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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본위너 Jul 09. 2024

엄마, 우리 단둘이 맘 속 여행 갈까?

이효리 덕분에 나도 엄마 생각을 해본다.

엄마 생신이라 친정에 다녀오며 너무 많은 생각이 들었다. 72세, 엄마의 얼굴이 이제 꽤 달라졌다.

여장부이자 세상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던 엄마가

다시 보이고, 자꾸 엄마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왜 한쪽 가슴이 이렇게 시리지.


시니어 모델을 해도 될 만큼 빠지지 않을 스타일인데, 지난해부터 부쩍 신경 쓸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쳐 눈가에 움푹 그늘이 지고, 수척해져 버린 엄마.

바라보기가 안타까워 앞머리를 쓸어 올려드렸다.

한 번 안아드리고 올 걸 그랬나..

그것조차 후회되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 안아 줄 날들이 아직 많이 있는 것 맞겠지?


구글 서치를 하다가 가수 이효리 씨 기사를 보았다.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그녀가 엄마와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을 찍었다. 뒷북일지 모르지만 얼마 전에야 대략의 스토리를 알게 됐다.

대한민국 톱스타와 그 톱스타를 키워낸 엄마와의 여행이라니. 얼마나 알콩달콩 화려한 시간을 보낼까. 부러운 마음으로 시간 나면 나중에 한 번 봐야지 하고 지나치려는데, 내 멋대로 상상한 그 그림은 아닌 듯했다.


그녀들은 현실감 있게 엄마와 딸 사이에 다소 적막도 흘렀고, 아버지 병간호를 하시던 어머니가 어렵게 여행을 결정한 케이스였다.

이효리의 개성 있게 예쁜 얼굴이 어머니의 얼굴에서 스치긴 했지만, 화려한 그녀가 쌩얼로 있는 그대로를 우리에게 보여주던 그런 소박하고 꾸밈없음에 더 가까운 분이었다.


엄마와 허심탄회하게 지난날의 어려움을 토닥토닥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니 여고시절의 그녀가 생각났다.

같은 고등학교, 옆옆 반 학생이었던 이효리가 졸업 후 연예인이 되었을 때, 연예인 될 만큼 예쁜 사람이 마땅하다며 주변 친구들 모두가 인정하고 응원했다.

아름다움 덕분인지 그녀가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가난했던 시절, 이발소집 막내딸로서 치유하고 싶은 부분, 삼십 년이 넘은 시간 동안 엄마와 풀지 못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던 것 같다.


이젠 전 국민 앞에서 가족들까지 보여주며 가감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그녀에게서 배우고 싶은 부분은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것.

자신의 이야기로 자신이 초라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고, 자신의 어두웠던 면이 드러날까 조바심 낼 필요가 없는 인생의 시점은 보기만 해도 힐링이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울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며 여전히 서로를 이해 못 하는 부분도 보였지만, 어릴 적에 먹던 오징어국을 앞에 두고 못 먹었던 오징어를 더 먹고 싶다는 사소한 이야기조차 자신에겐 결코 사소하지 않은, 해소해야 할 감정이었다.




난 과연 엄마랑 단 둘이 여행을 간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엄마랑 나는 정반대의 MBTI를 가져서 가끔은 놀라울 정도로 다름을 알아차리지만,  다름이 이해 못 할 이질감이 아니었기에  엄마는 항상 나의 롤모델이 되어준 듯하다.


40대 중반.

혹여 어느 날 엄마의 기억이 사라질까 봐,

혹여 엄마가 아빠처럼 아파질까 봐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나이 앞에서, 내 기억의 단편들을 남겨놓고 싶다. 별 이야기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뭔가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쓰지 않으면 훗날엔 쓸 수 없을지도 몰라서.


엄마,

아빠 간병하느라

우리 단둘이 여행은 못 가지만,

그 대 단둘이 맘 속 여행 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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