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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Dec 05. 2023

2.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Part 2.

진주가 떠난 자리에 둘은 생각보다 어색했다. 진주의 궁금함을 알리는 메시지가 양철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처럼 톡톡톡톡 끊이지 않고 울려 세연은 핸드폰을 무음으로 전환했다.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패기는 어디 갔는지 진호는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그가 어디로 가겠다는 말이 없어 세연은 학원 방향으로 걸어갔다. 학교에서는 조잘조잘 잘도 떠들던 녀석이 뭐 마려운 개처럼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세연은 설마 진호가 학원가 한복판에서 말도 안 되는 이벤트 따위를 하려고 한다면 뒤도 보지 않고 학원으로 뛰어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그런 진호가 낯설지만 귀여운 생각이 든 세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 할 말 있어서 기다린 거 아님?

-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 뭘?

- 아까......

- 아까? 뭐? 

- 수학시간에......

- 아! 네가 내 가슴 훔쳐본 거 아님 발기된 거? 

- 아냐, 나 진짜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성희롱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냥 우연히 본거야 아니 보인 거야.  


진호는 귀가 벌게져서는 양팔을 들어 손사래까지 쳤다. 그게 이렇게까지 기겁할 일인지 오히려 세연이 당황스러웠다. 세연은 진호가 겨우 이런 말을 하려고 자신을 기다린 건가 하는 생각에 다소 실망스러웠다. 너무 당연히 그가 고백할 거라고 생각하고 앞서 나갔던 자신이 도끼병에 걸린 것처럼 우스웠다. 사귄다면 드디어 그간 그토록 궁금해하던 성기에 대한 미스터리도 풀 수 있는 건가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고백을 못 듣고 미스터리를 풀지 못한 아쉬움 보다 나와 다른 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그렇게 못쓸 일인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 관심 가서 좀 보면 안 돼? 

- 뭐? 진짜 아니라니까. 


세연은 답답했다. 자신도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았고 의식적으로 시선을 꽂은 것이 아니라 보이니까 본 것이다. 보인 것에는 세연의 성적인 호기심이 작용을 한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죽을죄인가 혼란스러웠다. 진호도 자신의 시선을 분명 인식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그녀의 가슴을 본 것과 그로 인해 발기된 자신의 성기가 고의가 아니라고 해명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진호가 '나, 네 가슴 봤어. 너 혹시 기분 나빴니?'라고 물었다면 쿨하게 '아니.'라고 답하고 세연 자신도 솔직히 고백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진호의 말을 들으니 자신이 더 이상한 사람 같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세연은 괜히 기분만 찜찜해져 버려 아직 수업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학원 입구로 말도 없이 쑥 들어가 버렸다.  


세연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볼 때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은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세연이 중학생 때 가족들과 이모가 사는 미국 작은 시골동네를 간 적이 있었다. 도시와는 달리 유색인종이 거의 없는 그런 곳이었다. 동양인들이 떼거지로 모여 다니는 것이 신기했던지 백인들이 자신들을 흘끗흘끗 쳐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않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쓰윽 훑고 지나갔다. 이모는 그것이 바로 백인들의 '보면서도 보지 않는 스킬'이라고 해서  모두 웃었었다. 유독 백인들이 많은 곳이어 이모네 가족도 그런 시선과 차별 때문에 한동안 힘들었다는 얘기를 엄마를 통해 들었었다. 여행에서 세연이 군것질 거리를 사러 주유소에 붙어있는 작은 슈퍼마켓에 들어갔을 때, 계산대 앞에서 줄 서 있는 자신을 파란 눈을 가진 어린 남자아이가 뚫어지게 쳐다봤었다. 그 아이의 눈은 그야말로 호기심이 가득해 보였다. 한참을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아이를 그의 엄마가 낚아채서 데리고 가더니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들리지 않았고 영어라 다 이해 못 했겠지만, 예상컨대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연은 아이의 시선이 불쾌하지 않았다. 아마 아이는 자신을 어떤 부정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차별을 하는 게 나쁘고, 성희롱을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는데 세연은 어디까지가 되고 어디서부터는 안되는지 혼란스러웠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만으로 또는 그 시선이 머무는 시간 만으로 상대의 생각이 다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생각을 다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년 학교에서 해주는 성교육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른 남자가 양복을 입고 젊은 여자의 가슴을 보면서 침을 흘리는 사진을 보여주며 성적 수치심이 드는 행동의 예로 보였는데 바보가 아니고서야 실제 침을 뚝뚝 흘릴 리도 없고 3초가 넘게 지그시 응시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을 것 같았다. 0.1초는 되고 3초는 안 된다고 정확히 법에서 명시해 주면 차라리 좋을 것 같았다. 세연 자신은 진호의 아랫도리를 자신도 모르게 한 3초는 본 것 같은데 그 정도면 성적수치심을 주는 시간인지 아닌지 헛갈렸다. 


학원에서도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세연이 도통 답이 없자 옆 건물의 학원에 다니는 진주가 쉬는 시간에 후다닥 세연의 학원으로 왔다. 진주도 이제까지 묘했던 진호의 행동을 옆에서 봤었기에 사랑고백이라도 한 건가 한껏 놀리고 싶은 마음에 부릉부릉 하며 달려온 것 같았다. 하지만, 세연의 심드렁한 얼굴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는지 김이 빠진 듯했다. 


- 걔는 고백할 것도 아닌데 왜 널 따로 보자고 한 거야?

- 몰라. 좀 찐따인 듯. 

- 야. 내가 오늘 학원에서 들었는데, 진호 걔 중학교 때 학폭 끌려갔었대. 친구랑 여자애 가슴을 만졌다는데? 걔 변태 아니냐? 너 같은 중학교 나왔는데 몰라? 


진주의 폭탄 같은 발언이 세연의 머릿속에서 빵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 진호의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과 수학시간에 자신의 가슴을 보고 있던 모습이 자신이 본 그대로인지 헛갈렸다. 사실은 웃고 있고, 사실은 손을 내밀어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려 하는 속마음이 있었던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자신도 영상 속의 아저씨처럼 진호의 성기를 보며 침을 뚝뚝 흘린 것은 아닌지 귓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연은 집으로 돌아와서야 무음으로 되어있던 핸드폰을 확인했다. 진호의 DM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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