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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Feb 14. 2023

L. 임신한 거 아닐까요?

몰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 창이던 2019년부터 몇 년간, 전 세계가 적응이 안 되어 학생들은 학교에 못 가고 명절에는 가족을 못 보고 친구 만나기도 눈치 보여 외출 자체가 금기시되어 상담실에도 인적이 드물던 때가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화상 상담이라는 것이 활성화되지 않아 그 당시 저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채팅 상담을 했었습니다.


채팅상담을 하면 꽤 많이 가져오는 고민 중 하나가 "임신했을까요?"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L은 지난달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가졌고, 여자 친구가 생리기간이 지났는데도 생리를 하지 않자 임신을 한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 상담실에 방문했습니다.


이럴 경우 저희가 질문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상담인데 왜 그런 게 있을까요? 청소년인 경우는 특히,  합의된 성관계인지 아니면 성폭력이었는지를 구분하여 성폭력 상황이라면 긴급도움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 어떤 피임방법을 썼는지, 현재는 어떤 상황인지를 자세히 물어봅니다.  위의 사례인 경우, 동의된 성관계였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질외사정으로 피임을 했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현재 여자 친구는 생리를 하지 않고 있고 속옷에 약간의 피나 분비물이 보이고 복부 통증을 얘기하기도 하고요.


물론 청소년인 내담자가 얼마나 불안하면 익명의 상담에 왔겠습니까. 하지만, 저희가 의사가 아니고 의사라도 아무런 검사도 없이 임신 여부를 확신해서 말해주지 않지요. 그 답은 그래서 언제나 정해져 있습니다.


"임신 여부를 정확히 알려드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겠지요.


그럼 상담이 끝날까요?


아닙니다.

그다음부터 진짜 상담이 시작됩니다. 그 상담의 목적은 내담자 개인의 독특한 이슈 또는 심리적인 요인 일수도 있지만, 상담자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지금 같은 임신 관련 질문에서는 심리교육과 성교육이 필요합니다. 성폭력이 아니고, 합의된 성관계가 확인되었다면 그다음은 피임방법을 물어보지요. 그런데 청소년인 경우 피임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성적으로 많이 개방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마트나 편의점에서 콘돔은 미성년자가 구입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으로도 콘돔을 사려면 성인인증을 해야 합니다. 약국에서는 가능하나 청소년들이 많이 활동하는 시간대에는 약국은 문을 닫는 경우가 많지요. 콘돔을 못 사게 한다고 성관계가 줄어드는 것일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준비 정신이 철저해서 미리미리 약국에서 콘돔을 준비해 놓으면 좋겠지만, 언제 할지 모르는데 미리 콘돔을 사놓기도 참 쉽지 않지요. 또 샀다고 해도 괜히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들에게 들켰다가는 난처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인보다 상대적으로 성관계를 하는 장소가 유동적일 청소년이 그 작은 콘돔을 잊어버리지 않게 잘 보관해 놓는다는 것도 쉽지 않고요.  하지만 매년 청소년 성관계 시작 연령은 어려지고, 횟수는 많아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질외사정이 완벽하지 않다고 알면서도 질외사정이 피임방법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얘기합니다.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질외사정은 피임방법이 아니에요."


네. 질외사정은 피임 방법이 아닙니다. 정말 성관계를 하고 싶다면, 임신을 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올바른 피임방법을 써야겠죠. 설령 그렇다 해도 100% 완벽한 피임은 없습니다. 콘돔 껍데기에도 쓰여있잖아요. 99.9%. 피임약을 먹든, 정관수술을 하든, 루프를 하든, 신의 계획은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피임방법을 정확히 쓴다면 99.9% 임신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인 거죠. 나 자신을 위해 우리는 피임방식을 합의하고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피임하지 못했고, 지금 임신인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임신을 한다고 해서 상대 파트너는 방관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라인상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임신이다 아니다 하는 것이 나에게 파트너에게 안심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렇게 알아보려고 했고 나를 안심시켜 주려는 상대의 노력에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한 두려움을 감당하는데 힘이 됩니다. 또 그 두려움은 후에 내 행동에 좀 더 책임감을 줄 것입니다.


그러니 충분히 두려워하고

그럼에도 함께 견뎌내고

앞으로 더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기를 바라봅니다.



자 확실히 정해준다!

1. 성관계는 서로 동의 후!

2. 임신을 원치 않는다면 꼭 피임! (질외사정은 피임 안 됨!)

3. 온라인에 임신여부 묻지 마라.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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