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혼돈의 카오스

by Lali Whale

2나: 몰라. 빨리 와. 여기 완전 혼돈의 카오스야.


택시는 예상 시간에 맞게 나를 언니네 아파트 정문 앞으로 인도했다. 23000원. 백수 대학생에게 큰 액수였지만 지금 택시 값을 아까워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언니네 아파트 동이 정문 바로 앞에 있었기에 더욱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를 강렬하게 째려볼 엄마의 눈초리가 벌써부터 뒷 꽁지에 꽂혔다. 그러고 보니 장례식에 간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집에서 입던 트레이닝 복 그대로 뛰쳐나왔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미라클 모닝을 하겠다고 시작도 전에 장만한 베이비 핑크색의 트레이닝복이었다. 소모임 어플에서 ‘새벽 러닝 모임’에 가입하고 딱 1회 뛰고 집에서 추리닝 대용으로 입고 있었다. 깔 맞춤으로 구입한 러닝화도 무의식 중에 챙겨 신고 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누가 봐도 동네 편의점에 가는 모양새였다. 어차피 망한 거 핸드폰 전원을 끄고 나의 원룸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허공에서 내 이름이 울려 퍼졌다. 믿기지 않았다.


“이세나! 이세나!”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목소리인가 하는 찰나, 핸드폰으로 엄마 얼굴이 떴다. 분명 웃는 사진을 대표사진에 넣어놨는데 화를 내고 있었다.


“이세나 빨리 안 들어와!”


엄마는 이를 갈고 있었다. 목소리가 울려 퍼진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엄마가 베란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10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그녀의 눈빛이 보일 리 만무하지만, 나는 분명 느꼈다. 나를 째려보는 눈에서 발사되는 강력한 레이저를 말이다. 난 결국 도망가지 못하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아파트 입구로 들어갔다.


내가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 사람 좋은 형부가 제일 먼저 나를 반겼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고 뻘쭘하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발길이 멈췄다. 소파에는 아직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빠가 앉아 자고 있었고, 엄마가 그런 아빠와 나를 번갈아 째려보며 식탁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유난히 다정하게 조카의 이름을 부르며 작은 방으로 걸어갔다.


“동호야. 동호야 이모 왔다.”

“동호 안방에서 티비 봐. 나오면 시끄러워지니까 그냥 내버려 둬.”


동호가 아닌 언니가 내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있는 식탁으로 갔다.


“누가 지 아빠 딸 아니랄까 봐 시간 딱딱 지키는 꼴 좀 봐.”

“조금밖에 안 늦었거든. 택시까지 타고 왔는데.”


엄마는 비비 꼬인 반어법을 '지 아빠 딸'이라는 칼에 담아 내 심장에 꽂았다. 비위가 찔려 질질 새어나갔지만 참았다. 언니네 집에서 싸울 수는 없었고, 내가 늦은 것도 맞았다. 엄마는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쏘아댔다.


“옷 꼴딱 서니 하고는. 놀러 가냐?”

“몰라. 갑자기 나오느라. 언니 옷 까만 거 옷 뭐 없어?”

“내건 클 텐데. 잠깐.”


언니는 나를 엄마 옆에 혼자 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엄마가 우아한 척하는 표정으로 내 귀에 대고 작게 쌍욕을 했다.


“야 이년아! 여수로 부르라고 했지 누가 이리로 부르래! 저 웬수가 왜 여기 있어?”


나 역시 웃는 얼굴로 엄마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여수로 오라고 했다고. 나도 모른다고.”

“어떡할 거야!”


나는 엄마의 등쌀에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가서 졸고 있는 아빠를 흔들어 깨웠다.


“아빠! 일어나 봐. 여수로 온다더니 어떻게 이리로 왔어?”

“여수?”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난 아빠가 난생처음 들었다는 듯이 되물었다.


“이제 와서 웬 딴소리야? 어제 전화로도 여러 번 얘기하고 문자도 보냈잖아!”


일을 해결하는 것보다 우선 내 억울함을 푸는 것이 먼저였다. 책임소재는 분명히 해야 두고두고 엄마에게 조리돌림 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아빠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핸드폰을 열어 뒤적였다. 내가 아빠를 닦달하고 있는 사이 안방에서 동호를 데리고 형부가 나와 말했다.


“오늘 아침에 아버님께 전화드렸더니 서울이라고 하셔서 내가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는데.”


이 정도 시간을 보냈으면 엄마와 아빠가 원수보다 못한 사이라는 것을 알만도 한데, 형부는 바보인 건지 아니면 일부러 우리를 먹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형부 특유의 '허허' 하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노라면 전자라고 믿고 싶어졌다. 다행히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내가 아니라 형부인 것이 밝혀지면서 엄마의 나를 향한 칼날이 다소 무뎌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이 많은 인원이 어떻게 여수까지 가느냐에 있어서는 아직 해답이 없었다. 그때, 검은색 옷을 한 더미 가져온 언니가 말했다.


