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도연 Jan 19. 2022

해외페스티벌에 갔더니 다들 오징어게임 이야기만 했다.

탈린뮤직위크 참가기

‘세계지도를 펼쳐놓은 다음 눈감고 손가락으로 찍어 나오는 국가 어디든 가도 행복할 거야.’라고 말하고 다니던 터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해외를 간다는 건 꿈도 못 꾸고 있던 2021년 9월 무렵, 에스토니아의 ‘탈린 뮤직 위크(Tallinn Music Week)’에서 초청장이 날라왔다. 한국 밖을 나가는데 거기에 더해 2년간 바이러스에 의해 강탈당한 것이나 다름없던 음악 페스티벌 참여라니, 무조건 예스 예스를 외쳤다.


발칸 삼국과 북유럽에 속하기도 하는 국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열리는 탈린 뮤직 위크는 쇼케이스 페스티벌이다. 아마 대부분이 생소하게 여길 ‘쇼케이스 페스티벌(Showcase Festival)’은 음악 산업계에서 상업 페스티벌 못지않은 중요한 입지를 갖고 있다. 쇼케이스 페스티벌에는 수많은 음악 업계 관계자들이 모이고, 이들 앞에서 공연하고 싶은 전 세계 아티스트가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물론 일반 상업 페스티벌처럼 음악 팬들도 티켓을 사고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라이브 공연 외에도 갖가지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쇼케이스 페스티벌 ©Henri-Kristian Kirsip


수십에서 때로 수백 단위까지 이르는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쇼케이스(라이브 공연) 외에도 콘퍼런스, 라운드 테이블 미팅, 1:1 미팅 같은 비즈니스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실력을 선보일 기회를 만들어 업계에 눈도장을 찍고, 매니지먼트, 싱크, 투어 등의 회사는 평소 만나고 싶었던 관계자와 미팅을 잡아 페스티벌 내내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스타급도 신인일 때 쇼케이스 페스티벌을 통해 물망에 오른 경우도 상당히 많다.


탈린 뮤직 위크는 매년 5월에 열리는데 20년에는 취소했고 21년 코로나로 계속 연기를 하다 9월 말 오프라인 개최라는 용단을 내린 것이었다. 페스티벌 측에서 왕복 항공권과 호텔을 제공하였고 참가자 신청을 받아 진행하는 멘토링 세션 프로그램 운영을 부탁했다. 6명 정도의 소규모 그룹으로 한국 음악 비즈니스에 대한 QnA, 토론 등 나누는 시간이다.


잔여 백신을 통해 일찌감치 백신을 맞아둔 덕에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133만 명이 사는 에스토니아는 대전보다도 인구가 적다. 모든 국민이 마치 이웃집인 마냥 서로에 대한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이야기는 에스토니아 밴드 I Wear* Experiment를 통해 들었었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은 중세 유럽을 엿볼 수 있는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멋스럽고 아름다운 도시다. 크기가 정말 작아서 탈린의 구석구석을 최대 30분 걸음으로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음악 쪽에서는 통상 업계 관계자를 ‘델리게이트(delegate)’라는 용어로 부르는데 탈린 뮤직 위크에는 지리적으로 발칸과 동유럽에서 온 업계 델리게이트들이 많았다. 아시아에서 온 아시아인 델리게이트는 나를 포함하여 단둘 뿐이었다. 쇼케이스 페스티벌을 몇 번 참여하다 보면 이 세계가 넓기도 좁기도 하여 매번 계속해서 마주치는 이들이 생긴다. 탈린 뮤직 위크에서 2년 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 전과 같이 돌아갈 수 있는 걸까?”

2년 만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국가를 불문하고 음악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런 일도 벌이지 못하고 지내야만 했다. 그렇기에 탈린 뮤직 위크는 또 다른 의미의 축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원래 알던 사이와도 그곳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과도 우리는 그간의 안부와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고, 서로 생존할 수 있었음에 말 없는 응원과 동지애를 공유했다. 또한 회복의 가능성을 엿보게 된 약간의 흥분감과 기쁨도 느껴졌다. 마스크 없이 거리두기 없이 맥주를 마시면서 스탠딩으로 보는 공연도 짜릿했다.


마스크와 거리두기 없는 2021 탈린 뮤직 위크 쇼케이스 모습 ©Henri-Kristian Kirsip


21년 가을 에스토니아에서 놀라웠던 사실 하나는 모든 델리게이트가 내게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음악업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트랜드에 빠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음악을 청취하는 수단이 유튜브나 음악 스트리밍으로 옮겨가면서 그 속도는 더욱더 빨라졌다. 현재 음악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영향력을 끼치는 매체는 몇십초로 영상을 찍어 올리는 Tick-Tok이다. 리스너들의 취향이나 트랜드를 빠르게 잡아내는 것이 일인 만큼 음악 외 다양한 예술 미디어 역시 빠르게 흡수한다. 그러다 보니 되려 한국인인 나만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고 왔을 텐데 말이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것에 대한 소비를 최대한 유예하는 성향 탓이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보았다)


https://youtu.be/zhJl_BxA0IQ

우리와 함께 했던 2017년 부산에서의 I Wear* Experiment 공연


한국에 여러 차례 방문했던 I Wear* Experiment의 드러머 Mikk은 내게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장면 장면 하나를 보며 미친 듯이 서울이 그리웠다고 말했다. 골목 건너 나오는 편의점을 보면서 내가 아는 풍경이라며 반가워했고, 특히 소주를 마시는 장면에서 "크 나도 저 맛을 알지!!" 라면서 과몰입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투어로 방문했던 중국이나 일본은 영화를 봐도 그런 비슷한 감흥이 없었는데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유독 그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와 자신도 신기했다고 했다. 한국을 특별한 기억으로 남겨둔 것 같아 괜히 뭉클하고 고마웠다.


탈린 뮤직 위크는 유럽 특히 발칸, 스칸디나비아 쪽의 현 음악이 어떤지 목격할 수 있었던 페스티벌이었다. 또한, 운영도 더할나위 없이 매끄러워 인상이 깊었다. 지리적 특성 탓에 한국과 교류가 적은 지역이라 현지 아티스트 및 델리게이트가 한국에 보이는 관심도 높았다. 물론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코로나 상황 탓에 어떤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나눌 수 없었던 점은 매우 아쉬웠다.


언제 이뤄질지 모르지만, 페스티벌에서 만난 에스토니아 관계자와 동유럽 아티스트들의 한국 방문과 익스체인지 프로젝트에 대해 꾸준히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난 덕이다. 코비드 19 감염병 발발 이후 정말  음악계가 얼마나 처참한 시간을 보냈는지 한국 바깥에서   이해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탈린 뮤직 위크에서 무언가 희망이 깃든 이야기를 하고 왔던 사실이 새삼 놀랍게 여겨진다. 과연 우리는 전과 같이 돌아갈  있는 걸까.



작가의 이전글 한국 사람들은 대체 왜 이메일에 대답을 안 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