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밤의 벨소리

by Lali Whale

막 잠이 오려던 찰나에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규현과 싸우고 수업을 짼 날이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내가 너무 구질구질해서 핸드폰 전원을 껐다 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무음에 진동이라는 타협을 한 나는 간신히 의식을 잃으려던 순간 미세한 진동을 지진처럼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하마터면 여보세요 대신 ‘규현아’라고 소리칠 뻔했지만, 엄마의 빠른 선공으로 그 망신만은 면했다.


“세나니? 안자?”

“자려는데 깼지. 누구 땜에.”

“사돈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네. 모레 발인이니까 내일은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내일 뭐 해?”

“뭐라는 거야? 누가 죽어?”

“하나 언니네 시아버지. 아무래도 가봐야겠지? 너 내일 뭐 해? 시간 비워나. 알았지?”


질문인지 독백인지 명령인지 모를 ‘정애체’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막 지나 있었다. 지난해 추석에 큰언니의 바깥사돈이 암이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큰 형부가 늦둥이였는지 아버지 나이가 꽤 많았고, 암을 너무 늦게 발견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도 함께 떠올랐다. 전화기 진동이 울리는 순간 이미 곰실곰실 오던 잠이 썰물처럼 쑥 빠져나갔다. 어차피 돌아가신 거 내일 전화해도 될 것 같은데 이 시간에 전화 한 엄마에게 짜증이 났다. 솔직히 남자친구가 아닌 엄마여서 실망스러웠다.


“엄마! 응급상황 아니면 오밤중에 전화하지 말랬지! 어차피 돌아가신 거 낼 전화하면 되지! 나 잘 못 자는 거 알면서 이 시간에 꼭 전화를 해야겠어?”

“누가 전화 꺼놓으래! 이 년은 꼭 엄마가 전화하면 안 받고 지랄이더라.”

규현이 때문에 전화를 꺼놨던 것이 기억났다. 아차 싶었지만 이대로 꼬리를 내릴 수는 없었다.

“잠 다 깼다고!”

“사돈이 돌아가셨다는데 네 잠이 중요해? 됐고! 야, 너희 아빠한테 전화나 해봐. 사돈 장례식에 혼자 갈 수도 없고. 하여간 웬수가 따로 없어.”

“아빠?”


엄마는 언제나처럼 내 얘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기 말만 하는 것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어 놀랍지도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오랜 별거 끝에 결국 법적으로도 남이 되었다. 내가 대학교를 입학하던 때였다. 하지만 첫째 언니와 둘째 언니가 결혼할 당시는 적어도 무늬는 부부였기 때문에 두 사돈은 며느리의 부모가 이제는 이혼하여 남이라는 사실을 모르셨다. 엄마는 우리 딸 셋이 모두 시집갈 때까지는 법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려 했기에 어떻게든 이혼만은 피했었다. 그렇게 아빠는 엄마의 낡은 고집의 수혜자였다. 물론 스스로 말아먹었지만.


아빠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가장이 아니었다. 결혼하지 말아야 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어디라도 기댈 언덕을 찾아 쉬고 싶어 하는 한량이었다. 엄마가 개미라면 아빠는 딱 베짱이였다. 엄마는 비가 오기도 전에 흙을 쌓아 입구를 막았고, 아빠는 비가 와도 몸이 흠뻑 젖을 때까지 놀다 들어왔다. 아빠는 돈이 있으면 썼고 없으면 빌려서 썼다. 들어온 만큼만 나가야 한다는 가정경제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남편 이름으로 날아오는 끊임없는 빚 독촉에 불안해하는 것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다. 엄마는 아빠라는 ‘등신대’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남편의 빚을 갚았다. 허울뿐인 부부관계를 지키기 위한 역대급 투자였지만, 나는 차라리 코인을 사는 게 만 배는 낳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이혼은 죽어서도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였다. 게다가 그 주홍글씨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새겨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그런 엄마의 고리타분한 생각을 식기세척기에 넣어 열탕소독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설거지는 손으로 빠득빠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럼 싸우지나 말던가. 엄마는 아빠를 내치지 못했지만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모든 순간 참 지겹게 싸웠다. 차라리 깨끗하게 헤어지고 욕이나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1년에 3650번 넘게 생각했다. 물론 화가 나서 자지러지는 쪽은 대체로 엄마였다. 아빠는 엄마에게 빚을 넘기고 욕을 받는 게 나름의 기브엔 테이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호락호락하진 않아도 아내의 삶에 빨대를 꽂으면 아빠는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아빠는 이혼을 원할 이유가 없었다.


