항에서 팬분들의 격한 환영을 받는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일. 둘째로 공연 도중 팬분들이 준비한 깜짝 이벤트(feat. 떼창)에 감격하는 아티스트를 보는 일. 마지막이 바로 한국 음식을 대접할 때다.


공연 형태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만 내한공연일 경우 공연기획사의 음식 제공 의무는 공연 당일 공연장 세트업 및 리허설 때 끼니와 정찬 식의 저녁 식사가 일반적이다. 숙박의 경우 조식 포함 2박 정도를 제공하며 이 역시 협의에 따라 달라진다. 모 아티스트에게 숙박 1일을 더 제공하는 대신 개런티 비용을 낮춘 경험도 있다. (아티스트 측에서 먼저 제안하였다) 만일 한국에 더 일찍 와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그 기간 알아서 식사를 해결하면 된다. 대게의 경우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쪽이 아티스트 멤버와 세션 및 크루에게 금일봉 형태의 활동비를 주거나, 매끼 법인카드를 긁기도 한다.


그렇기에 의무는 없지만 아티스트가 여유를 두고 한국에 도착했을 때 웰컴 디너 형태로 함께 밥을 먹는 경우가 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아티스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많은 경우 첫 끼로 고기를 먹인다. 코리안 바베큐! 일단 경험상 호불호가 거의 없고, 다 같이 둘러앉아 떠들썩하고 왁자지껄 놀아도 되는 분위기가 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주의 맛을 보여줄 적당한 기회이기도 하다. 혹시 일행 중 채식주의자(세부 분류단계 생략)가 있어도 가끔 고등어 정식 같은 옵션이 있는 곳도 있고 냉면이나 된장찌개, 계란찜 정도도 훌륭하고 배부른 식사가 된다. 늘 그렇듯 그들은 식단 상황에 놀랍도록 유연하며 부드럽게 상황을 맞추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아티스트 및 크루 중 비건 또는 베지터리안이 있는지, 누가 글루텐 프리인지, 어떤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지 등의 상세한 정보를 미리 받아 준비할 수 있다.


한국 음식에 반해버린 미국 청년들 Hippo Campus


미국에서 온 청년들 Hippo Campus가 한국에 온 첫날 우리는 이들을 데리고 고깃집에 갔다. 일단 시끌벅적한 식당 분위기에 놀라고, 익숙한 자세로 집게를 들고 큰 가위로 고기를 썰어대는 희귀한 장면에 눈이 똥그래지더니, 고기를 입에 넣는 순간 자기들끼리 경탄하는 제스처를 교환하며 한참을 먹더니 물었다. “너넨 삼겹살 일주일에 몇 번이나 먹어?” 당시 함께 했던 우리 쪽 스태프가 능청스럽게 “일주일에 한 5번 정도는 먹지. 우린 오늘 아침에도 고기 굽고 왔어. 그러니까 너네 많이 먹어.” 하며 고기를 몇 개씩 앞접시에 덜어주었다. 부러움의 탄식을 한다. 너네는 진짜 좋겠다.


미숙한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알려주는 대로 손바닥에 상추와 깻잎을 놓고  위에 쌈장과 마늘을 야무지게 넣는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옆에 놓여있던 소주병을 슬쩍 가져가려는 디카를로에게 “How dare you! (어딜 감히!)”  라고 말하며 냅다 병을 빼앗았다. 다들  말에 뒤집어졌다. 나는 관대한 표정을 지으며 일잔을 하사해주었다. 한국에선 혼자  따라 마셔.”라고 하면서. (사실 나는 혼자 따라 마시면서 말이다)


처음 만난 사이여도 함께 밥을 먹으면 정다움이 쌓인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나 문화를 불문하고 손님을 환대할 때는 일단 먹이고 보는 것 같다. 고백하자면 우린 한국식 뒤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공연 후 팬들과 그들의 친구의 친구까지 우르르 데려가 통으로 쏘는 뮤지션을 보며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많았다. 일단 우리는 공연을 제작하는 데 참여한 사람이 아니면 뒤풀이에 참여시키는 일이 일절 없다. 또한 만일 팬이나 그 밖의 사람이 자리를 함께한다면 먹은 만큼 각자 엔 분의 일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티스트의 공연 수익 대부분을 그날 호기롭게 써버리는 게 아니라, 그다음 앨범 작업이나 마케팅에 활용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코로나로 공연이 멈춰선 2년은 동의하지 않는 방식의 그런 뒤풀이마저 그립게 만들었다. 코비드나인틴 이 엄청난 녀석들.


