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가 있는 동안은 자리는 불편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날카로운 엄마의 신경은 공룡 같은 녀석의 존재로 혼비백산하여 잠시 로그아웃 되는 듯했다. 녀석은 내 발을 차는 것에 지쳤는지 짧은 팔을 뻗어 할머니에게 장난을 걸었다. 나를 사이에 두고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공룡과 뽀로로와 루피는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 좁은 허공을 상회했다. 마음 같아서는 조잡한 공룡 새끼도 왕대가리 피규어도 모두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사진 한 장, 글 한 줄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기도할 뿐이었다. 깜박 잠이 들려고 할 때, 엄마가 내 옆구리를 쿡 쿡 찌르며 속삭였다.
“야. 네가 놀아줘.”
엄마는 언니 대신 동호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몸집이 있는 언니가 동호를 계속 안고 있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여 당신 자리로 데려왔지만, 이제 놀아줄 에너지는 바닥이 난 모양이었다. 좁은 자리에서 뚱뚱한 몸을 웅크리고 이마에는 땀을 삐질 삐질 흘리고 있는 언니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앞을 보니 아빠의 고개가 직각으로 꺾여 뚝 떨어져 있었다. 혼자 앞자리에 앉아 침을 흘리고 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빠는 두나 언니가 애를 안고 있는 것도 눈치재지 못했는지 좌석을 뒤로 뉘어 놓고 자고 있었다.
아빠는 항상 그랬다.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데,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몰랐다. 얘기를 하면 듣기는 했으나 그때뿐이고 연속성이 없었다. 과거에 부잣집 막내아들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어느 누구에게도 확인할 길은 없었다. 어릴 때, 이사를 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포장이사라지만 이사가 끝난 후에도 다 정리되지 않은 짐이 많았다. 아마도 엄마가 업체와 가격을 깎고 깎는 과정에서 완벽한 정리 서비스는 대충 이동만 해주는 정도로 후려쳐진 듯했다. 엄마는 우리가 스스로 정리해야 할 어마어마하게 많은 박스와 이삿짐 바구니를 잠도 자지 않고 정리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런 엄마의 발버둥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누울 자리만 만들어 10시가 되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엄마가 기어이 달려와 소리를 지르기 전까지는 마치 혼자만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태평했다. 얘기하고 재촉을 하면 움직였지만 그때뿐이었다. 아빠는 잘 때마다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인지 아침이면 과거의 경험치를 모두 잃고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런 아빠에게 엄마는 지쳐갔고 어느 시점부터는 욕이 늘었고 혼자 모든 일을 헤쳐나갔다.
“아빠! 아빠! 의자 좀 세워봐. 언니 좁잖아!”
아빠가 멍한 눈으로 일어나더니 나의 재촉에 얼른 제쳐져 있던 좌석을 일으켰다.
“아빠, 앞자리 밑에 손잡이 있어. 그거 당기면 좌석 앞으로 이동되니까 그것도 좀 당겨봐.”
“이거? 안 되는데?”
“잘해봐. 된다고. 조금만 당겨봐.”
“아. 이렇게!”
두나 언니가 이제야 바짝 오므리고 있던 다리를 조금 앞으로 폈다. 언니는 나를 보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딱 붙어 있었다. 언니는 불편한 게 있어도 참았고, 모두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할 말은 꿀꺽 삼키고 지냈다. 언니가 있었기에 까다로운 엄마도 속풀이 할 상대가 있었고, 독불장군인 큰언니도 서울에 오면 쉬고 갈 곳이 있었다. 언제나 자기가 먹고 싶고 가고 싶은 곳보다는 엄마가 먹고 싶은 것, 동호가 놀만한 곳, 형부가 좋아하는 식당에 가야 편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언니에게 짐 하나를 더 얹고 싶지 않아 가능하면 연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언니는 학생인 날 위해 많지 않은 돈이지만 용돈을 보내주기도 하고, 자기 옷이나 속옷을 살 때면 내 것도 같이 사서 나눠주곤 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언니는 자기만큼 착한 남편을 만났다. 그들은 밤마다 서로의 집에 쌀가마니를 옮겨다 주는 의좋은 형제처럼 본심은 숨긴 채 서로가 원할 것 같은 일을 말하지 않고 해 주었다. 가끔 정답이었고 대부분 오답이었다.
아침부터 설레발을 쳤던 공룡 조카는 이제야 방전이 되어 작은 발을 나에게 뻗고 잠이 들었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를 보는 엄마의 표정이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평화는 태풍의 눈이었다.
