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대대로 치아가 안 좋아서 이를 열심히 닦아도 잘 썩었다. 중학교 때부터 어금니가 하나둘 썩기 시작했는데, 짠순이인 엄마가 학원비와 병원비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이가 썩을 때마다 엄마가 금으로 이를 때워줬다. 수십 년 전에도 금은 비싸서 치과에 간다고 말할 때마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본을 뜨고 다시 가서 작은 금조각을 붙이고 또 본을 뜨고 금조각을 붙이는 일을 꽤 여러 번 반복했다. 치과는 예약을 하고 가도 꼭 30분씩은 기다렸는데 오직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그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불안도 죄책감도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시간.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참 바지런히 움직였다. 생각해 보니 미안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엄마가 장사를 시작했다. 아빠가 회사를 기어이 때려치웠고, 사장 감투에 빠져 허세를 부릴 때였다. 아빠는 경험도 지식도 없으면서 집을 지어 팔기 시작했고, 우리 집에는 돈이 씨가 말랐다. 생활비가 없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아빠가 현관문 앞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던져주고 나갔다. 엄마는 그 돈을 주워 나에게 가루 세제를 사 오라고 했는데, 박스로 나오는 슈퍼타이를 살 돈이 안 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손잡이에 동그란 플라스틱 고리가 달린, '향'이라고 씌었던 봉지 세제를 마트에서 사 왔다. 하지만 사업할 그릇이 못 되었던 아빠는 돈을 못벌었고 주부였던 엄마의 등을 떠밀었다. 겨울이면 뜨개질한 니트를 딸들에게 입혀주고, 저녁 반찬으로 갈치를 굽고, 부엌에서 늑대와 아기염소 동화를 들려주던 엄마는 억지로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 한 식당이 '르네상스'라는 경양식 집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는 사업 수완이 좋았다. 집에 가면 항상 있던 엄마가 없어지니 화분과 나무들이 시들어갔다. 엄마는 그때부터 20년 동안 여러 식당을 했다. 1년 365일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엄마는 꽤 돈을 많이 벌었지만, 매일 피곤했고 매일 불행했다. 엄마가 불쌍했고 그래서 미안했다. 엄마의 돈으로 밥을 먹고 교복을 사고 학원을 다니는 모든 것이 미안했다. 엄마가 번 돈은 한 푼도 쉽게 번 것이 없었으므로. 언니의 과외 선생님이 엄마에게 과외비를 받은 날, 언니와 동생인 나까지 데리고 그 당시 유행하던 TGI Friday에 갔다. 쿨하게 한턱 쏘는데 눈물이 났다. '차라리 과외비를 깎아주지. 우리 엄마가 힘들게 번 돈인데...' 그래도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학원비를 낼 때도 문제집을 살 때도 엄마가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미안했다. 돈이 많이 들어가도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그렇게 엄마를 희생시켜 내 욕심을 채운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공부를 진짜 열심히 했다. 집에 오면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하고 설거지도 했다. 학교에 있는데 갑자기 비가 오면 아침에 널어놓고 온 빨래 걱정을 했다. 그것이 나의 염치였다. 나는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냈다. 단 한 번의 반항도, 방황도 없었다.
습관이란 무섭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이어야 하고, 나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죄책감이 든다. 미안해서 계속 움직였는데, 미안할 일이 없어졌는데도 멈추기가 어렵다.
11월 30일에 드디어 퇴직을 했다. 엄청 신날 줄 알았는데 쓸쓸했다. 나는 이제 돈도 안 벌고 일도 안 한다고 생각하니 쓸모없어진 기분이 들었다. 뭔가 다시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 엄습했다. 청소하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도 다 했는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넷플릭스로 8시간 내리 드라마를 봤다. 다시 구직사이트를 뒤적였다. 그냥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목요일에 남편과 일월수목원에 갔다. <눈물의 여왕> 촬영지로 유명해 관람객이 바글거린다던 수목원은 겨울이라 그런지 손님도 없고 꽃도 없었다. 쓰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노트북에 블루투스 해드폰까지 챙겨서 출동했다. 고요한 온실에서 노트북을 켰는데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결국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음악을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것도 안 하고 음악만 들었다. 참 좋았다.
엄마를 갈아서 소비하던 나는 미안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 되었다. 선택은 내가 했던 것이 아니라 어른이었던 엄마가 한 것이므로 나는 그 혜택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굳이 모든 순간 치열할 필요는 없었다. 분명 그 치열함과 염치가 나를 바르게 키워냈으나 이제 그것은 나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문득, 지금이 치과 대기 시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되고, 시간에 쫓길 것도 없고, 그날 그날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된다. 하고 싶은 게 없으면 기어이 할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그게 내가 찾은 슬기로운 실직 생활이 될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해서 미안한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
그래도 주방의 여왕이니 밥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