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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Jan 25. 2024

부부연애탐험기

우리관계의 갈등요인과 보호요인

나는 2011년에 결혼을 해서 이제 12년이 넘게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우물 안 '두꺼비'처럼 작은 동네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고 빠르게 뛰지도 못하면서 분주하게 같은 생활을 반복해 왔다. 유기견이었던 짜구(7살 된 코리아브라운 암컷 멍구)를 키우면서부터는 눈이 오나 비바람이 부나 혹한에도 혹서에도 매일 같은 시간 1일 2회 오전산책은 남편과 함께 오후산책은 홀로 나간다.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고 좀처럼 심각한 일이 없고 좀처럼 특별한 일이 없다. 나는 화분처럼 집안에 박혀있고, 남편은 코알라처럼 침대에 있기를 좋아한다. 남편은 12년 동안 한결같이, 거의 매일 나보고 "미쳤냐?"라고 하는데 나의 호기심으로 인한 행동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편을 경악케 하는 것 같다. 나는 남편의 허접한 유머와 때 지난 (음박이 다 틀린) 노래가 매일같이 재밌다.


최근에는 시댁에 커다란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시댁의 가족문화를 그 안에서 살았던 장자였던 남편에 대해 꽤 깊게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면서 너무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보았다.  


우리가 가장 크게 싸웠던 것은 결혼 초기에 양가의 용돈과 방문할 때 선물을 사가는 문제였다. 

그날의 싸움은 남편이 향후 모든 경제권을 아내에게 일임한다는 자필 각서를 쓰고 일단락되었다.   


30대 초반 우리 부부의 문제는 원가족에게 져야 할 책임의 범위와 의례적인 행위에 대한 다른 가치였다.

내가 생각하는 원가족에 대한 책임의 범위는 남편에 비해 현저히 적었고, 불필요한 허례허식에 대해 무의미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날의 기억을 더듬으면, 나는 이미 용돈을 드리고 있는데 월 1회 정도 시댁에 갈 때마다 선물을 사가는 것은 너무 귀찮고 비용소모가 크다고 주장했고, 남편은 용돈은 용돈이고 갈 때 빈손으로 가기가 그렇다는 입장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남편은 평소 같지 않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고, 결국 대화를 끝내지 않고 혼자 본가로 가게 되었다. 나는 격분했고,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자 시어머님에게 전화했다. 우리가 싸웠고 현재 남편이 나의 전화를 안받으니 대신 통화 연결을 부탁드린다고 공손히 말씀드렸다. 모두가 불편한 상황이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나만큼 크고 확실히 분노하지 않았고 나 빼고 누구도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았다. 남편은 예정보다 일찍 돌아왔고, 나와의 길고 긴 협상을 시작했다.


나는 우리 가정의 현재 소득과 미래의 예상수입을 측정하고 앞으로의 동산과 부동산을 포함하는 자산운용 계획에 맞는 소비와 지출의 범위를 연, 월 단위로 계획해 브리핑했다. 누구의 도움 없이 지금부터 온전히 우리 힘으로 해야 할 많은 일들에 대해 남편과 대화했다. 그랬을 때, 지금 우리의 소비계획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설득했다. 사과 한 박스 보다, 훗날 부모님이나 자식에게 손을 안 벌리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불어 아내와의 관계보다 부모님과의 약속을 먼저 지키려 한 남편의 결정에서 그의 삶에 무엇이 우선순위이냐는 지고 지난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 역시 독립한 성인은 원가족보다 자신의 가족, 다른 누구보다 서로의 배우자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확인했다.


그때는 그 과정이 나의 승리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에게는 서로 다른 성격과 가족문화에서 온 두 번째 문제, 다른 가치를 타협하는 소통의 차이가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 '내가 가장 원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그 '본질'에 중심을 두었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투쟁하기를 겁내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부모님과 웃어른들에게 순종하는 가족문화와 갈등을 가능한 회피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은 불편한 순간에 어떤 감정이 치미는지 잘 몰랐고, 설령 느낀다 해도 다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쌓아두다 보면 뭔가 손해 보는 기분, 뭔가 억울한 기분에 한동안은 "너는 나를 무시해"라는 이슈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대화가 다 잘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얘기를 하는 남편을 인정하기 어려워 다시 또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논리로는 남편의 기분을 바꿀 수 없고 남편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좀 더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후에 깨달았다.


나의 승리는 어쩌면 남편의 회피의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지금도 나랑 싸우느니 차라리 다른 모든 사람과 싸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난 여전히 강적이고 건드리면 골치 아픈 존재가 맞다.


그때는 그 문제에 빠져 지금처럼 분석해서 부부 문제를 찾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렇다.


우리의 갈등요인에서,

나의 문제는 내가 옳다는 자만이었던 것 같다. 많은 경우 나는 정말 옳다.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결코 나만 옳을 수 없고 특히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나는 상대의 가치를 좀 더 인정했어야 했다.

그의 문제는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자신의 욕구에 좀 더 책임감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이 컸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나와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면서 자신의 진짜 욕구를 충족하는 데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었던 보호요인은 이렇다.

나는 실제 내가 그에게 제시한 미래의 약속들을 한 해 한 해 이루어 나갔고, 그와 우리 가정에 성실했고, 내 진짜 바람과 욕구를 숨기지 않고 솔직히 얘기했다.

그는 일상 속에서 나를 배려해주었고, 나와 싸우지 않기 위해 많이 양보했다. 이해되지 않는 때가 더 많았겠지만 한순간에 나를 평가하지 않고 오랫동안 느린 속도로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었다.


우리의 갈등요인은 다시 보면 우리의 보호요인이었다.


나는 주기적으로 남편 자신이 원하는 것과 그가 나에게 바라는 것을 확인한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이전보다 현격히 덜 억울해한다. 요새는 왜 무시당한다는 얘길 안 하냐고 물으니 자기가 언제 그랬냐며 웃었다. "너도 많이 변했잖아."라고 하는 말이 왠지 뿌듯했다.


오늘 점심에는 맛있는 평양냉면을 곱빼기로 먹으며 얘기했다.


"나는 앞으로도 내 행복을 위해서 당신을 계속 설득할 거야. 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나를 설득해 줘. 그럼 그때는 꼭 당신의 얘기를 들을게."


(과거에 썼던 글인데 본 연재 2회에 맞아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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