놀라운 것은 결국 이혼을 요구한 것은 결코 이혼을 원하지 않던 아빠였다는 것이다. 가족 중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아빠의 야심 찬 사업이 또 망했을 때였다. 이혼을 하지 않으면 기어이 집과 집기에 빨간딱지가 붙을 것을 직감한 아빠의 재빠른 대처였다. 아빠는 젖과 꿀이 흐르는 전쟁터를 떠났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빠가 살면서 거의 처음으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던 순간이었다. 엄마는 그런 염치조차 없다면 인간도 아니라고 씩씩 거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의 선택이 아빠가 가족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숭고한 자기희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뒤로 술에 진탕 취하면 나에게 전화를 해 그때 이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우는 소리를 하며 추태를 부렸다. 실제 엉엉 울 것 같을 때면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울리는 전화는 무시했다. 어쩌면 아빠의 희생은 잠깐의 허세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허세가 아니었다면, 엄마의 노년 연금이자 나의 월세 보증금의 기반이 되어준 엄마 명의의 꼬마 상가는 벌써 날아가고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내인 내가 결혼할 때까지 어떻게든 ‘보통가족’의 모습을 지켜내려던 엄마의 노력이 결국 물거품이 되었을 때, 아빠의 이름은 '웬수'가 되었다.


“그래. 네가 연락 좀 해봐.”

“내가 왜?”

“그 웬수도 가야 할 것 아냐!”


엄마가 하지 않은 말속에, '사돈들은 다 우리가 아직 부부인 줄 아는데'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엄마는 지금도 나에게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지 말도록 명령했다. 이제는 그런 거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지긋지긋하게 싸우던 부모님이 완전히 이혼했을 때 나는 오히려 좋아서 '축 이혼'이라고 SNS 상태표시줄에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의 부재를 '애들 아빠는 지방에서 사업해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엄마의 남편이 아닌 나의 아빠는 그 당시 지방에서 친구의 용역사무실에서 자리 나 봐주면서 용돈을 받았었는데, 엄마는 그런 전남편의 처지에 허풍을 가미해서 친구와 함께 용역사무소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일부의 진실이 섞인 그 거짓말은 그 둘이 여전히 부부 관계를 유지한다고 믿게 만들었다. 설령 의심스럽더라도 물어볼 수는 없는 선긋기였다.


“두나 언니한테 얘기하라고 하면 안 돼? 왜 매번 나한테 그러는데.”

“야! 잔말 말고 내일 두나 네 집으로 10시까지 와. 언니네 차 타고 함께 가기로 했으니까.”

“나 내일 수업 있는데.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언니한테는 부모야. 언니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얘는 지금 무슨 얘기하니. 지가 언제 그렇게 공부 열심히 했다고.”

“엄마가 열심히 하라며! 성적 안 나오면 방 뺀다고 한 게 누군데!”


그랬다. 지금 내가 사는 안락한 원룸은 성적을 볼모로 어렵게 얻어낸 자유였다. 엄마는 학교 근처 원룸을 얻어주는 대신 성적장학금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하느라 시간도 없고 피곤해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독립을 주장했던 주요 이유였기 때문이다. 재수까지 하고 기어이 서울의 대학으로 입성한 데는 당당하게 집을 나가고 싶은 절실함이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려고 한다면야 못 갈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서울의 4년제 대학을 가면 학교 앞에 오피스텔 얻어줄게.'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턱걸이로 겨우 서울의 비주류 대학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고심하는 듯했다. 대학 브랜드가 약속을 지키기도 안 지키기도 애매했는지 돈이 없다는 거부할 수 없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엄마를 들들 볶고 외박을 밥 먹듯 했으며 보란 듯이 성적을 내팽개쳤다. 엄마를 항복시키려는 목적이었는데 살면서 그렇게 신나고 쉬운 투쟁은 없었다. 엄마는 결국 백기를 들었지만 나의 육신은 투쟁의 습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장학금은 고사하고 학사경고를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집을 나온 지 한 학기 만에 다시 본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너 이거 간다고 성적 안 나올 것 같으면 때려치워!”

