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휴게소를 털어라!

by Lali Whale

“화장실! 윤 서방! 화장실! 어이구!”


나를 심심풀이 삼아 물고 뜯던 하이에나들이 한참을 낄낄 거리더니 이내 흥미를 잃고 다시 꿈에 세계로 들어갈 때였다. 아빠의 긴급한 외침은 우리 모두를 일시에 깨웠다.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호남고속도로 갈아타서 한참을 달리던 중이었다.


“아까 논산 근처에서 휴게소 지난 것 같은데 어쩌죠? 아버님. 자기야 다음 휴게소 얼마나 남았는지 좀 봐줄래?”

형부가 급하게 언니를 호출했다. 언니는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켜고 다음 휴게소를 찾았다.

“흡! 어. 급한데. 급해!”


젖은 걸레처럼 축 널브러져 있던 아빠가 잔뜩 긴장해서는 손으로 엉덩이를 막고 있었다. 그때, '푸우웅' 하는 방귀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일제히 얼굴을 찌푸리고 코를 막았다. 형부가 재빨리 차 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우리를 구했다. 창문을 열고도 몇 번은 더 지독한 독가스가 살포되었다. 뒷자리 중간에 앉아 창문은 가장 멀고 아빠의 엉덩이와는 가장 가까운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녀석은 일반 방귀라기에는 냄새가 너무 똥의 그것이었다. 마치 공중화장실 문을 열고 떨리는 마음으로 덮여있는 하얀 변기뚜껑을 열었을 때, 누군가 싸질러 놓은 똥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문을 닫고 화장실을 나갈 수도 없게 나는 좁은 차 안, 그것도 정중앙에 박혀 있었다. 점심에 먹은 밥과 부침개가 위 안에서 격렬히 동요하고 있었다. 나는 코를 틀어막고 코맹맹이 소리로 아빠에게 쏘아붙였다.


“아빠! 설마 싼 거야?”

“아냐. 진짜 아냐. 하지만 곧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때 언니가 소리쳤다.

“아빠! 10킬로 아니 15킬로. 여산휴게소 나올 거야. 아빠 조금만 참아봐! 어!”

“아버님 제가 있는 힘껏 밟아보겠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형부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동차의 속도계가 급격히 올랐다. 130km로 달리는 차 안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때 옆자리로 고개를 돌리니 엄마가 열린 창문 밖을 향해 얼굴을 쭉 빼놓고 있었다. 과속으로 달리는 차 안으로 밀려드는 광풍에 엄마의 곱게 세팅된 머리는 들판의 잡초처럼 나부꼈다. 하지만 전남편의 똥 싼 것 같은 방귀를 피하겠다는 일념으로 머리가 산발이 된 것을 모르는 엄마의 얼굴은 꽤 평화로워 보였다. 난 엄마가 잠시 만이라도 더 평온하길 기대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 정도 고난도 미션이라면 교환학생이 아니라 1년 정도의 어학연수까지도 딜 해볼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내 사랑 뀨현'은 모두의 뇌리에서 이미 사라진 것 같았다.


형부가 과속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온 덕에 아빠는 사위와 딸, 전부인 앞에서 대낮에 똥을 싸지르는 창피를 면할 수 있었다. 아빠는 차가 주차라인에 들어가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런 아빠를 보며 엄마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저 웬수가 멧돼지처럼 처먹을 때 나는 이렇게 될 줄 알았어. 하여간 웬수가 따로 없어.”

나는 이제 더는 숨길 수 없는 현실을 엄마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엄마 머리 산발됐어.”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급히 가방 안에서 콤팩트를 열어 작은 거울에 자신의 머리를 비춰보았다.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짧게 터지더니 엄마 역시 화장실로 뛰어갔다. 형부도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풀어졌는지 운전석에 축 늘어져있었다. 언니와 나는 차에 남은 방귀의 기운에서 벗어나고자 밖으로 나왔다. 이제 2시간 정도면 장례식장에 도착할 테고 더는 휴게실을 들르지 않을 것 같아 우리도 화장실에 갔다. 엄마는 화장실 거울 앞에 붙어 가방 안에 있던 핑크색 롤을 꺼내 머리에 말고 있었다. 여분으로 롤을 들고 다니는 것이 나와 같다는 것에 웃음이 났다. 풍성한 헤어스타일이 여자의 자존심이라는 엄마의 오랜 반복학습으로 인한 것이었다.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롤을 앞머리에 말고 핸드건조기에 갖다 대고, 또 다른 쪽 머리에 롤을 바꿔 끼고 바람을 쐬는 일을 반복했다. 바람이 중구난방으로 엄마의 머리를 헤집었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잘 되지 않아 보였지만, 엄마는 결연한 표정으로 머리를 세팅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입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을 보니 아빠를 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난 그런 엄마를 뒤로 하고 화장실문을 하나하나 열어 변기뚜껑이 열려있는 곳을 찾았다. 안심하고 변기뚜껑을 열었을 때 진짜 그분과 마주한다면 이번에는 정말 점심에 먹은 모든 것을 게워낼 것 같았다.


한동안 화장실에서 머리를 부풀리고 고정하기를 반복하던 엄마가 화장품을 꺼내 파우더와 립스틱을 발랐다. 드디어 엄마의 재정비가 끝나고 나와 언니는 화장실을 나와 차가 주차된 곳을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고성이 오고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아빠가 있었다.


“아. 저 웬수. 정말 왜 저 지랄이니. 야, 네가 가봐. 아우, 짜증 나.”


