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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Mar 14. 2023

M.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기

황금알을 지키는 방법

이솝 우화 중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있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과한 욕심을 부리다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지 말라"라는 관용구로 쓰이기도 하는데 단시안적인 욕심을 부리다가 장기적으로  크게 얻을  있는 이득을 놓치게 되는 것을 경계하고자 쓰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면에서만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부부상담을 하다 보면, 서로의 한계를 잘 몰라 서로가 서로를 끝까지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M은 40대 직장인 남성입니다. 자녀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지만 이미 체력의 한계를 크게 느껴 하루하루가 버겁게 느껴진다고 얘기합니다. 주중에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고 집에 오면 빨라도 9시 라에 한 달에 한두 번은 주말근무도 한다고 합니다. 업무 중에 잠깐도 쉬는 때가 없으며 잦은 초과근무에도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주말에는 좀 쉬고 싶지만 아이를 보거나 집안일을 해야 해서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 관리나 개발에 시간을 써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할 힘이 나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최근에는 이런저런 병치레에 몸도 이전 같지 않아 이러다 정말 갑자기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 때도 있다고 합니다. M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지 않는 아내가 원망스럽고 화가 납니다.  

M의 아내는 주된 업무는 주부이지만, 부업으로 강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주중에는 흔히 말하는 "독박육아"로 이미 참을 수 있는 한계치를 넘었다고 말합니다. 하루 중에 엉덩이 붙이고 차 한잔 마실 시간을 가진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얘기합니다. 풀타임은 아니지만 일을 하며 애를 보는 것이 너무 버겁고 그럼에도 아이를 잘 기르고 싶은 마음은 너무 큽니다. 아이가 생기면서 거실의 텔레비전을 없앴고, 아이에게 핸드폰이나 패드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자신도 아이와 있을 때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말만이라도 남편이 아이를 봐주거나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도 너무 힘들다고 얘기합니다. 힘이 들면 아이에게 짜증을 내게 되고, 그런 자신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거나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까 불안하고 죄책감이 듭니다.  


당장의 삶이 너무 고된 그들은 상대의 힘듦을 돌봐줄 여력이 없습니다. 내가 너무 지쳐있기 때문에, 상대가 부르짖는 도움의 외침은 자신을 찌르는 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는  여유 있어 보이고 아직 힘이 남아있는  같은데 나만 힘든  같아 억울하고 도움을 주지 않는 상대가 이기적이라고 여겨져 화가 납니다.  그러니  요구하게 되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화가 나면 대화가 엇나가고  시간이 장기화되면서 부부의 친밀도는 낮아지고 갈등은 지게 됩니다.


이 싸움의 최악의 결론은 서로가 서로의 배를 갈라 남은 황금알을 모두 꺼내고 나서야 끝이 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거위의 배를 갈라도 황금알은 없습니다. 갈갈이 찢어진 몸과 마음, 그리고 산산이 부서진 둘의 관계가 남을 뿐이지요. 당장 생각하기에 황금알은 연봉일 수도 있고, 자녀의 학습 성취도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황금알은 서로의 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상대일 수도 있고,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너무 가혹하게 혹사시킨다면 번아웃이 되거나 큰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배우자 또는 자녀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너무 밀어붙인다면 역시 완전히 소진되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리거나 나와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습니다.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부족함의 증거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이며

한계를 안 다는 것은 용기와 열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알고 존중하는 자세입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한계를 높이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한계를 인정하고 기대를 낮추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M 부부는 우선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자신의 삶에서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고 낮출 수 있는 기대를 찾아야 합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지나친 욕구와 불안을 점검해 보고, 아내는 완벽한 엄마가 되고자 하는 심리적 기제와 현재 들이는 육아 노력의 실효성을 점검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은 인간이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다는 겸손을 가르칩니다. 20대는 밤을 새도 다음 날이면 금방 회복하고 30대는 전 같지 않아 하면서도 밤을 새울 수는 있지만  40대 이후부터는 내일 일어나기라도 하려면 오늘 푹 자야 합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40대를 넘어가면서는 자신이 자부하던 집중력, 회복력, 효율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20대의 젊음은 "불가능은 없다"라고 외치며 미친 듯이 달릴 수 있지만 40대의 중년은 불가능을 미리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배를 스스로 가르는 꼴이 될 테니까요.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알고 스스로 여유의 공간을 먼저 만들고, 상대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더 큰 황금이 상대의 배에 가득 차 있다고 기대하고 더 많은 황금알을 낳기를 강요한다면 결국 그 관계는 파탄이 날 테니까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의 황금알은 무엇입니까?

* 본문의 사례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것으로 실제와는 다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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