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배 같아도 결국 같은 배에 탄 운명이었다. 난 바짝 긴장이 되었다. 두나 언니는 자포자기했는지 계속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무시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장례식장이 전쟁터가 된다면 엄마는 나에게 한 약속 따윈 신경도 안 쓸 것이다. 나는 이 고생을 하고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할 것이며, 무엇보다 더 불편해질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절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됐다. 물론 그것 보다 엄마와 하나언니가 다시 냉전 상태가 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언니도 엄마도 서로에게 상처받고 울며 등 돌리고 지내는 것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가족끼리 불편한 사람이 생긴 다는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미치게 만드는 일이다. 언니가 결혼할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지만 집안의 냉랭한 분위기를 모를 만큼 눈치 없는 바보는 아니었다. 안 그래도 신경이 예민했던 엄마는 마주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쌈닭. 딱 그랬다. 엄마의 눈엣가시는 아빠였다. 원래 그랬고 그냥 넘어가도 될 만한 일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나는 두나 언니의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잤다. 언니가 늦게 오는 날이면 내 방에서 혼자 울었다. 엄마라는 고래가 하나 언니랑 싸우든 그래서 아빠랑 또 싸우든 제일 작은 새우 등은 매번 터졌다.
다행히도 엄마에게 첫 손자가 생기고 모든 분위기는 역전되었다. 백기를 든 것은 하나 언니였다. 물론 엄마도 말만 안 했지 냉전을 끝내고 싶어 하는 의지가 역력해 보였다. 결혼한 지 몇 개월 안 되어 언니가 임신했다는 얘기를 두나 언니를 통해 들었을 때, 엄마의 얼굴에는 궁금증과 걱정, 새로운 설렘이 보였다. 엄마는 언제 하나 언니가 먼저 연락을 해올지 목을 빼고 기다렸다. 직접 말은 안 했지만 우리 가족 모두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두나 언니가 평화의 메신저로 하나 언니를 집으로 데려왔고, 엄마는 아무 말하지 않는 것으로 제 발로 들어온 딸을 받아주었다. 이렇게 간단할 일을 서로 자존심 세웠던 둘이 솔직히 짜증 났다. 그래도 화해했으니 용서해 준다고 나는 너그러운 마음을 먹었다. 새로 태어난 조카는 가족의 접착제였고 윤활제였으며 모든 경우 만병통치약처럼 엄마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무뎌도 칼은 칼이었다. 그 뒤로도 엄마와 하나언니는 연중행사처럼 나아질 만하면 싸웠고 그러다 또 화해했다. 언니와 엄마가 싸운 후의 명절은 가관도 아니었다. 엄마는 하나 언니네 가족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안 오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포지션으로 남은 가족들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다. 싸웠으면 성인답게 지들끼리만 싸우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면 안 되는 것이 매너이다. 하지만 엄마는 좀처럼 그러지 못했다. 음식을 몇 인분 해야 할지 물어보며 나를 들들 볶았다. 넉넉한 게 좋다며 잔뜩 하다가도 자신이 왜 이렇게 힘들게 음식을 해야 하냐며 화를 냈다. 그러다 들어 눕기 일쑤였고, 그렇게 되면 엄마가 벌려놓은 일들은 두나 언니와 내가 꾸역꾸역 마무리했다. 언니가 결국 오지 않는 명절은 누구 하나 웃는 사람 없이 엄마의 눈치만 봐야 했다. 갱년기가 지났음에도 명절만 되면 널을 뛰는 엄마의 극심한 기분 변화에 나는 청소년 때부터 명절증후군이 생겼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우리 가족의 2차 대전이 발발한다면 그때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녀의 폭주를 막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짹깍짹깍 흘렀다. 이제 장례식장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볼드모트 경이 왔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렇다고 내가 언니 톡을 엿봤고 결과가 궁금하다며 잠든 언니를 깨울 수도 없었다. 또 좀처럼 연락하지 않는 하나 언니에게 갑작스럽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나는 자연스러운 척 두나 언니를 깨웠다.
“언니 이제 거의 다 왔어. 언니 핸드폰 계속 진동 울리던데.”
언니가 잠깐 나를 보더니 입가에 흐른 침을 닦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 이게 아닌데. 어서 빨리 핸드폰을 확인해야 하는데 언니는 태평했다. '언니! 벌써 포기하지 말라고! 우리가 함께 힘을 모으면 해결할 수 있어!'라고 응원하고 싶었다. 내가 엄마를 커버하고 언니가 볼드모트 경을 커버하면 둘은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언니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스트레칭 같은 것을 잠시 하더니 형부에게 이제 도착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가 이번에는 핸드폰 방향을 틀어 엿볼 수가 없었다.
