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는 선택인가 우연인가
아직 한 달 반이나 남은 실직을 앞두고 매일 밤과 아침 남편에게 불안과 우울을 토로하고 있다. '실업자가 된다니 나의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바로 취업을 해야 할까? 실업수당을 받으면 얼마나 받을까? 다음에 취직은 잘 될까?, 실업수당을 받아도 전보다 낮아진 소득은 어떡하나?, 매일 아무것도 안 하고 괜찮을까?'와 같은 답도 없는 질문을 쏟아낸다. 물론, 그 사실을 안 이후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보는데 남편은 옆에서 혀를 끌끌 찬다.
- 배가 불렀구만!
사실이다. 올해 들어 28년 간 꾸준히 유지되어 온 나의 몸무게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168cm 키에 49kg~52kg의 범위를 한 번도 넘은 적이 없는 저체중 까칠이다. 과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상반기 52.7kg을 육박하더니 하반기가 되면 53.4kg을 찍고 말았다. 충격이었다. ET같이 마른 팔다리와 긴 목에 배와 엉덩이 허벅지 부위만 살이 붙고 있었다. 직독직해하자면 그렇지만 실제 의미가 '걱정할 일도 아닌데 걱정하는 것을 보니 너는 등 따시고 배 부르구나' 라는 의미라는 것을 안다. 나의 실직은 우리 가정의 생존의 문제가 아니고 고로 나의 고민도 실제적이라기보다 정신적이다. 치열함이 빠진 나의 삶에는 어느 순간부터 군살이 붙고 있다.
- 맞아.
나는 나의 배를 움켜쥐고 상심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 찡빠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래.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서 하는 선택(Choice)의 연속이, 인생이라는 것이지. 하지만 사실 초이스보다는 코시던스(Coinsidence)라고 하더라. 인간인 우리가 정말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니. 그냥 운명대로,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거지.
- 우연?
- 응.
- 코시던스 아니고 코인시던스야. 무지렁이가 그런 건 어디서 봤냐?
- 짤
-ㅋㅋㅋㅋ
그 말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명언이다. 남편이 짤에서 만난 익명의 논객은 사르트르의 선택을 우연으로 바꾸었다. 그가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남편은 노를 들고 물길을 가르는 뗏목의 주인이 아닌, 그 밑을 흐르는 물길 같은 사람이다. 몇몇 그가 물 위를 타고 흐름을 만들려 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삶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산다. 그러니 '말한 대로 된다, 내가 원하면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내 바람을 이루어 준다'라고 말하는 유명한 자기 개발서 Secret와 코엘료의 연금술사와는 분명 다른 소신을 가진 사람이다. 삶에 순응적인 남편이 뗏목에 모터를 달고 물길을 헤치는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언제나 신선하다.
내가 선택해서 실직을 예정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의 삶도 노력한다고 원하는 대로 다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물론 기우제 마냥, 비가 올 때까지 간절히 빈다면 그 기도는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비가 오면 오고 아니면 어쩔 수 없지 어쩌겠냐는 말이 이제까지 내 삶의 원칙과는 다르지만, 그 또한 옳다는 생각이 든다. 난 언제 비가 올지 예측하고 기대하며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다.
다 괜찮을 거라고 꼭 안아줘.
나 보다 작은 남편이 팔을 위로 올려 나를 꼭 안아줬다. 귀엽게.
* [슬기로운 실직생활]을 매거진에서 연재로 전환하면서 부득이 1~3편이 중복됩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