갑자기 기억나는 식사가 하나 있다. 미국 포크 가수 William Tyler가 한국에 왔을 때 혼자 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한국에는 거의 인지도가 없는 아티스트고 중국 투어를 가기 전 작게라도 한국에 들러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부담 없이 준비한 공연이었다. 그런데 과거 그와 절친했던 뮤지션이 그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날아오는 사이 자살을 하였다. 에이전시로부터 사정에 대해 먼저 연락을 받았다. 아직 모르고 있겠지만 아마도 공항에서 알게 될 테니, 할 수 있다면 조금 위로를 전해주거나 혹은 기분이 나빠 보여도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온 그는 오랜 비행으로 피곤해 보였다. 택시를 타고 호텔에 데려다주었는데 컨디션 난조에도 처음 온 한국을 둘러보고 싶은 듯했다. 그래서 홍대 일대를 가볍게 산책하였다. 1인으로 움직이는 포크 뮤지션이라 괜찮다면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고 그는 매우 기뻐했다. 한국에서 먹는 첫 끼를 어디로 소개해야 하지 고민하다가 홍대 ‘두리반’이 떠올랐다.


두리반에 자리를 잡은 후 간단히 두리반 투쟁의 의미와 한국 인디 신(Scene)과의 관계를 설명해주었더니 이런 특별한 곳을 소개해 준 것에 고맙다고 했다. 정확한 메뉴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두리반의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음식을 기쁘게 음미했다. 한국 술을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소주 한 병을 시켜 둘이 나눠마시는데, 그가 드디어 친구의 죽음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해 인터넷이 연결되자마자 전화며 문자며 이메일이며 하늘에 떠있던 사이 날아온 온갖 소식의 알람이 한 번에 울려 난리가 났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서 윌리엄 타일러는 죽음이란 것에 대한 자신의 인상적인 견해를 내게 들려주었다.


https://youtu.be/UH4G6YWYJjU


그다음 날 홍대 생기 스튜디오에서 연 작지만, 몹시 좋았던 공연을 잘 마쳤고, 본격 투어를 위해 중국으로 떠나는 그를 배웅했다. 공연을 만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면서 그날 같이 저녁을 먹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했다. 밥이 아주 맛있었고 큰 위로가 되었다고. 나 역시 기뻤다. 절친했었던 친구가 떠난 날 먼 한국에서 혼자 밥을 먹지 않게 했다는 것. 아름다운 기타 선율로 음악을 만드는 William Tyler를 만나게 된 것. 그 모두가.


나 역시 기뻤다. 절친했었던 친구가 떠난 날 먼 한국에서 혼자 밥을 먹지 않게 했다는 것.

밥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건 도무지 다 다룰 수 없는 주제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밥 한 끼의 의미가 그토록 큰데 내가 그걸 나누었던 아티스트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아티스트가 사랑했던 한정식, 에스토니아 아티스트 친구들에게 먹이고 유일하게 실패한 콩국수, 4개국 업계관계자 친구들과 함께 먹은 닭갈비, 미국 아티스트 친구들과 함께 한 바퀴 돈 통인시장, 부산 사는 친구에게 추천받아 간 한국 전통 가정식 음식점에 빠져버린 프랑스 아티스트 친구들, 고깃집 직원의 실수로 환기구가 불타올라 본의 아니게 불 쇼를 경험한 대만 아티스트 친구들... 얼른 또 한국의 맛있는 것들을 먹이며 뿌듯한 엄마 미소를 짓고 싶다. 언제쯤 다시 본격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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