엄마가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또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 역시 한숨이 푹 나왔다. 형부는 아빠 옆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고 아빠는 모르는 아저씨에게 언쟁을 높여 말하고 있었다. 아빠에게 설교를 듣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저씨의 검은색 세단의 왼쪽 옆구리가 형부의 하얀색 SUV 오른쪽 범퍼에 살짝 닿아있었다. 하필 급똥을 해결하고 온 아빠가 차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인 것이 분명했다. 아빠가 앉았던 좌석이 뒤로 있는 힘껏 젖혀져 있었다.


“차가 버젓이 있는데 그걸 그렇게 빼면 어떡해요!”

“별로 닿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냥 여기서 해결하시죠.”

“뽑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차를 이렇게 흠집 냈으니 어쩔 거요!”

“보험 불러요. 잘 보이지도 않는구먼.”

“뭐라고요! 그런데 당신 술 마신 거 아니야?”

“술은 무슨 술을 마셨다고 그래요!”

상대가 발끈해서 더 핏대를 세웠다. “

“얼굴도 좀 빨간 거 같은데. 윤서방! 경찰 불러야겠다. 112에 연락해!”

“어허. 아니라는데 왜 그러실까. 거기 젊은 양반, 범퍼에 조금 닿은 건데 좋게 좋게 해결합시다.”

“윤 서방 경찰 불러. 마셨네. 마셨어.”

“얼마에 하면 되겠어요? 10만 원에 합의합시다.”

“이런 미친 사람! 50만 원은 줘야지! 수리 맡기면 우리는 걸어 다니나?”


한동안 수리비를 놓고 실랑이가 있었다. 아빠의 말대로 그 아저씨에게서는 희미하게나마 술 냄새가 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항의하는 아빠에게는 더 진한 막걸리 냄새가 났고, 술에 취한 둘은 싸울 듯 말 듯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아빠의 목적도 그 아저씨를 경찰서에 보내거나 보험을 부르는 것이 아니었고 합의를 해서 어떻게든 현금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 결국 35만 원에 합의를 본 아빠는 기세가 등등했다. 하지만 아빠가 그 돈을 슬쩍 주머니에 넣으려는 것을 본 엄마가 나를 다시 호출했다. 이제는 엄마의 눈빛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빠, 합의금은 형부 줘야지. 형부 차잖아.”

“그렇지. 그러려고 했어.”


아빠는 멋쩍게 웃으면서 나를 살짝 노려봤다. 아빠가 상대차주에게 받은 돈을 어쩔 수 없이 형부에게 내주었다. 형부 역시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돈을 받았다. 옆에서 두나 언니가 신나는 표정으로 형부를 바라봤고, 형부는 아빠에게 받은 돈을 언니에게 건넸다. 사실 형부 차는 언니와 형부가 여기저기 박아 놓은 통에 한두 군데 더 박는다고 크게 티가 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검은색이 선명한 일직선을 만든 것이 보였다. 나는 물티슈로 범퍼의 검은 부위를 문질러 닦았다.


“다 비워냈더니 출출한데! 윤 서방 돈도 벌었는데 한턱 쏘게!”

아빠는 답도 듣지 않고는 휴게소 간식 코너로 씩씩하게 걸어갔다.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는 언니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아빠가 얼마 줬어?”

“30만 원.”

“뭐야. 그새 5만 원을 삥땅 친 거. 헐!”

“내버려 둬. 아빠 아니었으면 오빠는 한 푼도 못 받았을 거야.”

“인정. 아빠 아까 그렇게 먹고 또 먹겠다고 가는 거 실화임? 언니, 나 아아 마셔도 되지?”


나도 언니의 팔짱을 끼고 휴게소로 향했다.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보상금을 챙긴 것에 내심 만족하고 있는 눈치였다. 핸드폰 메시지로 자신은 따뜻한 라테와 호두과자를 사 오라는 지시가 있었다. 두나 언니는 나와 함께 휴게소로 가면서도 연신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형부 것까지 다섯 잔의 커피를 사서 차로 돌아왔다. 우리가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아빠가 소떡소떡의 양념을 뚝뚝 흘리며 차에 탔다. 곧이어 알 감자, 사이다와 뻥튀기를 한 아름 안고 형부가 운전석에 앉았다. 차 안은 소떡소떡의 양념냄새와 알감자의 달큼한 튀김냄새로 가득 찼다. 좀 전까지 방귀냄새가 가득 찼던 곳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마치 좁아터진 원룸에 함께 살고 있는 가족 같았다.


언니는 한 손으로는 커피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연신 핸드폰 화면을 두드리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고개를 돌리면 대화 내용이 훤히 보였다. 아빠는 안경을 꼈지만 나도 언니들도 시력은 모두 1.5였다. 시력이 좋은 엄마는 안경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아빠가 안경을 써서 똑똑한 줄 알고 한참을 속았다고 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이 바보였다고 스스로를 원망했었다. 시력만큼은 모두 동일하게 모계유전이었다. 하나 언니였다. 언니는 왜 빨리 안 오냐고 두나 언니를 재촉하고 있었다. 곤란해하며 땀을 삐질 흘리는 이모티콘이 언니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우린 들 세월아 네월아 가고 싶어 이러겠냐고.' 라며 볼멘소리가 나왔다. 먹지도 않는 삼계탕 대접받아, 개인정보 탈탈 털려, 똥방귀 테러 당해, 접촉사고 나! 이 차에서 나만큼 중도하차하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왜 빨리 와야 하는지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가야 장례식이 시작하는 것도 아니었고, 돌아가신 사돈 어르신이 우리를 목 빼고 기다리실 리도 없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아빠가 일이 일찍 끝났다고 빨리 출발했대. 이러다 다 만나는 거 아니야. 미치겠네.'


아빠! 아빠! 아빠! 하여간 아빠들이 문제다.

이전 06화6. 인생은 핑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