동호가 잠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윤서방. 어디 과일가게에도 좀 들러봐. 근처에 하나로 마트 없나?”
“과일가게요?”
“온 가족이 가면서 맨손으로 갈 수가 있나. 알았다면 미리 준비를 했을 텐데…….”
엄마는 앞자리에 앉은 아빠를 째려보며 말했다. 형부는 차를 시내 쪽으로 돌려 마트가 있는 방향으로 갔다. 엄마는 차가 주차되기가 무섭게 내리며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동호를 의자에 뉘이고 엄마를 따라 나갔다. 엄마는 형부가 내리기 전에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도 엄마가 내 귀를 당겨 이제는 엄마의 손이 내 쪽으로 오기만 해도 닭살이 돋았다.
“야. 너희 아빠한테 과일 좀 사라고 해. 저 웬수 부의금 얼마 할 건지도 좀 물어봐. 쫌팽이! 30만 원 이상은 내라고 해.”
엄마의 숨결과 간헐적으로 튀는 침 때문에 말의 내용은 콕콕 들어오지 않았다. 대충 엄마는 돈 쓰기 싫으니 아빠 지갑을 열게 하라는 지령과 사돈 장례식에 가는데 자식들 면을 깍지 않도록 단도리 하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아빠와 엄마가 한 공간에 있어서 가장 불편한 사람은 나였다. 작년에 동호의 돌잔치 때도, 엄마와 아빠는 마치 사이좋은 부부인 것처럼 함께 잔치에 참여했다. 그때도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며, 엄마의 불만과 독촉을 이혼한 전남편에게 전달했다.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 자녀, 코다도 아니고 지척에 있으면서 그 말을 나를 통해 전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었다. 다행히 그 둘이 자주 만나는 일이 없었기에 이제까지 참고 있었지만, 정말 싫었다. 내가 남자친구가 생기면 엄마가 원튼 원하지 않튼 반드시 부모님 사이를 공개하고 그 둘 사이에 끼여 있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괜히 엄마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가는 긴긴 여행에 어떤 폭탄이 터질지 몰랐다. 불과 몇 개월 전 엄마의 환갑 때, 큰언니가 기어이 엄마의 역린을 건드리면서 오랜 기간 거액을 들여 준비한 환갑은 폭망하고 말았다. 엄마는 자신을 위해 모인 손님들을 뒤로한 채 케이크에 불도 끄지 않고 꽃다발을 던지고 나가버렸다. 그 썰렁하고 뻘쭘한 파티는 주인공 없이 계약한 시간을 채우고 끝났다. 큰언니는 애들과 남편을 데리고 가버리고 나와 두나 언니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자리를 빛내준 귀빈 여러분께' 사과를 했다. 그리고도 몇 날 며칠을 엄마의 풀리지 않은 분노와 한탄을 들어주는 일로 귀에서 피가 났다. 엄마의 신경을 건드리는 행동을 했다가는 지난해 간신히 이룬 독립의 쾌거가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지만 엄마 명의인 오피스텔을 그대로 반납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비상상황에서는 엄마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피해를 줄이는 일임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나는 말없이 앞문을 열어 아빠를 잡아끌었다.
“아빠 마트 같이 가자. 아빠 부의금 뽑았어? 얼마 낼 거야?”
“50만 원.”
“대박. 웬일? 아빠 요새 하는 일이 잘 되나 봐?”
아빠가 으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살짝 불안했지만 지금 따질 수는 없었다. 아빠가 50만 원이나 부의금을 내는데 과일값까지 내게 하는 것이 조금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엄마를 설득하러 가는 것은 너무 귀찮았다. 대신 할인을 많이 하는 사과와 멜론을 박스로 골라 계산대에 갔다. 아빠는 가격을 보더니 흠칫 놀라는 것 같았으나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었다. 뒤 따라온 형부가 사과와 멜론 박스를 트렁크에 넣었다.
나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엄마, 아빠가 50만 원 이미 뽑았다는데.”
“그래? 웬일이래. 쫌팽이가.”
“엄마는 그냥 묻어가면 되겠는데.”
나는 오늘 처음으로 엄마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차에 탔을 때, 동호는 이미 깨어서 신이 나있는 상태였고, 언니는 다시 넋이 나가 있었다. 마트에서 형부의 집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상견례와 결혼식, 돌잔치에서 뵌 적이 있으나 이렇게 집으로 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가마솥에서 거대한 토종닭이 끓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입맛이 뚝 떨어졌다.
'아놔. 삼계탕 개 싫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