“그래? 알았어. 그럼 때려치워야겠네. 엄마가 말한 거다!”

“이 미친년이.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고 내일 시간 맞춰서 와.”

“최정애 여사님 이거 선수끼리 왜 이러시나. 우리 솔직해집시다.”

“이게 또 왜 이 지랄이야. 안 갈 거면 때려치워 이년아.”

“그래? 그럼 끊을게.”

“야! 너 진짜 방 빼고 싶어.”


걸려들었다. 난 엄마의 약점을 알고 있다. 나의 아빠. 그녀의 전남편이며 아직 대외적으로는 쇼윈도 부부로 되어있는 이성구 씨. 두고 가자니 거짓말이 들통 날 것 같고 데려가자니 꼴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 엄마는 아빠와 말 한마디도 섞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혼식이나 돌잔치, 장례식 같은 공식 이벤트가 있을 때는 꼭 나를 데려갔다. 아빠와 15cm 옆에서도 엄마는 나를 통해 말했다. 마치 아빠는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사람처럼, 엄마는 아빠의 언어는 한 단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말을 직접 하지 않았다. 나도 처음에는 운명이려니 하고 그들 사이에 끼어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것이 엄마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이번 기회에 어차피 망한 성적에 얹어 한국을 떠날 기회를 베팅해 보자!


“교환학생. 나 내년에 교환학생 갈 거야.”

“뭐라고?”

“교환학생 간다고.”

“이게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영어성적 받으면 교환학생 갈 수 있대. 이미 신청해 놨어.”


뻥이었다. 영어성적도 없었고 학교성적은 턱없이 낮았으며 아직 신청 시기도 아니었다. 교환학생으로 시작해서 안 되면 어학연수로 턴해서 굳히면 그뿐이었다.


“이게 또 얼렁뚱땅 치고 들어오네.”

“얼마나 좋은 기횐데. 다들 못 가서 안달이야. 경쟁률도 엄청나다고. 학비는 한국 대학 학비 내면 되는데 갈 때 비행기 표랑 생활비는 내가 내야 한대.”

“이미 된 거야? 이게 엄마한테는 말도 안 하고. 어느 나라 간다고?”

“그거야 최 여사님이 얼마 지원해 주시느냐에 따라 다르지.”

“야, 알겠으니까 우선 아빠한테 연락이나 해. 너 하는 거 봐서 결정하겠어.”


앗싸! 성공이다. 엄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 은 몰랐다. 백 프로는 아니지만 엄마가 단호히 끊지 않은 결정은 79% 이상 긍정에 가까웠다. 나는 교묘히 엄마의 대답은 피하고 의도적으로 엄마의 오해를 방관했다.


“어머니, 아빠에게 뭐라고 전할까요?”

“얼씨구. 언니가 부고문자 보내준다고 했으니까 보고 장례식장 앞에서 보자고 해. 시간 잘 맞춰서 오라고 하고. 하여간 늦으면 가만 안 둔다고 해!”

“네 어머니. 그런데 장례식장은 어디?”

“전라도 끝인데. 거기 뭐 벚꽃노래 유명한 데 있지.”

“장범준 말하는 거야? 버스커 버스커?”

“어, 그래그래.”

“벚꽃 아니고 여수밤바다. 헐. 여수?”

“맞다. 여수. 늦지 마! 10시 출발이야!”


