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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라이트릴 Jan 07. 2024

내가 뽑은 노블이 #10

나의 하이라이트 릴

“얘들아, 우리, 베이스 칠 후배 좀 뽑아야겠다.” 

 선비 매니저님 이었다.

 다른 세션들은 모두 2명 이상 있으나 베이스만 로저스 선배 한명 뿐이었다. 모든 곡을 도맡아 연주해야하는 선배가 걱정되는 것도 있었지만, 부모가 자식을 낳아 세대를 이어가듯 우리도 번식하고자 하는 본능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비행 다닐때마다 후배들에게 음악하는 동기가 있는지 묻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은씨, 혹시 교육원 수료식때 뭐했어요?” “두나씨, 혹시 동기중에 베이스 쳤다는 친구 없나요?” "세원씨, 동기중에 혹시 음악 했다는 친구 없나요?"

 "네, 저희 동기 중에 노블이라고 있는데요, 걔가 베이스 쳤다는 것 같았어요."

 "어머 정말요?"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노블씨 전화번호를 검색해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혹시 83기 노블씨세요? 저는 73기 아로마라고 하는데요. 노블씨가 학창 시절에 베이스를 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혹시 윙스타에서 베이스 칠 생각 없으세요?"

 "저...선배님, 그런데 직접 뵙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오, 뭐지? 이렇게 적극적인 반응 신선한데?'

 "아, 네 그럼 오늘 혹시 시간 있으세요?" 

 "네, 오늘 4시 이후에 시간 됩니다."

 "그럼 4시에 공항 스타벅스에서 뵐까요?"

 "네."


 커피숍에 앉아 기다리는데 매력적인 초콜렛 피부에 건강한 미소를 머금은 노블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노블씨세요?"

 "네, 선배님, 저 그런데 제가 베이스를 오래전에 쳤던 거라서 다 까먹었어요. 윙스타 활동은 어려울 것 같아요." 기대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노블이었다. '그럼 뭐하러 나온거지?'

 "노블씨" 

 "네, 선배님."

 "그냥 윙스타에서 베이스 열심히 치세요." 웃었다.

 "네." 노블이도 따라 웃었다.


 며칠 후 연습실.

 노블이가 처음 인사를 오는 날이었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노블이는 건강한 에너지로 넘쳤다. 오래된 베이스 가방을 열고 지금 하고 있는 곡의 악보를 건네받아 치기 시작했다.

 악보를 보느라 손가락은 바빴고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음, 뿌듯하네.'

 모드들 같은 생각인지 노블이의 건강한 기운에 전염이 되어 얼굴에 미소 가득이었다. 


 노블이의 연습실 일상.

 노블이는 누구보다 먼저 연습실에 와 있곤 했다. 

 헤드폰을 끼고 눈은 악보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들 연습실에 와서 노닥거리곤 하는데 노블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본인 차례가 아니면 늘 헤드폰을 끼고 본인이 들어가는 곡을 합주할 때만 헤드폰을 벗었다. 

 넘버원 선배는 열심히 연습 하는 노블이, 악보만 있으면 되는 노블이가 기특하고 예뻤다. 헤드폰 낀 노블이를 줄곳 불러 헤드폰을 벗겨내고 신나게 이곡 저곡 맞춰보곤 했다.

 베이스 사운드를 즐기는 성실한 노블이의 분량이 많아지며 로저스 선배의 자리를 점점 대신하더니 이제 베이스 연주는 노블이가 전담하게 되었다.


 노블이에게 악보는 필수였다. 공연할 때도 악보는 꼭꼭 챙겨갔다. 악보 덕분에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악보를 넘기는 순간 멈칫해야 하는 작은(?) 단점이 있었다. 

 어느 야외 공연하는 날. 그날따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연주 잘 하던 노블이었는데 바람에 악보가 저 멀리 날아갔다. '딩' 베이스 연주를 멈추고 악보를 잡으러 간 노블이. 순식간에 악보를 잡아(?)와서 다시 연주를 이어갔다. 


 나는 특히 노블이와 음악적 코드가 잘 맞았다. 헤비메탈, 뉴메탈, 하드락, 핌프락, 모던락을 함께 들었고, 마침 독일에서 공연 일정이 있던 린킨파크의 공연 티켓을 함께 구매해서 보러 갔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공연장이라 어렵지 않게 찾아갔고, 앞쪽 스탠딩석이라 기대에 부풀어 줄을 서서 들어갔다. 그런데 아뿔싸. 독일 남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키 작은(?)우리 둘은 독일 남자 장벽에 둘러 쌓여 린킨파크 멤버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라이브의 묘미인 흠뻑 젖은 독일 남자들의 땀냄새를 맡으며 귀로만 들을 수 밖에. 팔을 쭉 뻗어 디지털 카메라(스마트폰 출시되기 전이다.)로 녹화 하면서 작은 화면에 비친 린킨파크 멤버들의 얼굴을 보았다. 나보다 작은 노블이는 그들의 얼굴을 보겠다며 껑충껑충 뛰었다. 팔아프고 다리 아프고 시차때문에 피곤한 우리는 공연장 밖으로 나가서 바닥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좀 더 버텨보려 했으나 피곤함에 무너진 우리는 공연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택시를 타고 호텔에 들어왔다. 

 

 선비 매니저님, 다람쥐 선배, 넘버원 선배 등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노블이를 아꼈다. 다른 베이스 멤버는 필요 없었다. 노블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최고로 만족했고 노블이 자신도 혼자 베이스를 전담하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누군가가 새로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노블이의 일거수 일투족에 안테나를 맞추었고 노블이의 일상 노블이의 고민 노블이의 기쁨에  모두 감응했다.

 요가와 헬스를 좋아하고 웰빙 식단을 좋아하는 노블이, 명상을 좋아하는 노블이 였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담겨 있었고 매일 성장하는 아이였다.

 순수함 그 자체였다. 

 순수함 때문에 노블이의 건강한 마음이 흔들릴 때가 몇 번 있었다. 순수하지 못한 남자 친구를 만났을 때, 또 순수하지 못한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났을 때이다. 멤버들은 늘 노블이 편에서 걱정하고 지켜 주었다. 

 

  윙스타에서 열정을 활활 불태웠던 노블이.

 노블이가 오래도록 멤버들 곁에 머물기를 바랬지만 노블이는 떠났다. 순수하지 못한 남자를 연속으로 만나서 힘들었던 노블이의 마음을 잡아주는 것은 멤버들이 아니라 지금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노블이는 홀가분하게 떠났다. 회사를 떠나고 멤버들을 떠났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윙스타에 살았던 노블이. 내가 뽑았고 너무나 사랑했던 후배기에 그리움을 접고 잘 살으라고 마음속으로 축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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