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

by Lali Whale

살짝 보니, 하나 언니는 엄마가 장례식장에 체류할 시간을 대략 계산해서 친아빠와 마주치지 않게 조문 시간을 조율한 것 같았다. 우리가 아침 10시에 출발해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을 것까지는 계산에 넣었으나 내가 아침에 늦게 도착했고, 아빠가 합류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두나 언니의 시댁에서 거나하게 삼계탕에 막걸리를 마시느라 시간이 지체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뿐이겠는가, 휴게소에서 접촉사고가 나서 실랑이를 벌이고 엄마는 화장실에서 머리를 새로 매만지느라 긴 시간을 허비했다. 하필 언니들의 친아빠는 예상보다 빨리 온다고 하니 자칫하다가는 엄마의 전남편 둘이 한 자리에서 마주하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 말은 아무것도 모르는 여수 사돈이 며느리의 두 아버지를 마주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오랫동안 엄마가 가까스로 숨겨온 가족의 비밀, 그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다. 그 뒤에 벌어질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닫아놓은 판도라의 상자가 살짝 열릴 뻔한 일이 과거에 딱 한 번 있었다.


다행히 완전히 개방되어 장내가 난장판이 되진 않았지만, 그 일로 엄마와 하나 언니 사이에는 히말라야 산 중의 얼음 크랙 같이 깊고 예리한 균열이 생겼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한창 구구단을 배우는데 유독 8단을 못 외워서 학교에서 놀림을 당했었다. 하나의 언니의 결혼식이 있는 주말, 나는 식장에서도 열심히 구구단을 외웠다. 엄마는 핑크색 한복을 입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엄마는 언니의 나이 든 시어머니에 비하면 젊고 예쁘고 우아했다. 나의 엄마라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예쁜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아빠는 그런 엄마 옆에서 지금과 같이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도 엄마가 사준 예쁜 드레스를 입고 두나 언니와 함께 가족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나 언니는 내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화려하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텔레비전 공주님들이나 쓸 만한 반짝이는 왕관을 쓰고 머리부터 발끝을 길게 내려뜨린 베일이 너무 부러워 질투가 났었다. 문제는 결혼식이 끝나고였다. 그때는 누군지 정확히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하나 언니의 아버지였던 것 같다. 엄마가 결혼식 피로연에 앉아 있는 어떤 아저씨를 발견했고, 그때부터 가족들은 모두 엄마의 눈치를 봤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저씨를 죽일 듯이 째려봤고 하나언니를 싸늘하게 노려봤다. 좀 전까지 부부의 절을 받으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를 챙겨주던 두나 언니가 '엄마 화났으니까 조용히 있어. 알았지?'라고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언니가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에 신부 가족들을 위한 대기실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름답게 화장을 했던 언니가 두 눈에서 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왔다. 엄마는 탈진한 듯 의자에 앉아 숨을 헉헉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뒤의 모든 일정은 엉망진창이었다. 엄마는 친척들과 인사 한 마디 하지 않고 집에 들어와 몇 날 며칠을 머리를 싸매고 누워있었다. 그리고 신혼여행이 끝나고 하나 언니가 돌아오기 전, 엄마는 분연히 일어나 집을 나갔다. 언니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집에는 엄마도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음식도 없었다. 아빠가 식당에서 사 온 회 한 접시와 막걸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언니의 눈치를 보는 두나 언니와 여전히 구구단을 외우는 내가 있었다. 하나 언니와 형부는 한 참을 마네킹처럼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는 드디어 8단을 다 외웠다고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줄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빠와 두나 언니가 어떤 말을 해도 하나 언니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언니에게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꽤 오랜 시간 그렇게 앉아 있던 언니는 큰 형부와 함께 처음 왔던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갔다.


난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른다. 하지만, 둘째 언니의 결혼식을 보면서 큰언니가 가지지 못했던 엄마의 손길과 역할을 보았다. 두나 언니는 엄마를 거스르는 어떤 일도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언니의 결혼식을 하나의 언니의 결혼식처럼 눈물과 분노로 끝내지 않았다. 두나 언니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기 며칠 전부터 엄마는 매일 마트에 갔다. 집은 온갖 음식 냄새로 가득했고 보석 상자처럼 고운 상자들에는 과일과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가득가득 담겼다. 엄마는 그 모든 것을 손수 준비했다. 엄마에게 '원래 결혼하고 돌아오면 이렇게 해주는 거야?'라고 물으니 엄마가 원래 이렇게 이바지 음식해서 사돈에게 보내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왜 하나 언니 때는 안 해줬어?라고 물으니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나 언니가 친아빠를 결혼식장에 불러서 엄마와 그 난리가 났는데, 이번에는 장례식장에 불러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굳이 그래야 했을까? 중간에 낀 두나 언니는 머릿속이 마비된 것이 분명했다. 막판에는 어떤 물음에도 엉엉 우는 이모티콘 만을 줄기차게 보내고 있었다. 언니는 호랑이 같은 엄마도 무섭고, 기 센 하나언니의 고집을 꺾을 힘도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엄마의 전전남편, 그러니까 언니들의 친아빠는 그 존재만으로 엄마에게는 역린이었다. 엄마는 나에게는 아빠 욕을 했지만, 언니들에게는 그들의 아빠 욕을 했다. 그는 해리포터의 최종 빌런인 볼드모트 같은 존재였다.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He Who Must Not Be Named)*' 우리 집에서 누구도 그의 이름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됐다. 두려움 때문은 아니고 엄마의 분노가 너무 컸기 때문에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볼드모트에게는 '웬수'도 아까웠는지 그에게는 사물을 지칭하는 대명사인 '그거'라는 호칭이 붙여졌다.


