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by 연상호, 최규석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진리인가 우울의 증상인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나는 내가 높은 데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줄 알았다. 겁이 많아 한강다리 같은데서는 못 뛰고 계단 위 난간에서 뛰어내렸는데 아팠다. 슈퍼맨은 아니어도 통뼈였는지 부러지진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노력하면 다 이룰 줄 알았다. 과외 선생님도 포기한 수학에 미친 듯이 매달렸지만 수능에서 수학을 반타작하고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다. 그 싫어하는 수학을 영어로 공부하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는 정말 노력하면 이룬다는 성공신화에 휩싸였다. 내가 수년간 목표해서 정복한 산은 내가 원한 그 산이 아니어서 기껏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몇 년간 뻘짓을 하고 원점에 돌아왔을 때, 난 한동안 멍했다.
평생을 무언가 되고 싶었다.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고 실천했다. 해나갈 때 뿌듯했고 이룰 때 기뻤고 닿지 않을 때 실망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고,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고 믿었다. 성장하지 않는 삶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인과와 효율로 움직이는 합리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꿈이었던 작가로는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우연히 발 담근 상담은 전업이 되었다. 열심히 노력한 사업은 망하고 기대하지 않은 투자는 (작은) 잭팟을 터트렸다.
평생 꿈이 은퇴인 남편에게 물었다.
- 나는 왜 이토록 아무것도 아닐까?
- 우리는 다 아무것도 아니여. 너만 그런 게 아니여.
- 현빈은 잘생기고 성공도 하는 것 같은데.
- 늙으면 똑같아. 그냥 좀 잘생긴 낫띵이여.
-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의욕이 안 생겨. 해서 뭐 하나 싶어서 안 하게 돼.
그는 이쯤에서 끝없이 순수한 눈이 된다. 뭐, 답을 찾으려고 물어봤던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현빈도 손예진도 머스크도 트럼프도 저 사람에게는 다 낫띵이구나 생각하니 묘하게 위안이 된다.
연산호 감독의 지옥 시즌 2를 몰아봤다. 정진수는 지옥의 고지는 인간의 죄에서 온다는 헤게모니를 만들고 그 선두에 선다. 하지만, 실제 그는 죄가 없는 자신이 왜 고지를 받았는지 인정하지 못하고 억울해하고 두려워하다 예정대로 지옥에 간다. 정진수가 만든 새진리회와 그를 추앙하는 화살촉은 마녀사냥을 시작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가 고지를 받았다는 것에 혼란에 빠진다. 여기까지가 시즌 1이다. 그리고 2에 서는 다시 부활한 첫 번째 죄인 박정자와 정진수가 다시 부활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과 부활에 인과의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만, 실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무더기의 고지가 쏟아지고, 자신을 구해 아이들에게 돌려보내주려 한 민혜진에게 부활자 박정자가 속삭인다.
세상은 곧 멸망할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그 말을 들은 민혜진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 소도로 돌아간다. 소도를 해산하며 "우리의 세상은 이제 새로 시작될 겁니다."라고 말한다.
신의 의도는 없고, 세상은 뿌린 대로 거두는 논리대로 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은 진리를 어떤 자세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개인의 소임이 있다. 자유로워질지 두려워할지 욕망할지 내려놓을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모르나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알고 있다.
두려워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