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 관심 가서 보면 안 되냐고 물은 거 무슨 말이야?
답을 보낼까 말까 잠시 고민하던 세연이 핸드폰 텍스트를 쳤다.
- 말 그대로. 관심 가면 볼 수도 있는 거 아님?
기다렸다는 듯이 진호의 답이 왔다.
- 난 네가 나를 변태라고 생각할까 봐.
- 나 너 변태라고 생각 안 했어. 그리고 나도 봤어. 너 거기. 그럼 나도 해명해야 하냐?
- 몰라.
- 솔직히 뭐 별로 보이지도 않았어. 근데 좀 보고 싶으면 안 되냐?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서 거기에 빵꾸나는 것도 아닌데.
- 여자들이야 말로 그렇지 않냐? 가슴 본다고 난리치고 지들이 교복치마 팬티가 다 보일 정도로 짧게 입고는 그거 본다고 또 뭐라 하고. 어쩌다 실수로 닿기라도 하면 성폭력이라고 신고한다고 하고... 진짜 진짜 진짜 억울하다고.
진호의 말은 핸드폰 속의 글인데도 그 억울함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세연은 학원에서 진주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는데 진호랑 잠깐 얘기하는 동안 까먹었었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 너 중학교 때 무슨 일 있었냐?
- 통화할래?
세연과 진호는 한참을 얘기했다.
진호가 중학교 때, 진호랑 다른 친구들 몇이 복도에서 장난을 치며 뛰어가다가 그중 한 명이 지나가던 같은 반 여학생의 가슴을 팔꿈치로 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불행히도 둘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고 말싸움이 오고 가다 여자애가 그 친구를 성폭력으로 학교에 신고했고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다고 했다. 모르고 쳤는데 불같이 화를 내는 여자애에게 진호의 친구가 정중하게 사과를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고, 그의 껄렁한 사과에 여자애가 일부러 쳐놓고 실수 인척 한다며 '변태새끼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행패'라고 몰고 가면서 큰 싸움이 되었다. 그 반의 단톡에서 그게 왜 성폭력이냐 아니냐를 두고 남자애들과 여자애들 사이에 설전이 일어났고 흥분한 아이들은 '페미'와 '한남'을 들먹이며 서로를 비하했다. 그중에 화가 난 여자애가 남자애들이 한 욕을 하나하나 캡처해서 사이버폭력으로 경찰의 사이버수사대에 신고를 했는데 눈팅을 하던 진호도 동조했다는 이유로 같이 고소가 되었다고 했다. 학폭에 걸렸던 진호의 친구는 결국 징계를 받지는 않았지만 한 학기를 거의 그 일 때문에 왔다 갔다 하며 날렸고 진호와 다른 친구들까지 수차례 교무실에 불려 가야 했다고 했다. 학폭과는 별개로 단톡에 있던 남자애들과 그들의 부모님까지 한동안 경찰서를 오가며 난리가 났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 진호는 가능한 어떤 단톡에도 끼지 않으려 했고 여자애들과는 오해가 생길만한 어떤 일도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고 했다. 그 일은 다른 반이었던 세연도 대충 소문으로 들었지만, 진호가 그 일에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사이버폭력 방지와 관련한 교육을 한차례 실시 하면서 그 일을 마무리했다. 그가 그렇게 안보이듯 살려고 한 노력이 세연 역시 진호를 '같은 중학교 애' 정도로만 존재감 없이 기억하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 헐. 장난 아니었구나. 난 왜 몰랐지. 어휴, 진주 이년.
- 뭐라고 소문났냐?
- 아냐. 너 학폭 갔었다고. 나도 잘 몰랐으니까 다른 애들도 당사자 아니면 잘 모르지 뭐.
- 넌 믿어?
- 본인이 아니라는데 뭘.
- 그때 부모님 하고도 완전 안 좋았어. 몇 개월 동안 핸드폰 다 감시당하고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여자애들이랑 말도 하지 말라고 난리였어. 내가 진짜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설마 울려는 건 아니지? 근데 어쩌냐. 지금 이렇게 여자애랑 이러고 있는 걸. 뭐야 너? 혹시 문제 생기지 않으려고 전화로 하자는 거였냐? 나 아이폰인 거 알고?
- 들켰네.
- 헐. 이거 정말 치밀하네.
- 농담이야. 결백을 증명하려면 DM이 더 낫지. 그냥 너랑 통화하고 싶었어.
- 갑자기 훅 들어오는 거 뭐임.
- 나도 내가 여자한테 관심 갖는 거 이상한 건가 싫었거든. 내가 맘먹는다고 안 서는 것도 아냐. 가능한 안 엮이고 싶은데 나는 또 왜 이 지랄인가 짜증도 나고.
- 이제 막 나가네? 그니까. 성욕이 무슨 죄냐. 인간인 게 죄지. 큭큭큭큭
- 넌 이상해.
- 그런가? 가슴 보고 싶을 수도 있고 고추도 보고 싶을 수 있는 거 아니냐? 그게 그렇게 이상한 거냐? 너 솔직히 내가 왜 봤는지도 몰랐잖아. 그러니까 내가 너 변태로 생각했을까 봐 나한테 해명한 거 아냐?
- 맞아. 나도 몰라. 보고 싶어도 보면 안 되는 건가 봐.
- 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거지만 난 말도 하면 안 되는 거라니까. 내가 더 억울해. 내가 고추를 보고 싶다고 만져보고 싶다고 하면 다들 미친년이라고 생각할걸. 미친년이 낫냐 변태가 낫냐?
- 그게 그거 같은데.
- 넌? 내가 성기를 보고 싶은 게 이상해?
- 당황스럽긴 한데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아. 그래도 너무 쳐다보면 이상할 것 같긴 하다.
- 0.1초만 볼 거거든. 보지만 보지 않는 미국식 메너가 있는 거야. 우리 서로 성희롱 아닌 거라고 뭐 폰 끊고 각서라도 써야 하는 거 아니냐.
- 원한다면.
- 그런 각서 썼다가 들키면 너나 나나 평생 '가슴남, 고추녀'라고 꼬리표 붙어 다닐 것 같아. 그냥 기억에서 지우자.
- 난 지우기 싫은데.
- 뭐냐?
- 나 너 기다린 거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어.
진호가 잠시 침묵했다. 세연도 더는 장난을 치지 않고 진호를 기다렸다.
- 사귈래?
세연은 속으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에 쾌재를 불렀지만 막상 고백을 해오면 어떻게 답할지는 미리 생각해놓지 않았다는 것에 당황했다.
- 고추 좋아하는 여자친구도 괜찮다는 건가?
- 가슴 좋아하는 남자친구도 괜찮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