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에세이 2023.10.19
동생과 나는 내 식구들(남편, 아이들, 시어머니)을 포함해 엄마를 모시고 매년 대단위 가족여행을 다닌다. 8년 전이 첫 시작이었다.
양가 어머니들이 함께 하는 첫 여행이라 기념하고 싶었다. 항공사 직원 티켓으로 항공료의 상당 부분을 절약 했으므로 동생과 나의 여행 경비 중 100만원 가까이 했던 스냅 촬영 비용을 추가해도 좋겠다고 합의했다.
발리에 도착 했을 때, 작가님이 카톡을 보내왔다. “내일이나 내일 모레 저녁 시간 되시나요? 저는 촬영 전에 미리 미팅을 합니다.” ‘오, 나름 철저한 신념 있는 작가네.’
작가님과 차를 마시며 촬영 전반에 대한 안내를 듣고 어느 곳을 갈지 함께 정했다. 우선 풀빌라와 빌라 앞 바다에서 촬영하고, 계단식 논과 숲과 왕궁, 사원이 있는 우붓을 갔다가 해질녘에 스미냑 해변으로 가서 선셋 촬영을 하기로 했다.
작가님은 우리 식구 6명을 태우고 종일 운전하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6시간짜리 촬영 프로그램인데 시간이 훌쩍 넘었음에도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본인의 힐링 장소인 낀따마니 화산까지 데리고 갔다. “이 곳 화산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얼마나 좋은지 사람들이 모릅니다. 여긴 제 힐링 장소에요. 가끔 우울할 때마다 오면 기분이 싹 풀리더라구요. 저 밑에 칼데라 호로 내려가면 제가 자주 가는 커피숍이 있습니다. 커피 한잔에 1000원인데 맛이 기가 막힙니다.”
시간이 많이 초과되어 그날 선셋을 찍지 못했기에 작가님은 출국하는 마지막 날 숙소 체크아웃 시간에 다시 와서 우리 가족을 차에 태웠다. 작가님과 시내를 누비며 사원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세련된 스미냑에 가서 구경도하고 저녁 바다에서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사랑 가득한 선셋을 아주 많이 사진에 담은 뒤에 맛사지 샵에서 피로를 풀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까지 데려다준 작가님과 감사의 인사를 나눈 뒤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발리가 너무 좋아 하루를 추가로 머물었더니 항공 직원 티켓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우리 항공사였으면 출국 날짜 다른 것쯤 문제도 아니었을 텐데 외항사이다보니 정확한 날짜 탑승객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어야 했던 것이다. 더 고민할 새도 없이 나는 다음날 근무를 위해 혼자 티켓 값을 다 내고 집으로 왔다. 동생은 전 날 출국한 상태였고 남은 가족은 본능적으로 작가님에게 연락을 했다. 작가님은 한걸음에 달려와 본인이 아는 괜찮은 호텔을 잡아서 데려다 주었다. 작가님의 보살핌으로 하루 더 지낸 뒤 내가 새로 보내준 항공권을 가지고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었다.
발리 이후에 괌, 코타키나발루, 하와이, 푸켓으로 가족여행을 다녔지만 발리의 기억은 마음 속 깊이 늘 있었다. 코로나로 3년간 가족 여행을 못가니 더 간절해져 이번에 다시 발리에 가게 되었다.
발리 여행 준비에 막바지이던 어느 날 문득 작가님이 생각났다. ‘작가님은 아직 계실까?’
인터넷을 뒤져서 작가님 카톡을 알아낸 뒤 작가님에게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8년 전 발리에서 뵈었던 작가님이 맞으실까요?” “네, 저 맞습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작가님은 20년 만에 만난 베프처럼 반가워했다. 촬영은 2시간, 4시간, 6시간 프로그램 중 6시간짜리를 고르려는 내게 4시간짜리를 권했다. 다시 찾아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며. “아니에요. 그러면 제가 너무 죄송해요. 비용도 8년 전보다 10만원이나 내리셨잖아요.” “아뇨. 그럼 제가 너무 죄송해서 안되요. 다시 찾아주신 것 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요. 4시간짜리 프로그램으로 하세요. 6시간 프로그램만큼 잘 해드릴께요. 계약금도 안 받겠습니다. 편하신 방법으로 주세요.”
