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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Feb 01. 2024

미안하다 사랑한다

사과전문부부

"멍충이!"


오늘 아침 산책을 하다가 문득 어제 남편의 행태에 다시금 화가 났던 내가 너무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어제 나는 종일 상담실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집의 ' 남편에게 '주방의 여왕' 내가 계란을 사놓으라고 업무지침을 주고 갔다. (남편이 King of House  것은 맞는데  안에서 주방은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고   있다.) 하지만 막상 집에 왔을  냉장고에 들어있었던 것은 장수막걸리  병과 양념이  안창살,  밖에 남편을 위한 자갈치 나를 위한 감자깡 아들을 위한 바나나킥뿐이었다. 우리 집에 정말 필요했던, 주방의 여왕이 주문한 물품인 계란만  빠져있었다. 남편의 이유는 계란은 마트의 어플 회원이 가입된 사람만 할인을 해줬고 자신은 회원이 아니라 계란은  샀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막걸리와 고기, 과자는 나의 전화번호로 회원 적립을 받았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남편이   양념안창살은 저녁밥상에서 인기가 없었다. 겨우 500그램이지만 고기를 많이  먹는 우리 가족 특성상 3끼로 소분해서 먹어야 하는데 맛도 없는걸 앞으로    먹을 생각을 하니 아침에 다시 짜증이 났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너무 커서 뒤에서 걸어오던 아들의 학교 친구가 다 들었다며 남편이 뾰룽퉁해지고 말았다.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 줘."


나는 바로 사과했다.


나는 화도  내지만 사과도 매우 잘한다. 화를 내고도 사과를  하고 적반하장으로 굴다가는 상대를 억울하게 만들고 관계를 틀어지게 만든다. 물론 화를 안내면 좋겠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보았을  나는 욱하는 화를 참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나의 한계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화가 나면  상황을 분석하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질 못한다. 남편은 나의 그런 성격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분노로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을 때는 가능한 그냥 들어준다.  역시 남편이 그것이 옳든 그르든 참고 들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편이 감당할 정도까지만 얘기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해결한다. 하지만,  '감당할 정도' 대체로는 지켜지는데 애석하게도 오늘은 볼륨이  높았다.    


"오빠 그런데 **이는 못 들었을 거야. 우리가 원숭이(아들 별명) 엄마 아빠인 줄도 모를걸!"

"아니. 우리만 있었다면 몰라도 짜구(본명. 치노)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우린 건 모두 알걸."


(남편의 정확한 지적에 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개 주인들은 개가 없을 땐 인식이 불가능하지만 개, 특히 우리 짜구처럼 큰 똥개는 이 동네에 딱 두 마리뿐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알 수밖에 없다.)


"내가 다음에 욕할 때는 꼭 오빠 귀에 대고 속삭일게."

"그래. 찡빠오! 나는 주위에 사람이 있나 없나 둘러보고 없으면 말한다고!"

"그래서 오빠가 산책할 때 매번 목도리도마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거였구나!

"그렇지. 얼마나 신중하니."

"맞아. 오빠는 식당에서도 나를 손짓으로 불러서 귀에 대고 '찐따'라고 했잖아."


사실 우리는 서로에게 수도 없이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붙이고 비아냥과 풍자, 해학이 가득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렇기에 단지 멍충이나 찐따, 찡빠오(찐따의 변형)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고 목소리가 큰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가  싸우지 않는 것은 남편의 회피성향과 관대함, 무던함이 가장  이유이지만 나의 합리적인 성향과 빠른 인정도  몫한다. 많은 경우 나는 논리적으로 옳은 경우가 많지만  많은 경우  표현을 격하고 과하게 하기 때문에 결국 사과하는 일이 많다. 나는 화도 많이 내고 사과도 많이 하고 사랑한다고도 많이 하는 여러 모로 과한 사람인것이 확실하다. 다행한 것은 남편 역시 사과와 인정이 빠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잘못을 지적하면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사과한다. 부르르 화가 났다가도 남편이 "미안해."라며 과장되게 반성하는 '장화 신은 고양이' 표정을 지으면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만다.


우리는 오늘도

미안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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