'제발, 볼드모트 경은 안 온다고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줘!'
엄마는 어렵게 세팅한 머리를 망가뜨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머리를 의자에 완전히 닿지 않게 꼿꼿이 앉아있었다. 부디 저 머리가 한 치의 엉클어짐 없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없기를,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은 굳이 조우하지 않기를 종교도 없는 나는 빌 수 있는 모든 신에게 기도했다. 내 기도가 너무 뻔뻔해서였을까? 단 한 번도 교회에 가지 않았으면서 하나님을 찾은 것에 대한 불경죄가 얹은 것인가. 수십 개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두나 언니는 어릴 때처럼 왼손 검지와 엄지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망했다. 분명하다.
“언니 무슨 일 있어?”
언니가 잠시 뜸을 들이다 엄마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
“아냐.”
나는 이대로 눈치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무사 귀환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나는 왼쪽에 있는 엄마를 의식하며 오른쪽에 있는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3나: 언니 무슨 일이야? 솔직히 얘기해 줘. 내가 도울게.
언니가 내 표정을 한 번 확인하는 것 같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두들겼다.
2나: 아빠가 온대. 장례식장에. 잘못하면 다 만날지도 몰라.
3나: OMG 그럼 어쩌지?
2나: 몰라. 다들 서울에서 여수까지 왔는데 그냥 가라 할 수도 없고. 하나 언니는 빨리 오라고 난리고 아주 지랄 났어.
3나: 언니 아빠한테 우리 가고 오시라고 하면 안 돼?
2나: 말은 해보겠지만 호락호락 들을 사람도 아니야.
3나: 엄마랑 다 마주치면 정말 난리 날 텐데.
두나 언니가 엉엉 우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3나: 이혼해도 좀 쿨 하게 친구처럼 지내면 오죽 좋아. 왜 헤어져서까지 이 난리야. 한 명은 헤어졌는데 안 헤어진 척 딱 붙어서 난리, 한 명은 어쩌다 스치기라도 할까 난리. 진심 다 개진상인 듯.
2나: 누가 아니래.
3나: 내가 어떻게 해서든 빨리 가는 방향으로 몰아볼게.
2나: 그래 아직 도착한 것 같지는 않으니까 우리가 가능한 쏜살같이 빠지자.
나는 언니에게 결의에 찬 이모티콘을 보내고 심기를 가다듬었다. 이 전쟁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난 뻔뻔하게 밑밥을 깔았다.
“우리 장례식장에 얼마나 있어야 해?”
서로서로 눈치를 보는데 엄마가 입을 열었다.
“내일 윤 서방 출근할 거 아냐. 가능한 한 빨리 돌아와야지. 거기 오래 있어 뭐 해.”
앗싸!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지. 나도 내일은 진짜 학교 가야 해. 아무리 장례식참여라도 해도 시험 못 보면 점수 그지 같이 나온다고. 그럼 가서 밥만 먹고 바로 일어서는 거지?”
“그래도 그러면 되냐. 사돈어른 돌아가셨는데. 한두 시간이라도 자리를 지켜 드리는 것이 예의지.”
예의? 예의는 무슨 개뼉따구 같은 소리인지. 아빠는 일부러 방해를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우리의 계획을 사사건건 방해했다.
“그게 무슨 예의야. 빨리 먹고 빠져 주는 게 예의지. 농사짓느라 바쁜 사돈집에서 씨암탉 두 마리 먹고 손 많이 가는 어린애 맡기고 온건 예의고? 형부도 또 4시간 넘게 운전해야 하는데 빨리 돌아가서 쉬셔야지.”
“윤 서방, 조금 천천히 가도 되지?”
“물론입니다 아버님. 편하신 대로 하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저세상 눈치를 가진 형부가 또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째려보고 있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갈 때는 두나가 운전 좀 하면 되지. 두나 술 안 마셨지?”
뭐야. 그 말은 아빠는 형부랑 술이라도 마실 작정인 건가? 아빠는 장례식장이 무슨 파티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안 돼 안 돼. 여튼 아빠도 가서 술 마실 생각 하지 말고, 빨리빨리 육개장 먹고 다들 일어서는 거다. 나 내일 시험망치면 다 아빠 때문이야. 알았어?”
“시험은 이미 망친 년이 왜 이 난리야. 육개장은 고기 들었다고 먹지도 않으면서 왜 나대. 너 오늘 밤에 남자친구 만나기로 했니?”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그래. 아주 내일까지 자고 화장터까지 따라가자.”
홧김에 뱉은 말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는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