몇 년에 한 번씩 언니가 엄마랑 크게 싸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언제나 볼드모트가 등장하며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하나 언니는 '아빠'라고 하고, 엄마는 '그게 무슨 아빠라고 그렇게 불러!'라고 소리쳤다. 그전에 오간 얘기의 내용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그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에 대한 인신공격이 모든 목소리를 덮었다. 지밖에 모르는, 자식도 나 몰라라 하는, 짐승만도 못한 '그거'에 대한 엄마의 분노는 그렇게 한 번 터지면 몇 날 며칠이 지나도 풀리지 않았다. 결혼식장에서였을 거다. '여자한테 미쳐서 가족 다 버리고 간 새끼'라는 욕과 함께 '나 혼자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설움에 받힌 분노가 터져 나왔다. 두나 언니가 옆에서 울었다. 난 엄마를 이토록 화나고 슬프게 하는 언니가 미웠다.


엄마의 말을 이어 붙여 보면 볼드모트는 상간녀 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떠났고, 아마 그 뒤로도 양육의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아마 요새 같았다면 베드파파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생활비나, 학비, 학원비, 언니들의 결혼 비용도 대부분 엄마가 냈다. 언니들이 스스로 모아서 마련한 것도 있겠지만, 엄마의 푸념을 종합해 보면 이 집의 모든 인간들은 엄마에게 빨대를 꽂고 있었다. 누구 하나 거드는 것들이 없다는 얘기를 밥 먹듯이 하는 것을 보면 아마 엄마가 다 낸 것 같았다. 나의 아빠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엄마 성격에 줘도 안 받았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지만, 볼드모트가 돈을 줬을 것 같지도 않았다. 엄마는 과장과 왜곡은 하지만 완전한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언니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빠를 챙기는 이유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꼭 그때 한 장소에서 모두 만나 원수처럼 싸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혼식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예쁜 웨딩드레스는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한 편으로는, 내가 엄마 아빠 사이에 끼어서 욕만 먹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과 하나 언니가 엄마와 친아빠 사이에 끼어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 두나 언니가 엄마와 하나 언니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모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인가? 엄마에게는 왜 이다지도 많은 대변인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그것은 엄마 때문이 아니라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난 여자가 갖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원죄 같은 것이랄까.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 사이에 낀 깍두기, 감정쓰레기통, 원치 않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정말 엿 같은 일이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나는 그 운명을 이용하겠다. 엄마에게 원룸이라도 얻고 돈이라도 뜯어낼 것이다. 하지만 하나 언니는 무엇을 얻었을까? 두나 언니가 받았던 이바지 음식도 못 받고 꽤 오랫동안 엄마에게 어떤 경제적인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서로 안 보고 지냈었다. 엄마의 온갖 구박을 무릅쓰고 친아빠를 챙기는 이유가 뭔지 나도 참 궁금했다.


그건 그렇고 엄마는 왜 그렇게 이름에 집착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한테는 엄마를 '세나 엄마'라고 부른다고 화내고, 하나 언니에게는 친아빠를 그거가 아닌 '아빠'라고 부른다고 화를 낸다. 아빠는 엄마가 세나 엄마니까 세나 엄마라고 하는데 욕먹고, 하나 언니는 진짜 친아빠니까 아빠라고 부르는데 욕을 먹는다. 생각해 보면 둘 다 엄청 억울할 것이다. 그러면서 엄마는 현재는 이혼한 전남편을 남들 앞에서 '남편'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생각해 보면 가장 틀린 것은 엄마다. 그리고 나는 이 웃기는 활극에 돈을 받고 연기하는 자본주의에 찌든 배우다. 그리고 배우는 극을 망치지 않게 할 책임이 있었다. 내가 주연인 판은 아니었지만, 묵과할 수는 없었다.



*J.K. 롤린. 해리 포터: 불의 잔. 2014.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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