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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Oct 30. 2024

실직 예정자

나의 쓸모와 나의 가치

(본 글은 10월 15일 브런치 연재 [화요일의 감사일기]와 중복됩니다. 본 연재의 시초가 된 글이라 부득이 가져왔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출근 준비 중에 원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일하는 상담센터의 원장님은 좀처럼 따로 연락하는 분이 아닌데 출근 전에 전화를 했다면 중요한 메시지가 있을 것으로 직감했다. 이미 원장님이 임대인이 임대료를 터무니없이 인상하려 하여 업장을 넘기려 한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7월에 한 번 임자가 나타나 정리할 기회가 생겼으나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 다시 운영하게 되었다. 역시나 긴급 전화의 이유는 폐업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아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인 11월 말에 폐업을 결정한 것 같았다.  


내가 이곳에서 일을 한지가 벌써 6년째이다. 나는 좀처럼 한 번 직장을 구하면 잘 움직이지 않는 편이다. 변화를 싫어하기도 하고, 상담사들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원장님을 만난 덕에 굳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이유가 없었다. 여러 센터를 다녔지만, 이곳에서 만큼 오래 일한 적은 없었다. 6년을 일하면서 회식이 딱 1회 있었다. 있는데 참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원장님이 그다지 사교적인 분이 아니어 정말 그간 딱 한 번의 공식적인 회식을 했다. 우리 센터는 회의도 없고, 보고도 없었다.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면 그뿐이었다. 나에게는 그런 원장님의 운영방식이 딱 맞았다. 


폐업을 한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럴 수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완전히 정리된다니 나 역시 좀 혼란스럽기도 하다. 사설센터에서 6년은 정부시설과 다르다. 이유는 정부시설에서 상담은 보통 10회기 내외로 한계가 정해져 있어 한 내담자를 오래 만나지 않지만, 사설센터에서는 내담자의 필요에 의해 상담자가 동일하게 존재하는 한 오래 만날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상담도 꼭 적정한 때가 아니어도 마무리를 지어야 하고, 나의 오랜 내담자들과도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 


보통 상담실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지만, 이 센터에서는 내가 오래 일하기도 했고 원장님이 나의 편의를 봐주어 재작년부터 4대 보험을 적용받아 일을 하고 있다. 그 덕에 나는 이번에 최초로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부기관에서 일을 할 때도 4대 보험이 되긴 했지만, 정부사업이 없어지기 쉽지 않고 내 성격상 일을 엉망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직을 당할 수가 없었다. 자발적 퇴사일 경우는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으니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일을 쉬었던 것은 출산을 하고 2년과 육아휴직을 했던 1년 총 3년이었다. 그 당시에는 24시간 아들을 돌봐야 해서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여러 여건을 고려할 때, 적어도 몇개월 쉬면서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가장 현명한 방법이나 '논다'라는 것이 아직 낯설다. 할 일이 없다는 것, 나의 쓸모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 좀 두렵다. 머리로는 나는 여전히 쓸모 있다, 능력 있다고 알고 쓸모가 없어도 나는 가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이 금액으로 가시화되는 평가에 나는 익숙하다. 


쉬고 싶으면서도 다시 빨리 일을 해서 나를 증명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가치를 쓸모로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가치 있다.

그리고 인간은 결국은 쓸모를 잃게 되는 존재이기에 이것 역시 익숙해져야 함을 안다.  

아는 것을 온전히 수용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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