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시간이었다. 남쪽의 5월은 저녁에도 사방이 훤했다. 번화가에서 떨어진 장례식장은 옆으로 긴 직육면체의 2층 건물이었다. 장례식장이라고 생각하고 와서 그런지, 회색빛의 건물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시골은 노령인구가 많아서 장례식장이 가장 호황이라던데 정말 그랬다. 지상에 위치한 주차장에는 꽤 많은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나는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많으면 앉을자리가 부족할 수 있으니 오래 있기 눈치 보일 수도 있고, 사람들 틈에 섞여 누가 누군지 모를 수도 있었다. 아마 언니의 결혼식 때 보다 언니 아빠도 엄마도 다 늙어 서로가 서로를 못 알아볼 수도 있었다. 우리가 장례식장 입구에 들어가 전광판에서 상주인 형부의 이름을 확인하고 찾아갔다. 3호실 VIP라고 적혀 있었다.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속에서 나의 핑크색 트레이닝복이 너무나 도드라졌다. 볼드모트 경을 생각하느라 나의 꼴을 잠시나마 까먹고 있었다. 나는 엄마 뒤에서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폈다. 사실 눈을 씻고 본다고 해도 나는 볼드모트 경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 큰 형부의 아버님이 모셔진 곳으로 갔다. 현관 입구 같은 곳 왼쪽으로 흰색과 노란색의 국화꽃이 빽빽이 장식된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 완장을 두르고 있는 수척한 얼굴의 형부가 있었다. 아빠가 사위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절을 하는 동안 나는 눈으로 하나 언니를 찾았다. 언니는 애들을 근처에 있는 본가에 데려다주러 갔다고 했다. 도망간 건가 하는 생각에 잠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한 번에 절을 올렸다. 향을 피우는 동안 빈소가 차려진 곳 안쪽 문을 열고 사돈어른이 천천히 걸어 나오셨다. 사돈이 부모님과 눈을 맞추며 팔을 올려 다가오시더니 엄마의 손을 잡고 멀리서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엄마 뒤에 있는 내 핑크색 존재를 흘깃 쳐다보셨지만 나는 그냥 어색하게 웃었다. 솔직히 지금 내 옷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내 속을 알 리 없는 엄마가 사돈이 나를 보는 뜨악한 눈길을 눈치챘는지 해달라고도 하지 않은 변명으로 입을 열었다.
“애가 오다가 차에서 옷에 음료수를 쏟아서요. 예의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저러고 왔습니다.”
“아이고, 이 멀리까지 오셨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엄마는 나의 예의 없는 핑크색에 대해 대신 이해를 구하는 척하며 사돈에게 붙잡혀 있던 손을 자연스럽게 빼내어 내 등에 얹었다. 입구 쪽에서 하나 언니가 핸드폰을 손에 들고 들어왔다. 도망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마도 혹시 모를 재난에서 아이들을 피난시킨 것 같았다. 엄마의 눈빛에는 '쟤는 왜 이제야 와!' 하는 비난이 있었지만, 다행히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엄마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지 않는 상대가 하나 언니였다. 하나 언니도 엄마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둘은 서로가 서로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지 않기 위해 조심했고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하나 언니는 우리 가족을 자리로 안내하고는 일회용 접시에 담긴 반찬과 육개장을 쟁반에 들고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의 흔한 위로와 질문이 이어졌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셨는지, 그간 병환은 어땠는지, 잘 보내드렸는지 같은 질문이었다. 언니는 아빠의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고 '잘 돌아가셨어요. 편안하셨어요. 이미 의식이 거의 없으셨어요.' 같은 누구의 죽음에도 아무렇게나 쓰일 듯한 일회용 같은 답변을 늘어놓았다.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엄마가 그런 언니의 건성건성한 태도에 가시를 세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것은 작고 귀여운 고슴도치의 가시가 아니었다. 장군의 검 같은 호저의 가시였다. 엄마는 아빠가 엄마를 ‘세나엄마’라고 부르고 언니들을 자식으로 오롯이 대하지 않는 것에도 예민했지만, 언니들이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라고 무시하는 언행에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것은 이혼을 하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웬수'였지만, 엄마의 기대 안에는 언니들이 아빠를 진짜 아빠로 대접하고 의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그랬다. 엄마는 아빠는 형편없는 남편이었지만, 나나 언니들에게 나쁘지 않은 아빠라고 말했다. 그러니 결혼식이나 가족행사 때마다 아빠를 꼭 언니들의 '아빠'로 참여시킨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혼을 숨겨 사돈들에게 며느리의 집안에 대해 책잡히고 싶지 않은 이유가 제일 크겠지만, 너희들에게는 아빠가 있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도 있어 보였다.