엄마는 할 말을 다 했는지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친구였다면 욕을 싸지른 후에 단박에 차단을 걸었겠지만, 그녀는 친구가 아니었다. 나의 물주이며 나의 언덕이고 나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잠자코 따라가야 할 팔자였지만, 여수라니 눈앞이 깜깜했다. 숨만 쉬고 가도 왕복 8시간 거리였다. 엄마와 언니, 형부에 고래처럼 소리를 질러 대는 조카까지 한 차를 타고 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이미 다시 자기는 글렀고 차라리 밤을 새웠다가 차에서 기절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전기포트에 물을 끓였다. 라면도 담을 만큼 큰 머그컵에 커피를 한 사발 내렸다. 내일 장례식장에서 아빠를 제때 만나려면 아빠한테도 빨리 연락을 해야 했다. 뜨거운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만에 겨우 연결이 되었을 때, 아빠는 이미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아빠를 서너 번 불러 정신을 차리게 한 후, 형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또 서너 번 넘게 하고서야 내일 장례식장에서 만나자는 약속에 알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아직 부고 문자를 못 받아서 장례식장 위치는 내일 보낼 테니 가능한 한 빨리 여수로 오라고 문자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로 핸드폰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교환학생을 검색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 생각보다 많은 곳으로 기회가 열려있었다. 어떻게 그 순간 교환학생을 가겠다는 말이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가 기특했다. 구글맵을 통해 LA 해변을 둘러보다 항공권을 검색했다. 그러다 메일을 열어 교수님들에게 수업을 빠질 수밖에 없는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적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예 오늘부터 여수에 있었던 것으로 하고 오늘 땡땡이친 수업의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돌아가신 사돈에게는 죄송하지만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기분이 좋아져 스트리밍 어플에서 장범준의 음악을 재생시키고 SNS를 뒤적였다. 규현의 인스타에 새로운 사진이 업로드되었다는 알림이 떠있었다. 나랑 자주 가던 스터디카페 인 듯했다. 내 메시지는 읽씹 하면서 인스타질을 하고 있다는 데 1차 빡이 차올랐고, 내 시험은 말아먹게 하고 지는 이 밤까지 태연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 2차 빡이 차올랐다. 이례적으로 반년 넘게 만나고 있는 규현과는 틈만 나면 싸웠다. 반복되는 레퍼토리는 규현이 연락이 안 되는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었다. 사생활 존중이냐 연인 간의 배려냐를 두고 우리는 결말 없는 논쟁을 이어가다 결국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나는 그의 인스타에 올라온 사진을 확대해서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조금만 더 넓게 찍혔다면 뭔가 보일 것 같아 엄지와 검지를 계속 뻐끔거렸지만 그의 맥북과 아이패드, 마우스와 텀블러 외엔 보이지 않았다. 최근 사진 밑으로 달린 댓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도 확인했다. 이러는 내가 스토커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프로필까지 파헤쳤지만 사이 새벽이 밝았다. 이제 곧 아침이라고 방심했던 것 같다. 잠시 눈을 감은 것 같은데 떠보니 9시 50분이었다.


망했다!


세수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열어 택시를 불렀다. 10시가 되면 엄마의 정제되지 않은 쌍욕이 날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보다 엄마는 한번 화가 나면 아무리 내가 필요하다고 해도 가버릴 사람이었다. 아빠 보다 더 한 웬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교환학생은 둘째치고 장례식장에 가느라 성적을 망쳤다는 핑계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양말도 신지 앉은 채 어제 쓰던 가방에 핸드폰과 충전기, 블루투스 이어폰과 헤어 롤을 쑤셔 넣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5분 이내에 택시가 온다는 알림이 울렸다. 집에서 지체한 시간 6분, 이동 3분, 언니 집까지는 25분이 걸린다. 다행히 러시아워는 피해 갔지만 여전히 밀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거의 날다시피 계단을 내려가 집 앞에 대기 중인 택시에 올라탔다. 도착 예정 시간은 10시 24분. 엄마는 시간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극혐 했다. 원래도 싫어했지만, 아빠가 매번 늦었기 때문에 더 싫어했다. 10시가 넘었다. 이제 엄마의 욕을 겸허히 들을 때였다. 연락이 와야 욕을 먹고 욕을 먹은 만큼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불안했다. 10시 15분이 됐을 때, 둘째 언니에게 메시지가 왔다.


2나: 야, 너 아빠한테 뭐라고 얘기했기에 아빠가 이리로 와! 엄마 완전 빡쳤어!"


아찔했다. 나는 분명 여수로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등에서 땀이 났다. 억울했다.


3나: 아빠한테 여수로 오라고 했다고!


나는 아빠에게 보낸 문자를 캡처해서 언니에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