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별거냐~
나는 심리상담을 직업으로 돈을 번지 18년이 넘었다. 최근 6년은 국내에서 가장 큰 사설 상담센터 체인점에서 근무했다. 각 체인점은 본사에 구속되는 여러 조건들이 있지만 실제 운영은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내 생각에 상담센터는 상담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치킨집과 같다. 고로, 코로나19 전의 호황기에서 코로나 19를 겪으며 센터장이신 나의 사장님은 힘든시기를 보냈다. 그와 함께 직원인 나의 월급 역시 조울증 환자의 무드스윙 처럼 격하게 위 아래를 오르락 내리락 해야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안정적인 근무환경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던 차에 우리는 망했다.
나는 열심히 일했고, 능력있는 상담사고, 고용주와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그런데 왜 우리 센터는 폐업의 수순을 밟고 있는가?
이유는 확실하다. 수익 보다 손해가 많으니 폐업 하는 것이다. 임대료가 터무니 없이 올라서든 이전 보다 고객이 줄어서든 상담이 후져서든 마켓팅이 부족했든, 득보다 실이 많으면 접는게 옳다. 내가 사장님도 아닌데 나는 왜 이다지도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려 할까? 사람이든 사건이든 온전히 이해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나의 지랄맞은 성격 탓이 제일 크다. 하지만 이 사업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의 실패도 아니다. 그럼에도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는 사장님께 원인을 정확히 알려달라고 할 정도로 나는 사회성이 떨어지진 않는다. 어쩌면 나의 실직이 나의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 일지 모른다. 그로인해 나의 불안을 난리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노력했다고 해도 나의 능력이 충분했다고 해도 나는 실패할 수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원장님의 폐업은 나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동네 치킨집의 폐업이 그 종업원의 책임도, 실패도 아니듯 말이다. 또 원장님 역시 폐업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업적 결정일 뿐이다. 그러니 실패나 성공도 아니고 더 나아가 인간의 실패도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폐업 또는 실직으로 인한 손해와 리스크가 남는다.
실직으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려고 했다면 아마도 중복취업을 했으면 되었다. 상담 쪽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고 나도 두군데 상담실을 다니다 몇년 전 한 군데를 정리했다. 보험이 될 만한 일자리를 여러개 걸쳐 놓으면 지금같은 소득의 상실과 함께 오는 정체성의 상실을 짧고 약하게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나의 실패감은 미리 준비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다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이라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미래를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할까? 더 높은 자격조건을 갖추고 덮어놨던 박사학위를 들추고 멀리 그리고 낮게 구직 범위를 넓혀야 할까?
오~ 노!
안될 말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왜 망했냐가 아니라, 이제 어떻게 살까? 이다.
어떻게 살까?
우선은 슬기로운 실직생활을 영위하며 그 답을 찾아야겠다.
* [슬기로운 실직생활]을 매거진에서 연재로 전환하면서 부득이 1~3편이 중복됩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