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시댁 어르신들은 형부처럼 순박하고 정이 많은 분들이었다. 나에게도 예쁜 사돈처녀라며 볼 때마다 두 손을 꼭 잡거나 등을 토닥여 주셨다. 나는 형부 어머니의 두툼하고 투박한 손이 닿을 때마다 움찔하면서도 따뜻한 호의를 감안해 가능한 손을 빼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나를 통과하면 예의 그 솥뚜껑 같은 손이 엄마를 향해 갔고 엄마는 잠시 잡혀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천천히 그리고 매끈하게 자신의 손을 빼냈다. 뭔가 입으로는 사돈의 말을 경청하는 것 같으나 모든 신경은 자신의 손을 안전하게 빼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고양이처럼 쓰윽 빠져나갔다.
형부의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 이제는 쓰지 않는 별채 아궁이에 장작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그 위로 시꺼먼 무쇠 가마솥이 얹혀있었다. 삼계탕이 펄펄 끓고 있는 냄새가 대문 밖까지 진동을 했다. 나는 코를 막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어 숨을 꼭 참았다. 지난해부터 채식을 시작한 나로서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꼬꼬 울며 닭장을 누볐을 건강한 암탉의 죽음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냥 마당에서 뛰어놀면 20년도 살 닭이 오늘 사돈집의 대거 출동에 삼계탕이 된 것이다. 거대한 토종닭의 목이 꺾이고 털이 뽑히는 광경이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보이는 것 같았다. 순살 프라이드치킨이나 하나씩 포장된 닭 가슴살은 그래도 '음식' 같아 보였지만 다리를 꼬고 있는 맨살의 닭은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은 '닭'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도 삼계탕이나 돼지국밥, 소머리국밥, 매운탕처럼 자신의 정체성이 너무 뚜렷이 보이는 음식은 잘 먹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더럽게 까다로운 년'이라고 하면서도 외식이나 가족식사를 할 때는 한 번도 그런 음식을 준비하거나 먹자고 하지 않았다.
안사돈의 손을 미꾸라지처럼 빼내는 엄마와 시댁에 와서 눈치 보기 바쁜 둘째 언니와 그런 모든 것과 상관없이 가마솥 앞에 서서 코를 벌름 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아빠가 보였다. 그런 아빠 곁으로 바깥사돈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의 손에는 지역 막걸리 한 병이 소중하게 쥐어져 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그 막걸리를 사돈의 손에서 뺏고 싶었지만, 내 권한 밖의 일이었다. 아빠는 절제를 모르는 사람이었고, 원래도 허술하지만 술을 마시면 허술한 야생원숭이 같았다. 이대로 혼자서라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는 거실의 소파 가장 구석에 앉아 핸드폰만 주야장천 쳐다봤다. 하지만 모든 감각이 우리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훑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거실의 소파 앞에는 교자상 두 개가 이어져 붙어 있었다. 그 위에는 이미 대여섯 종류가 넘는 김치가 소복이 담겨 있었다. 마당에는 삼계탕이 끓고 있는데, 집 안의 주방에서는 부침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삼계탕이 배달되기 전에 두 남자를 위한 파전과 호박전, 도토리전이 차려졌다. 막걸리 한 병이 삽식간에 비워졌다.
“사돈! 사돈! 자주 만납시다!”
“좋지요.”
“제가 요새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게 말입니다. 아주 기가 차단 말이에요.”
“예?”
“이게 아이티 사업이에요. 아이티. 제 친구 놈 하나가 그냥 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여간 몇 날며칠을 따라다녀서 말입니다. 우리 세나 엄마도 아는 사람인데. 당신 민식이 알지?”
엄마는 ‘우리 세나 엄마’란 말에 싸늘해졌고, '사업'이라는 말에 매서운 눈초리를 숨기지 못했다. 이제 법적으로 남이지만, 아빠가 사업을 하겠다는 말은 엄마에게는 비상경보기의 긴급 버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 딸 셋에게도 그랬다. 아빠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허세가 심하고 팔랑 귀였다. 남의 밑에서 오래 일하지 못했고, 친구라는 이름의 사기꾼들의 꼬드김에 너무 쉽게 넘어갔다. 아빠가 부의금으로 50만 원을 뽑았다고 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컴퓨터 전원도 킬 줄 모르는 아빠의 입에서 '’IT'라는 말이 나왔을 때 이미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담컨대 아빠는 IT가 무슨 약자인지도 모를 것이 분명했다.