“시댁에 동호를 맡기고 여수로 바로 가는 게 어때? 어머님께는 아범이 아침에 얘기해 놨대.”

“그지. 뭐 좋은 데 간다고 어린애를 거기까지 데려가서 고생시켜. 잘했네.”


엄마가 형부 앞이라 그런지 언니를 대놓고 추켜세웠다. 나는 그런 엄마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때까지는 그럼 6명이 한 차에 타는 거야?”

“시댁까지 한 시간이면 가니까 그때까지만 좀 찡겨 타면 되지 않을까?”


언니가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가 형부를 의식한 채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 저 웬수 고속버스 타고 오라고 해.”


엄마의 속상임에 대안을 제시할 여유도 없이 형부가 말했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저희 부모님이 장인 장모님 오신다고 지금 씨암탉 잡는다고 하셨거든요. 이미 가마솥에 들어가 있을 거예요. 같이 가셔서 드시고 바로 여수로 가면 될 것 같아요. 우리 처제랑 어머님이 날씬하니까 뒤에 넷이 타도 아무도 모를 껴.”

“토종 삼계탕! 어휴 맛있겠네!”


아빠가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이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삼계탕이 눈앞에 있는 듯, 얼굴에는 흐뭇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은근히 노려보며 분명 욕을 하고 있었으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사돈들에게 그럼 너무 피해지. 윤 서방. 그냥 동호만 맡긴다고 하고 애쓰지 마시라고 해. 사돈어른 힘드신데.”

“아니에요. 동호 온다니까 두 분 다 너무 좋아하세요. 사돈들 만나다고 좋아서 그러시는걸요.”


언니는 내 몸에 자신의 검은색 옷들을 이것저것 걸쳐보며 말했다.


“그래 이제 뭐 다른 방법도 없고. 그냥 빨리 가자.”


옷은 하나같이 컸고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타이트한 베이비 핑크색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장례식장에 갈 수는 없었기에 그중에 제일 작아 보이는 옷을 골랐다. 두나 언니는 분명 결혼하기 전에는 나와 몸무게 차이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결혼을 한 후 점점 체중이 늘더니 동호를 낳고는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언니는 지금까지도 산후조리 때 엄마가 고아준 가물치 엑기스를 너무 많이 먹어 찐 거라고 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허리가 벤딩 처리 된 펑퍼짐한 검정 점프 수트를 입고 신발은 어쩔 수 없이 핑크색이 가미된 하얀 러닝화를 신어야 했다. 언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우스꽝스러운 옷을 돈 주고 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스스로도 현타가 왔었는지 옷은 입은 흔적이 없는 새것이었다.


“쟤는 하필 골라도.”


엄마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무시했다. 오랜 시간 동안 차를 탈 것까지 고려해서 고른 가장 편안한 착용감에 장례식장에서도 애써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스타일을 계산한 결과였다. 나는 내 분홍색 트레이닝복을 쇼핑백에 넣어 잘 챙겼다. 아빠는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듯 신나는 표정이었다. 그런 아빠를 등 뒤에서 노려보는 엄마의 눈에는 아까 내가 느꼈던 강력한 레이저가 분출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호만 엄마에게 공짜로 얻은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며 고래 같은 함성을 질렀다. 형부는 뒷자리에 있던 카시트를 탈착 해서 트렁크에 실었다. 카시트 밑으로 말라붙은 우유 찌꺼기와 거기에 엉겨 붙은 과자 부스러기가 가짜 가죽 시트에 찐득하게 묻어있었다. 언니가 그 자국을 물티슈로 급하게 닦았으나 꽤 오래되어 보이는 얼룩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언니는 트렁크에서 차 닦는 극세사 걸레를 가져와서는 얼룩이 보이지 않게 덮었다. 우리 모두 그 더러운 광경을 목도했지만, 못 본 척했다. 걸레 반쪽에 나의 엉덩이 반쪽을 신세 져야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언니가 동호를 무릎에 앉히고 창가 쪽에 앉았고, 엄마가 이미 쥐도 새도 모르게 반대편 창가에 앉아있었다. 나는 잠깐이라도 급브레이크가 밟힌다면 앞 유리로 날아갈 것 같은 뒷좌석 중앙에 앉았다. 신이 난 동호가 옆자리에 간신히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발길질을 하며 장난을 걸어왔다. 이제 출발인데 머릿속이 하얘졌다. 엄마는 자포자기한 심정인지 이제는 차창 밖만 내다볼 뿐이었다.


오직 아빠만이 잠에서 완전히 깨어 설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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