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부터 19년까지 국문과 영문 콘텐츠를 소개하는 DOINDIE라는 한국 인디 음악 플랫폼을 운영했다. 한국 인디 음악 팬으로서 많은 사람이 함께 좋아해 주었으면 했고 더불어 해외 사람들도 한국에 이런 멋진 음악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했다. 대단치 않아도 지구 저 건너편의 어떤 사람이 우연히 케이팝이 아닌 한국 인디 음악에 관심이 생겼을 때 이곳에서 작은 정보라도 알아갈 수 있길 바랐다.
그렇게 제작하는 관련 콘텐츠를 모두 영어로 번역했다. 밴드 정보, 공연장 정보, 공연 정보, 아티스트 인터뷰, 뉴스 및 아티클... 물론 혼자 한 것은 아니고 이 모든 생각을 처음 한 영국인 파트너 패트릭 코너(Patrick Connor)와 함께 평일이고 주말이고 때론 밤을 새워가며 번역을 했었다. 그리고 똑같이 음악을 좋아하고 애정으로 서포트하고 싶어 한 많은 이들의 도움도 받았다.
처음 시작했을 땐 ‘Apple Music’도 없었고 ‘Spotify’도 한국에 없었고 ‘Youtube’도 이만큼의 영향력은 없었기 때문에, 한국 음악에 관한 정보 통로가 확실히 요즘같이 전 지구적이지 않았다. 없던 음악 전문 잡지도 하나둘 점차로 사라지던 시대에, 꾸준히 음악에 대한 정보가 그것도 영어로 함께 나오니 어느 누군가에겐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다.
일본 유명 대형 페스티벌에 모 한국 팀이 공연하게 되었는데, 일본 관계자가 우리 플랫폼에 올라온 인터뷰를 처음으로 그 팀을 알게 되었고 페스티벌 초대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느꼈던 벅찬 감정을 잊지 못한다. 스페인의 유명 페스티벌 담당자도 한국 팀을 초대하는 일에 우리 플랫폼을 많이 참고했고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영국 페스티벌에서 만난 독일 음악 관계자가 한국 음악은 무조건 우릴 통해 알게 되었다고 단언하며 칭찬했을 때 쑥스러우면서도 뿌듯했다.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금전이나 명예를 얻기는커녕 개인 돈과 시간을 퍼붓고 우리가 지금 왜 이걸 계속하고 있는 거지란 의문을 수만 번쯤 떠올리며 매번 답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그런 때는 뛸 듯이 기뻤다.
일단 한글과 영어로 운영을 하고 있으니 언어 소통에는 문제가 없겠다고 느꼈는지 해외 곳곳에서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물론 기본적으로 음악과 관계된 일이었지만 직접적이지 않은 질문도 꽤 있었다. 그저 한국의 누구한테 질문해야 할지를 알 수 없어서, 한국에 있고 음악과 관계되고 영어도 제공하는 우리에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놀랍게도 빅 네임의 연락도 종종 있었다. 한국 공연/투어 시스템이라든지, 마케팅 환경이라든지, 자기네들 페스티벌이나 투어에 추천해 줄 한국 팀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 경험으로 단순히 언어적인 한계만 넘어도 한국 팀이나 회사에도 이런 다양한 기회가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좋으니까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이유로 시작해,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온갖 경험을 쌓으며 어느덧 개인사업자를 거쳐 법인사업자를 내게 되었다. 초반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던 수준을 넘어 이제는 실제로 해외 음악 관계자들과 실체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한 어엿한(?) 사업체가 되었다. 에이전시, 투어, PR, 매니지먼트, 미디어 등 모든 대륙의 다양한 파트너들과 이메일/전화 미팅을 하고, 한국 또는 그들 국가의 이벤트에서 만나고 있다. 물론 코로나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웃음)
어느 정도 친분과 신뢰를 쌓은 해외 관계자들에게 손쉽게 듣는 질문 하나가 바로 ‘한국 사람들은 대체 왜 이메일에 대답을 안 해요?’이다. 무언가 일을 하고 싶어 한국 팀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묵묵부답이어서 결국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수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중에는 우리 아티스트가 아닌데도 내 속이 쓰릴만큼 멋진 기회도 있었다. 미국 커머셜 광고에 들어갈 싱크 계약 같은 것. (실제 일이다)
수년 전 네덜란드에서 온 인턴을 받은 적이 있다. 네덜란드 정부가 지원하는 해외 취업 관련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나라 체류비와 월급에 해당하는 만큼을 장학금 형식으로 학부 마지막 학년인 학생에게 준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회사 입장에선 무급 인턴을 운영할 수 있던 셈이다. 그 친구는 음악 비즈니스에 뜻이 있어 정말 많은 조사를 거쳐 함께 일하고 싶은 한국 회사들에 수십 통의 메일을 넣었지만, 우리를 제외하고 단 한 차례의 회신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러저러해서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다른 회사를 찾아보라는 메일도 없었다고 한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 보내는 이메일에도 대답을 안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거기에 명쾌히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그러게요. 좀 그런 편이죠’ 외엔 말이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에게 해외 비즈니스 및 네트워크에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겐 최우선으로 말을 해준다. “이메일에 꼭 대답하세요.” 당장 뭔가를 하지 못하더라도 관심 보여줘서 고맙고 계속 이야기해보자고 회신을 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이다. 우리의 경우 아침부터 낮까지는 국내, 밤부터 새벽까지 해외에서 온 이메일 푸쉬로 휴대폰이 계속해서 울리는 편이다. 물론 바쁘거나 정신없어 답장할 때를 놓칠 때도 있지만, 이메일 회신을 무엇보다 중요한 업무로 인지하고 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해외 쪽 관계자들과 대면 또는 전화/화상 미팅을 하고 프로젝트를 꾸려가면서 느낀 것은 여기서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한국 사람들 중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하지만 단순히 일반 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을 담당자로 앉혀놓는다고 반드시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결국은 언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태도이며, 그 태도가 쉽게 드러나는 첫 번째는 이메일에 대답을 잘하는 일이라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내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