결국 8년 전보다 저렴한 패키지로 예약하게 되었다. “코스는 어디로 할까요? 8년 전에 우붓을 가셨으니, 이번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서북부 부두굴라인 어떠세요? 아니면 동부도 참 괜찮은데. 아니, 아예 다른 날 하루 더 투어 시켜 드릴께요. 여유 있게 구경하며 사진 찍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머나 너무 염치없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허허, 염치 없으셔도 됩니다. 코로나 때 죽다 살아났는데 다시 찾아주신 팀 세 팀 정도 계셨어요. 그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으로 조금씩 투어 시켜드렸습니다. 제겐 은인 분들 이니까요.”
이번에는 8년 전에 없던 둘째 아이까지 총 7명이 작가님의 차에 탔다. 7인승 차에 8명이 타려니 맨 뒤 가운데에 앉은 나는 엉덩이가 너무 아팠지만, 작가님과 함께 하는 일정이 좋아서 그런 건 문제도 아니었다.
첫날 풀 빌라 앞 바다에서 잠깐 사진을 찍고 동부 투어의 먼 길을 떠났다. 해는 쨍쨍. 참을성 없는 아이들과 편찮으신 엄마는 찡찡 쨍쨍. “언제 도착해요?” “언제까지 사진 찍어야 되요?”끊임없이 물어보는 첫째아이와 “말씀 줄이고 운전에만 집중해주세요.”라고 불평하는 엄마를 달래며 작가님은 열심히 운전하고 열심히 찍어주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물의 궁전. 햇빛을 가르며 작품을 찍었다. 물의 사원에 가서는 물고기들을 배경으로 나만의 요가 자세를 하며 발에 물을 담그기도 했다. 막바지 촬영 중 동생이 연못에 빠지면서 발톱이 들리고 무릎과 종아리에 상처가 생겼다. 동생이 병원보다는 숙소에 얼른 가고 싶어 하여 서둘렀는데도 차가 막혀 밤 11시에 도착했다. 작가님은 졸음운전 하지 않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러는 중 코로나 때의 어려움과 계약 후 아무렇지 않게 당일 취소하는 지금 MZ 이후 세대들에 의한 애로사항을 듣게 되었다.
호텔 도착 후 작가님을 수다스럽다고 생각했던 우리 엄마가 “작가 이야기 듣다보니 온갖 어려움이 많았네. 사람이 진실 되기도 하고. 이제 잔소리 하면 안 되겠어.” 더위와 피곤함에 약해 종일 투덜댔던 우리 엄마의 마음도 녹아내렸다.
삼일 후, 작가님을 다시 만났다. 작가님이 좋아하고 잘 아는 부두굴 라인으로 떠났다. 이번에도 그리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기온이 낮은 곳이니 편안하게 즐기면서 가자고 했다.
첫째 아이의 “언제 도착해요?”소리는 똑같지만 우리 엄마의 태도는 바뀌어 좀 더 즐겁게 대화하며 다녔고 고지대라 날씨도 선선하여 아주 상쾌했다.
‘선물가게 좀 들리자.’ ‘두리안좀 먹어보자.’ 등의 요청으로 시간이 지체됐다. 게다가 호수 사원에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것이다. 비가 멈추는 중간 중간 촬영하던 중, “안되겠어요. 오늘 선셋 촬영은 힘들 것 같습니다. 내일 워터 파크 갔다 오신다고 하셨죠? 저녁때 풀 빌라 앞으로 갈께요. 빠르게 포기할건 포기해야 오늘 제대로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의 그 말 한마디에 우리는 호수 사원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 나는 전통 문 앞에서 요가하고, 딸아이는 물구나무 서고 옆 돌기를 했다. 충분히 찍은 뒤, 시크릿 가든 빌리지로 떠났다. 시크릿 가든에 도착하니 작가님과 예전에 갔던 우붓이 떠올랐다. 계단식 논이 넓게 펼쳐진 풍경이 있는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였다. “우와, 작가님 여기 너무 예쁘네요. 8년 전 추억이 생각나요.” “이번에 다닐만한 데는 다 다녔다고 보시면 됩니다.”
