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싫지만 사람들과 있는 건 더 싫은 괴팍한 할망구
축축한 기분을 매캐하게 뒤흔든 소설을 만났다! 빨리 읽으면 끝나 버리니 조금씩 아껴서 읽을 만큼 재밌었다. 캐릭터가 살아서 눈앞에 그려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묘사와 대사 하나하나가 글 속에서 이미지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그래서 그 인물에게 정이 가고 궁금하고 다시 만나고 싶었다. 이 책은 이중세 작가님의 브런치북 [Drowning man] Ch.22 기준에 대하여-중에서 알게 된 소설인데 덕분에 참 감사히 읽었다. 오늘 검색하다 보니 한강 작가가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에게 추천한 책이라고 다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오래된 책인데 도서관에 예약이 되어 있어 의아했는데 이유를 알았다.
이야기는 미국 동북부 바닷가 근처의 시골마을인 크로스비라는 곳에서 펼쳐진다. 주인공이 다른 13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장편소설은 모든 이야기의 어딘가에 수학교사인 올리브와 맞닿아있다. <약국>은 올리브의 남편 헨리의 꺼낼 수 없었던 사랑이야기가, <밀물>에서는 올리브의 제자인 케빈이 자살을 위해 가던 길에서 우연찮게 올리브를 만나 생애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야기가 <작은 기쁨>은 올리브가 주인공이 되어 아들의 결혼식에 참여하여 며느리인 수잔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은 작은 시골동네에서 올리브와 그녀가 알만한 인물들에 대한 완성된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산발적이지만 시간의 흐름대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올리브와 친구들도 늙고, 가족을 잃고, 외로워진다.
이중세 작가의 소개 글에 "어떤 슬픔이 사람을 뒤틀리게 만드는지, 그런 뒤틀림이 다른 어떤 뒤틀림을 만드는지, 그러면서도 결국 그러한 뒤틀림을 다시 펴지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책에 다 나온다고 하여 궁금증이 일었었다. 올리브나 다른 캐릭터들이 왜 뒤틀렸고, 또 그 뒤틀림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분명 보았다. 하지만 마지막 무엇이 꼬임을 다시 푸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다정한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올리브의 인생은 크게 뒤틀린다. 그녀의 상실감과 불안은 자식인 크리스토퍼에게 족쇄가 되고, 결국 가장 곁에 두고 싶었던 아들은 그녀의 곁을 떠난다. 지극히 엄격하고 통제적인 어머니 아래 자란 헨리는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자신의 욕구는 억누르고 거절을 잘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다른 캐릭터들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 뒤틀림은 완전히 펴지지 않는다. 올리브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변덕스러워 성장한 아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헨리는 뇌졸중으로 지각을 잃고서야 예의 충만하던 친절을 잃는다. 인간은 죽어야 변한다더니!
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아서 좋았다. 올리브는 주구장창 괴팍하고 참을성 없고 까탈스럽지만 나름의 찐~한 인간애를 가지고 있다. 괴물딱지지만 매력적이다. 동화 속 착한 공주님도 위인전의 성자도 아니지만 스릴러의 사이코 패스도 아니다. 그 정도면 괜찮다. 꼬임이 다 풀리지 않아도 인생은 계속되고 그런대로 또 산다. 나와 당신이 그렇듯. 꽤 외롭고 다 만족스럽지 않고 대부분 뜻대로 되지 않지만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