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아닌 나의 과녁에 화살을 쏘아라.
인지행동심리학에서 생각의 과정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입니다. 사람의 감정은 자연발생적으로 뿅 하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감정이 생기는 상황이 있고, 그 상황에서 만들어진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이 감정을 만들어 내고 동시에 몸과 행동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렇기에 생각과 감정, 몸의 반응과 행동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말인 즉, 그중에 하나가 바뀌면 다른 영역도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부분을 먼저 건드리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케바케' 이겠지만 상담에서는 '생각'을 좋은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때의 생각을 '자동적 사고 Automatic thoughts'라고 합니다. 자동적 사고는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역기능적 생각을 말하는데, 많은 경우 부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J는 간호대학을 다니는 학생으로 상위권의 성적에 과에서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 해왔습니다. 집에서는 착한 딸이었고, 사회에서는 리더십 있는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공황증상이 생겼고 수업시간에도 캠퍼스에서도 집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패닉어택이 왔습니다. 과호흡 때문에 숨쉬기가 어려웠고, 온몸에서 땀이 나고, 심해지면 온몸이 굳고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스스로 공황장애라고 생각했지만, 의료인이 될 예정인데 혹시 문제가 될까 하여 병원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혼자 몇 달을 끙끙 앓다 학교에서 먼, 제가 일하는 상담센터로 오게 되었습니다.
J는 불안이 매우 높았습니다. 처음 물었을 때 자신의 불안은 0~10, 10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불안이라면 자신은 12를 넘는 것 같다고 얘기했을 정도니까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순간을 찾아내, 그때 드는 생각과 각각의 감정과 그 감정의 크기를 점검했습니다.
- 이번 주는 어떤 일이 가장 불편했을까요?
- 수업을 듣는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졌어요.
- 많이 당황스러웠겠네요. 어느 정도로 심했을까요?
- 옆에 있는 친구가 알아차릴 정도로요. 그 친구가 저한테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저는 대답도 못했어요. 숨이 멎을 것 같았고 심장은 너무 뛰고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제 심장소리가 강의실에 모두 들릴 것 같았어요.
-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친구가 눈치챘다는 것이 더 괴로웠었나 봐요.
- 네. 이제까지는 그래도 숨길 수 있었는데 이제 사람들이 다 알게 됐다는 것이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 정말 감당하기 어렵게 느껴졌었나 보네요. 그때의 감정은 어땠나요?
- 불안하고 화가 났어요.
- 불안과 분노는 각각 얼마나 컸나요?
- 불안은... 90% 정도고 분노는 100% 인 것 같아요.
- 불안도 크지만 분노가 더 크네요.
- 네. 맞아요.
- 불안을 만드는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 친구가 저를 어떻게 볼지 너무 두려웠어요.
- 어떻게 보는 것 같나요?
- 미친 애.라고 볼 것 같아요. 정신병자. 나약한 애.
- 갑작스럽게 나의 위치가 확 강등되었다고 느꼈겠어요.
- 네. 사람들이 절 어떻게 볼까요? 이제는 캠퍼스를 걷다가도 저 사람이 날 아는 걸까 신경이 쓰여요. 그럼 등에서 땀이 나고 온몸이 굳는 것 같아 걸을 수가 없어요.
- 그런데 진짜 나를 어떻게 볼까요? 그 친구는 정말 나를 그렇게 표현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무시했나요?
-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 친구도 힘들었던 적이 있는 친구여서 나중에 많이 힘드냐고... 도와줄 거 있으면 얘기하라고 말해줬어요.
- 친구는 J가 생각한 것처럼 나를 '미친 애'라고 보지 않은 거네요.
- 네 맞아요.
- 그럼 J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정말 다 알고 있나요?
- 글쎄요. 알지 않을까요?
- 강의실에서는 어떤 자리에 앉았어요?
- 끝이요. 혹시 너무 힘들면 나가려고 요새는 끝자리에 앉아요.
- 그럼 내가 공황증상이 생겼을 때 학생들이 전부 뒤를 돌아봤어요? 그걸 확인했고요?
- 아니요... 옆에 친구 빼고는 저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어요. 얘들은 수업을 듣고 있었거든요.
