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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애써 얘기하고, 왜 민망했냐고요?

앞으론 나도 덤덤해지기로 했다.

by 리본위너

시드니에서 잠시 살면서,

시드니에서 바라본 시드니에 대해서 쓰려고 하니 재밌다.


재밌다는 말의 포인트는

한국에서 바라본 시드니와

시드니에서 살며 바라본 시드니는

같은 점도 있지만 꽤 다른 점도 있다는 것을 몸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주가 이민자의 나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론적으로야 알았다지만,

생활하며 살기 전 내가 체감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면,

시드니에 오면 호주 사람들(백그라운드가 다른 나라가 아닌)을 대부분 보고, 만나고, 생활하는 줄 알았다는 것! 지역마다 차이가 크겠지만 얼마나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호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상상하지 못했다.


시드니에 와서 초기엔 전화통화를 해야 할 일이 꽤 있었다. 이것저것 세팅해야 할 일들로 전화통화를 시도해야 했다. 통역서비스도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해야지 싶었고 전화를 하고 난 후에는 어느새 '어느 백그라운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영어가 잘 들렸지? 또는 왜 영어가 안 들렸지?'를 따져보고 있었다. 인도 분이었나? 어느 날은 호주 분이었나? 아님 어디? 어느 날은 중국분이었나? 모든 게 처음이라 내가 마주하는 인종에 대해 궁금한 날이 많았다.


그 와중에 피식 웃음이 나오는 해프닝이 하나 있는데,

아이가 할 만한 액티비티를 찾다가 전화로 문의해야 할 것이 생긴 날이었다. 외국인과의 전화통화는 우리의 몸짓, 눈빛이 전달되지 않으니 원활하게 잘 통화가 되려나 하며 긴장도 되기 마련이다.

부럽게도 익숙한 사람에겐 별 것 아니겠지만.


그날도 난 살짝 긴장함과 더불어 그곳에 전화를 했고,

가격을 묻고, 요일을 묻고, 미리 준비한 멘트들로 진행방법도 물었고 '휴, 전화 잘 마무리했다.' 하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그리고 주 뒤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알게 된 사실..


여러 번 Pardon? 하며 내용을 되묻고 확인하며 커뮤니케이션하던 우리.


그분은

.

.

한국인이었다...

묻고 또 확인하며 나의 의도를 전하려 애쓰던 그날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분이야 여기가 익숙하다면 그게 별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게 처음인 나는 뭔가 민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 내가 그때 어떻게 영어를 했더라;;'

쓸데없이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한국인인 내가 동의하는 말 중에, 한국인이 끼어 있을 때 영어 쓰기가 젤 민망하다는 말이 있다.

오히려 외국인이면 내가 당신의 나라말을 어떻게 다 수 있겠어요? 하는 뻔뻔함으로 좀 밀어붙이기도 한다지만 말이다.


예전에 내 친구가 해주었던 이야기도 오버랩됐다.

이웃이 이사를 왔는데 아이들이 너무 시끄러워 저녁마다 생활의 집중이 안 되는 탓에, 이웃집 여성을 만나 영어로 열심히 설득하였는데 풍기는 느낌이 일본인 같았다고 한 적이 있었다. 며칠 뒤 알고 보니 일본에서 오래 사셨던 한국인이었다는 에피소드를 듣고 '어머어머'손뼉 치며 깔깔대던 나였는데...


여하튼 시간은 나에게 초창기의 신기함을 넘어 멀티 컬처를 이해하는 생활에 익숙해지게 해 주었고, 누군가가 나를 중국인으로 또는 일본인으로 착각한다 해도 '내가 왜??'라고 의아해하던 것을 조금 더 너그러운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점차 Multiculture(멀티 컬처)가 있는 이곳을 이해하고, 이렇게 다양한 이들을 만나 볼 수 있고, 다양한 문화를 한 곳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시각으로 바라보니 또 이런 귀한 순간이 없지 싶다.


어떤 문화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분이 오늘 전화통화의 주인공이었느냐가 이슈가 될 필요가 없이

하고자 하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었고,


내가 호들갑 떨며 민망함의 이슈로 삼았던

'한국인 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영어 썼음'의 일화 또한 한국인과 영어를 쓰던, 누구와 영어를 쓰던 상관없을 만큼 영어 수준을 올린다면 사실 민망할 필요도 없는 건데 하는 생각도 뒤늦게 했다.


"그래, 나나 잘합시다!"


이 작은 경험을 통해 내가 또 성장해야 하는구나를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일상의 어떤 경험도 쓸모없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든 해석을 잘해서 내가 발전하는 데 잘 쓰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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