빌라로 돌아오는 길에 요즘 핫하다는 짱구 지역에 내려주어서 맛있는 저녁거리도 사고, 구경하고 싶던 보세 옷가게도 들렸다. 비치 클럽도 살짝 구경하고 빌라로 돌아오니 저녁 9시 30분 이었다.
다음 날 저녁 5시 30분에 작가님이 빌라로 왔다. 바로 코 앞 바다인데도 작가님은 차에 태워 주고 싶어 하였다.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단체 사진을 찍고 개인 사진을 찍고 갈무리 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아, 오늘 선셋은 안되겠네요. 요즘 발리 날씨가 많이 바뀌어서 없던 구름이 많이 낍니다. 저 구름에 가려서 선셋 포기해야겠어요. 오늘 사진은 여기에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8년 전 남편과 분위기 잡으며 찍었던 로맨틱 사진은 못 찍었지만 작가님 덕에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깔깔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파도를 무서워하여 사진을 안 찍던 둘째가 용기 내어 즐거웠고, 동생이 파도를 가르며 혼자 걷는 모습이 예뻤다. 유일한 손자 손녀를 두신 어머님 두 분이 손을 잡고 걷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파도에서도 옆 돌기를 하고 아빠랑 태권도를 하는 첫째 아이의 씩씩함을 보며 나와 남편은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걸었다.
작가님에게 인사를 하며 미리 봉투에 담은 팁을 드렸다. 작가님은 한사코 사양했지만 남편의 거듭된 요청으로 받아들고 갔다.
두 시간 후 작가님한테 톡이 왔다. “아니 왜 이렇게 팁을 많이 주셨어요?” “작가님이 저희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 그래두요. 이렇게 많이 주시면 제가 생색내기도 힘들잖아요.” “생색내셔도 되죠. 저희한테 해주신 것이 얼마나 차고 넘치는 데요.” “저 그럼, 저녁은 드셨을 것 같으니까 아이스크림좀 사다드릴께요. 저희 집과 빌라 딱 중간에 발리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스크림 집이 있거든요. 발리 오셨으니 한번 맛 보셔야지요.” “아이고, 아니에요. 여기까지 오시려면 힘드셔서 안 되요. 정말 괜찮습니다.” 작가님은 고집을 부리고 결국 커다란 아이스크림 두통을 사다 주었다. 그것도 출발한다는 카톡 후 한 시간이나 지나서. “제가 좋아서 하는 겁니다. 저 싫으면 때린다고 해도 안합니다.”라며 교통체증을 넘어 다시 온 것이다. 4시간 프로그램으로 아침 10시반부터 밤 늦게까지, 이틀이나 투어 시켜주었으면서, 팁 합해봐야 6시간 프로그램 비용도 안 되는 것인데 정말 못 말리는 작가님이다.
작가님이 헤어지기 전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촬영 끝나면 단기 우울증 비슷한 것이 올 것 같아요. 유독 마음 가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 분들 만나고 헤어지면 제가 그러더라구요.”
작가님 뿐 아니라 사실 나와 남편 내 동생도 그랬다. 7박 9일 동안 3번을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꽉 찬 경험을 함께 해서 그런지 작가님을 이제 못 만날 생각에 심하게 아쉬웠다.
깊이 있는 관계란 무엇일까. 이렇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상업적으로 만난 관계에서 깊이 연결된 느낌이라니. 이런 잔잔한 울림을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SNS로 가볍고 넓게 연결되어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요즘이어서 그런지 그 깊이가 말도 안 되게 깊게 느껴진다.
최고의 가족여행을 만들어 준 작가님 꼭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