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인생은 핑크

by Lali Whale

“사돈처녀! 엉덩이에 그게 뭐야?”


두나 언니와 함께 상에는 놓인 무수한 닭 뼈의 잔해를 치우느라 바쁘게 거실과 부엌을 오고 가고 있는데 언니 시어머니가 말했다. 동호와 놀아주고 있던 형부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고 있던 아빠의 시선도 내 엉덩이에 꽂혔다. 고개를 돌려 엉덩이를 봤다. 잘 안 보여서 허리와 골반을 있는 대로 비틀었다.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부분에 새똥에라도 앉은 듯 허옇게 뭉개진 얼룩이 보였다. 카시트에 찐득하게 말라 있던 우유가 확실했다. 하필 중간에 앉은 내 엉덩이에 묻었다는 것이 억울했다. 언니의 검정 옷, 그중에서 위아래가 연결된 점프슈트를 고른 나의 머리통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엄마가 물티슈로 내 엉덩이를 힘껏 문질렀지만, 얼룩의 크기만 더 커졌을 뿐이었다. 사돈어른은 나에게 본인이 입던 옷이라도 내어주려 하셨지만, 후덕한 언니보다 더 뚱뚱한 육십 대 할머니의 옷은 도저히 입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트렁크에 고이 넣어놓았던 나의 분홍색 트레이닝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시작도 전에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들었고, 옷 때문에 장례식장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또한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나를 째려보기만 할 뿐 나를 두고 가는 옵션 따위는 전혀 안중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닭과 부담으로 배를 가득 채운 우리는 동호를 형부의 본가에 두고 다시 길을 떠났다. 나는 뒷좌석 중앙에서 홀로 핑크빛으로 원치 않는 존재감을 뽐냈다. 막걸리가 들어간 아빠는 코를 골며 잠을 잤고, 배가 빵빵해진 엄마와 언니도 이내 잠이 들었다. 형부만이 잠이 들지 않으려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핸드폰만 보려 해도 그런 형부가 눈에 밟혔다.


“형부 안 졸리세요?”

“아냐 괜찮아 처제. 처제도 졸리면 좀 자.”

“아니에요. 형부 좋아하는 음악 있으면 틀어드릴까요?”

“노래? 좋지. 난 다 좋아해. 처제 듣고 싶은 거 틀어도 돼. 연동해 줄까?”


형부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핸드폰 블루투스 연결 장치를 내 핸드폰으로 바꾸었다. 나는 핸드폰에서 음악 스트리밍 어플을 뒤적이며 같이 들을 만한 노래를 골랐다. 막 음악을 재생하려는 순간 규현에게 전화가 왔다. 아무리 싸웠다고 하지만, 내가 어제부터 학교 수업을 안 오고 있는데 점심이 훌쩍 지나서야 연락하는 그에게 화가 났다. 씹어버릴까 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서 통화버튼을 누른 순간 나는 아차 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여보세요. 너 나랑 싸웠다고 설마 어제부터 학교 안 나온 거야? 시험인데 어쩌려고 그래?”

차 안의 정적을 깨고 규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막걸리에 취해 코를 골던 아빠마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야? 듣고 있는 거야? 세나!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세나 아빤데. 세나 남자친구니?”

당황한 규현이 멈칫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뀨현씨, 저는 세나 언니예요.”

“아, 안녕하”


자동차 내부 스크린에 내가 연락처에 저장해 놓은 ♡내사랑뀨현♡과 그의 프로필 사진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나는 규현의 인사가 끝나기 전에 얼른 블루투스 버튼을 끄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뒤늦게 핸드폰을 손으로 가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이따 전화할게. 나 지금 가족들이랑 어디가.”

엄마도 잠에서 깨어 나를 빤히 보았다.

“공부한다고 방 얻어줬더니 연애만 한다 이거지? 어제는 시험인데도 학교에 안 갔다 이거네.”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왜 하필 그때 전화를 해서 모든 것을 폭로하는 빌런이 된 것인지 옆에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었다. 엄마의 눈이 가늘게 나를 노려봤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바쁘다는 나의 거짓말이 모두 들통났고, 몰래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의 존재를 들켰으니 앞으로의 감시도 걱정이었다. 이 김에 화끈하게 헤어지고 역시 한국을 떠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임무를 완수한들 엄마가 교환학생 비용을 결제해 줄지 걱정이었다. 우선 잡아떼는 것이 상책이었다.


“아니야. 친구야 친구. 남사친.”

“남사친 이름에 누가 그렇게 하트를 많이 달아 놓는댜. 내사랑뀨현이래 뀨현! 큭큭큭”

언니가 옆에서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나를 놀렸다. 나의 부질없는 방어는 투명방패처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친구 목소리가 좋던데. 아빠는 언제 소개해줄 거야?”

눈치도 없이 아빠가 끼어들었다. 언니가 옆에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남친이랑 왜 싸운 건데? 언니한테 얘기해봐. 오빠랑 연애하던 때가 언젠지 이제 기억도 잘 안나. 진짜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동호 생긴 후로는 데이트도 거의 못했지?”

“그러게. 좋을 때다. 처제 부러워!”

“아니라고요. 아니라고. 제발!”

방관하던 엄마마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같은 학교야? 과는? 어디 사는 애야? 부모님은 뭐 하신대?”

“우와. 미치겠네. 급발진. 내가 걔 부모님 뭐 하는지 어떻게 알아!”

“맞어. 엄마. 그건 너무 나갔다. 얘 아직 대학생인데. 결혼할 것도 아니고. 사진은 더 없어?”

“그래 사진 한번 올려봐. 띠는 뭐래? 엄마가 관상 보면 딱 알아.”

“엄마 진짜? 관상 볼 줄 알아?”


두나 언니가 신이 나서 엄마와 얘기했다. 다들 무료한 중에 신나게 물고 뜯을 오징어땅콩이라도 발견한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음악 스트리밍 어플에서 헤비메탈 음악을 골라 가장 큰 음량으로 재생시켰다. 기타와 드럼 소리가 차 안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핸들을 잡은 형부를 제외하고 모두 귀를 틀어막고는 빨리 끄라고 소리를 질렀다. 모두 신나 보였다. 음악 소리가 작아지고도 언니와 아빠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도 왠지 지금 상황이 우스꽝스러워서 웃을 뻔했지만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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