“민식이가 자꾸 날 찾아서 정말 어쩔 수가 없어서 한 번 가봤거든. 그런데, 들어보니 이거다! 싶은 거야. 사돈도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아이고. 저야 농사밖에 모르는 시골 촌놈인데 들어야 알겠습니까.”
“아니에요. 사돈! 한 번 들어보세요.”
조신한 아내 마냥 조용히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가 내게로 다가와 옆구리를 찔렀다. 엄마는 복화술의 대가가 분명했고 가끔은 텔레파시도 잘 보냈다. 입이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야! 너네 아빠 사고 치기 전에 가서 말려!' 나도 엄마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엄마 전남편은 엄마가 좀 말려.' 하지만 엄마에게는 닿지 않았다. 엄마의 눈에서는 나의 실행을 재촉하는 레이저가 강렬하게 쏘아져 나왔다. 정말 가기 싫었다. 가능한 못 들은 척하며 버텨보았다. 엄마가 악소리가 날 정도로 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오만상이 찡그려졌지만, 도저히 일어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아빠, 장례식장 가야 하는데 이러다 취하겠어.”
“아! 우리 막내딸! 장례식장 가야지. 내가 막내딸 말은 잘 듣지.”
아빠가 나랑 되게 친했던 것처럼 나를 껴안으려고 해서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엉덩이를 뺐다. 갑작스러운 나의 부존재에 아빠가 잠시 휘청 했지만 이내 다시 균형을 잡고는 부침개를 집어 입 안 가득 넣었다. 아빠는 단순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짜증 났다. 미워하고 싶어도 보면 측은했다. 저 한심한 사람이 나의 아빠라는 것이 평생 싫었지만,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 때마다 분노도 반감도 무릎이 꺾였다. 엄마와 아빠, 나의 신경전에 아랑곳없이 언니와 안사돈이 커다란 스텐 쟁반에 산더미만 한 닭을 담아왔다. 뜨거운 김이 목욕탕 로고 마냥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도망가고 싶었다. 이번에는 내가 엄마 옆구리를 찔렀다.
“나 안 먹어. 어떻게 좀 해봐.”
엄마가 나를 잠시 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이고 이 귀한 걸. 저희 때문에 너무 고생하셔서 이걸 어째요. 아휴. 윤 서방은 괜한 소리 해서 이렇게 부담을 드리네.”
“아니에요. 사돈. 저희도 농사일 아니면 한 번 가봐야 하는데. 가서 사돈처녀에게 잘 좀 말해주세요.”
“무슨 말씀을요. 아침부터 너무 애쓰셨겠어요. 이 귀한 걸.”
이미 식탁에는 동호와 형부까지 모두 자리했고, 안사돈 어른이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 손으로는 닭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이내 닭다리 한쪽이 허벅지까지 쭉 찢어져 아빠의 대접에 담겼다. 엄마와 나의 접시에도 잘려나간 닭의 몸뚱이가 전달되려는 찰나 엄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고 맛나겠다. 그런데 지금 우리 막내가 한약을 먹고 있어서 고기를 먹지 말라고 그러네요. 그지? 그때 한의사가 그렇게 말했지?”
“어. 고기는 다 먹으면 안 된대.”
“그래요? 이걸 어째. 그럼 이거 막내 사돈처녀는 뭘 주나. 미리 알았으면 다른걸. 좀 더 준비했을 건데!”
“여기 이렇게 먹을 게 많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사돈! 전혀 신경 쓰지 마세요. 진수성찬이네.”
엄마가 닭다리를 소금에 찍어 먹으며 말했다. 잠시 모든 가족들의 시선이 한약 때문에 고기를 못 먹는 '불쌍한 막내'에게 집중되었다. 아빠가 이 맛있는 걸 못 먹어 어쩌냐는 요지의 말을 했지만 입안에 고기를 가득 물고 있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젓가락으로 밥만 깨작거렸다. 엄마가 그런 날 보며 혀를 끌끌 찼지만 나 이외에 아무도 눈치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