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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욕망이 있었다.

카네이션보다 체스맨

by Lali Whale

한동안 욕망이 다 죽어버린게 아닌가 생각했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일에는 열정이 없었고 삶에는 취미가 없었고 인간관계에는 애정이 없었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기대가 컸던 거다. 내가 생각하는 열정은 밤에 잠도 안자고 쏟아부어야 했고, 취미는 발을 동동구르게 하고 싶어 안쓰고 모은 통장을 헐어야 했고, 인간관계의 애정은 약속이 깨지면 서운해서 길가에서도 소리를 지를 정도 되어야했다. 그랬던 20대가 지났다고 내 욕망이 죽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욕망은 자기가 욕망인듯 아닌듯 납작 엎드려있었다. 그러니까 '감사'라는 이름을 달고 말이다.


감사의 내용을 보니 모든 것이 욕망이었다.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고 싶은 마음이 그득그득 차 있었다. 다만 이전 보다 나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많아지면서 각각의 강도가 조정된 것 같았다. 가족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 아들이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 아들이 친절해주길 바라는 마음, 작가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 남편과 즐겁게 연애하고 싶은 마음,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 자연과 생명이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 그런 바람이 내 안에는 한번도 '0'이 아닌채 있었다. 한 마디로 욕망 덩어리였다!


심지어 엊그제는 아들이 어버이날 선물을 안 줄 것 같아 스스로 선 주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페퍼리지팜의 체스맨!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아 해외구매대행 사이트나 온라인쇼핑몰에서 살 수 있는 나의 최애과자이다. 하지만 그 가격이 사악하여 자주 사먹지 않는데 카드값이 리셋 되는 5월이 되자 마자 다른 누구의 선물보다 먼저 구입했다. 물론, 지난 달 10일간 스페인에 가면서 할부로 긁은 카드값은 리셋되지 않고 길고 굵은 꼬리를 흔들고 있지만...ㅠㅠ 고소하면서 많이 달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바삭한, 버터향이 팡 터지는 이 요망한 쿠키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화려하지 않은 맛인데 자꾸 생각이 난다. 매달 2봉 정도를 사서 매일 두어 조각을 혼자 커피와 함께 먹었다. 얼마나 맛있던지^^ 미국에 있을 때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고작 쿠키라는게 우스꽝스럽지만, 사실이다. 멕시칸 요리나 지중해 요리, 중국요리도 많았지만 그런 건 우리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맛을 낸다. 그런데 이 과자는 딱 이것 뿐이다. 미국에서 과자가 당도하면 나는 숨겨놓고 혼자 먹을 것이다. 무엇이든 와구와구 먹는 멧돼지에게 절대 뺏기지 않을 것이다! 이 과자는 오로지 나를 위한 선물이니까!


몸이 늙어 마음도 늙은 것인가 싶었는데, 아 그런 내려놓음은 아직 나에게 오지 않았구나!



화요일의 감사일기

- 가정의 달에 나에게 선물을 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체스맨이 빨리 오고 아들이 눈치채지 못한다면 더 감사할 것 같습니다.

- 내일이면 길고 미칠 것 같던 연휴가 끝납니다. 아들이 학교를 가서 감사합니다. 방과후로 베드민턴도 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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