아빠는 언니의 말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고생이 많았겠다, 안사돈은 괜찮으시냐, 애들은 어디 있냐며 질문 폭탄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연신 함께 나온 떡과 부침개, 생홍어, 수육 등을 입에 넣었다. 그런 사이 큰 형부가 언니 옆에 와서 앉았다. 엄마가 슬며시 가시를 내렸다.
앉을자리가 없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변에는 사람들로 꽤 왁자지껄했다. 전라도 특유의 센 사투리 때문에 더 그렇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내일이 발인이고 마지막 날이라 손님이 오늘 밤에 거의 몰리는 듯했다. 일하는 사람들의 쟁반을 나르는 손길이 분주했다. 나는 기억에도 없는 볼드모트 경의 얼굴을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곤 두나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3나: 지금 혹시 여기 계심?
2나: 아냐. 아직
3나: 다행이네.
2나: 근데 곧 올 수도 있대. 엄마를 입구 반대쪽으로!
당장은 아니지만 마주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긴장됐다. 일촉즉발! 지금이 그 상황이었다. 나는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얼굴에 뭐가 묻었다면 엄마를 끌고 화장실로 갔다. 엄마는 재촉하는 나 때문에 다소 황당하고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진짜 뭐가 묻었나 하여 가방을 챙겨 따라왔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엄마가 거울을 보기도 전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됐다 됐어! 아이고 여기 할매들 중에 제일 예쁘다.”
“내가 왜 할매야!”
“손자 손녀가 셋이나 있는데 할매지 아지매야?”
엄마는 나를 흘겨보고는 이내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쳤다. 돌아가는 길에는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내가 엄마가 앉았던 자리에 앉고 입구를 등지고 있던 내 자리에 엄마를 앉혔다. 엄마는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인파로 인해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개의하지 않았다. 큰 형부가 엄마와 아빠를 상대하는 동안 하나 언니는 다시 장례식장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피려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볼드모트 경이 오는 것을 원천 차단하여 밖에서 시간을 끌어볼 요량인 것 같았다. 뒤이어 두나 언니가 3호실 입구 앞 의자에 터를 잡고 앉았다. 둘이 그렇게 경계를 서는 데는 그가 곧 이곳에 들이닥칠 수 있다는 의미 같았다. 나는 두나 언니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3나: 언니, 언니 아빠 사진 있어? 누군지는 알아야 나도 조심하지!
2나: 사진?
언니는 한동안 답이 없다가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언니의 처녀 적사진 같아 보였다. 어색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편안하지도 않은 애매한 얼굴의 두나 언니가 웃고 있었다. 지금과 달리 날씬했고, 엄마를 쏙 닮아 크고 쌍꺼풀진 눈에는 다크서클도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이 든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아! 저 사람이 볼드모트 경이구나!'라고 소리 없는 탄식이 나왔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와 달리 콧대가 높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옛날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같은 얼굴이었다. 그 사진을 보니, 두나 언니는 엄마가 아니라 진짜는 아빠를 닮은 거였다. 엄마는 계란형의 선이 얇은 미인 타입이라면 두나 언니는 쌍꺼풀이 짙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엄마를 닮은 것은 하나 언니였다. 아마도 지금의 형부가 찍어준 사진 일 것 같았다. 친아빠를 같이 만날 사람은 두나 언니에게 형부 말고는 없을 것 같았다. 언니가 줄곧 친아빠를 따로 만나왔다는 것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하나 언니라면 모를까 두나 언니는 전혀 만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언니가 왠지 조금 멀리 느껴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엄마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것이었다. 두 딸년들이 모두 키워준 엄마의 뒤통수를 치고 지들을 버리고 딴 년에게 간 아빠와 뒤에서 작당질을 한다고 눈앞에 놓인 육개장 사발을 던질 것 만 같았다. 하지만 왠지 지금만큼은 서울에서 여수까지 가족들의 눈치를 받으며 한차를 타고 온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처량하고 안쓰러웠다. 아무도 잘못이 없는데 모두 죄인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찔끔 나오려는 눈물을 물리치고 눈을 부릅떴다. 그게 누구든 지금 이 장례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게 둘 수는 없었다. 아빠는 큰 형부가 주는 소주를 받아 마시고 있었다.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빠가 측은해 그냥 두었다. 다행히 우리는 수많은 할매 할배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숨기 좋았고, 1진에는 하나 언니가 2진에는 두나 언니, 마지막 전방에 내가 철저히 진을 치고 있었다. 왠지 든든했고, 보이지 않는 끈이 우리를 하나로 엮어 놓아 한 팀으로 만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볼드모트에 맞서는 불사조기사단*?'
* J.K 롤린. 2019.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문학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