- 그죠. 사실 친구들은 자기 공부하기도 바쁘죠.
- 네...
- 지금처럼 생각을 해보면, J의 불안은 어떤가요? 여전히 90%인가요?
- 아니요... 6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 그럼 분노에 대해서도 잠깐 얘기해 볼까요? 나를 화나게 한 생각은 뭘까요?
- 그렇게 바보 같은 저한테 화가 나요. 내 마음하나 어쩌지 못하는 제가 정말 싫어요.
- 공황증상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부족함이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못나게 느껴지나 보네요.
- 네. 그래서 그날도 수업을 제대로 못 들었어요. 요새는 숙제도 제대로 못해요. 그런 일로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도 화가 나요. 다른 친구들은 다 열심히 공부하고 잘 지내는 것 같은데 저만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병신 같아요. 그런 친구들이 부러우면서도 그 친구들도 저처럼 다 힘들었으면 좋겠고 질투 나고 밉기도 해요. 이런 저한테 정말 화가 나요.
- 내 마음이 힘든 것도, 그래서 숙제를 못하는 것도, 남들을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것도 나에게는 비난받을 일이고 그런 나에게 너무 화가 나는 거네요.
- 네. 그런 제가 너무 싫어요.
- 나는 어때야 하는 건가요?
- 나는... A를 받고... 똑똑하고, 자신감 있고, 학교 일도 잘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왔거든요. 그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몰라요.
- 그런데 지금 나는 그렇지 못하니 너무 괴로운 거네요. 그런데 나는 왜 그래야 해요?
- 그래야 교수님도 친구들도 부모님도 인정해 주니까요.
- 정작 나는 그렇게 애쓰며 힘들고 불행했어도 말인가요...
- 네... 그래도 잘하고 싶어요...
- 나에 대한 목표와 기대는 저 위에 있는데 나는 그 기대를 채우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봐요.
- 네...
- 나의 분노는 완벽하지 못한 나에 대한 분노네요.
- 제가 완벽주의자 같나요? 그럴까요?
- 어떤가요?
-...... 그런 것 같아요.
- 그런데 정말 완벽할 수 있어요?
- 아니요..
- 아니죠. 그런데 알지만 그 기준을 내리기가 정말 어렵죠. 왜 그럴까요?
- 그러게요. 그러면 졸업도 제대로 못하고 취직도 제대로 못하고 결국 사람들은 저한테 실망할 테니까요..
역기능적인 사고의 기저에는 합리적인 판단을 막아 생각을 왜곡하고 오류에 빠지게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거절당하기 두려운 마음, 통제하고 싶은 마음...
이 욕망은 인간을 성장하게 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나와 남을 괴롭게 합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너무 크거나 또 너무 적으면 그때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나의 생각이 흘러가는 패턴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흐름의 근원을 보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핵심신념"이라고도 합니다.
J의 핵심신념 안에는 남들보다 나아지고 싶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J의 목표는 나의 행복보다는 '타인의 기대를 맞추어 인정받는 것'이 되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 뭐든지 잘하는 친구... J는 공황장애로 나 자신이 힘든 것보다 그런 나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가 더 괴로웠습니다. J의 과녁은 다른 사람이 보는 완벽한 나에 맞춰져 있었으니까요. J는 모두가 인정하는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매일이 너무 버겁고 안될까 봐 불안하고 충분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J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덜 힘들기 위해 이제 그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라고 배우지, 기대를 낮추라고 배워오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에서 내가 행복하고 편안한 삶으로 목표를 바꾸면 그것은 왠지 초라하고 실패자 같이 평가되니까요. 타인의 기대는 그 사람마다 다르고 그나마 맞췄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다른 곳을 향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남들의 인정'이라는 '움직이는 과녁' 만을 쫓아서는 안됩니다. 수백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남의 인정, 움직이는 과녁만 쫓아다니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짧기 때문입니다.
100명의 사람들은 100가지 기대를 합니다.
그들의 기대를 모두 맞추기에 나의 삶은 짧습니다.
남이 아닌 나를 행복하게 하는 1가지 기대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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