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나 언니와 연락하던 개인 톡방에 하나 언니를 초대하고 단톡방의 이름을 '불사조기사단'이라고 붙였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출판된 책이지만 해리포터 시리즈는 나의 최애 책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엄마의 공부 압박을 피해 학원 시간 앞뒤로 혼자 도서관에 가곤 했다. 그곳에서 만난 J.K 롤린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나를 공부와 가족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상상과 모험의 세계로 안내했다. 첫 번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1999)부터 일곱 번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007)까지 수십 권이 되는 해리포터를 보고 또 봤다. 주말에는 도서관 DVD실에 앉아 해리포터 시리즈를 영화로 관람했다. 다섯 번째 책인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이 내가 태어난 해인 2003년에 출판되었으니 어찌 보면 운명 같은 일이었다. 볼드모트에게 대항하기 위해 결사된 비밀조직이란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딱 맞다. 왠지 지금이라도 당장 마법세계로 가는 비밀의 문을 통과할 것 같이 신이 났지만 설레발을 들키지 않기 위해 꾹 참았다.
3나: 언니 나도 두나 언니한테 들었어. 내가 여기서 엄마는 철저히 마크할게. 일촉즉발의 상황이니까 같이 정보 공유하자!
1나: 헐
2나: 엄마아빠 둘 다 세나 말 제일 잘 듣잖아!
1나: 아빠 곧 도착한대. 내가 여기서 가능한 잡아 둘 테니까 혹시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면 각자 구역에서 최대한 막아 알았지?
3나: ㅇㅋ
내 전략은 최대한 밥을 빨리 먹고 이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나는 맨밥에 김치와 미역무침을 연신 집어 먹었다. 장례식장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을 금방 비웠다. 아빠가 동그랑땡 만 먹고 남은 호박전도 모조리 먹었다. 다 먹어야 빨리 간다는 목적의식이 식욕을 높이는 것 같았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부탁도 안 했는데 일하는 아줌마를 부르더니 전을 좀 더 가져다 달라고 했다. 두 번 오고 싶지 않았던 아줌마는 쟁반에 밥과 반찬, 홍어회와 과일을 가지고 돌아왔다. 상을 비워 버리겠다던 내 전략은 삽식 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아빠는 새로 들어온 음식을 안주 삼아 계속 소주를 마셨다. 아빠의 눈이 빨갛게 취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큰일이었다. 나는 입안에 음식물을 가득 담고 아빠의 잔을 빼앗았다. 측은하다고 봐줄 일이 아니었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만취하여 꽐라가 된 아빠와 볼드모트를 만나게 할 수는 없었다.
“아빠! 취한 것 같아! 이제 그만 드셔!”
“야, 입에서 밥풀 튀어나와. 더러워 죽겠네.”
엄마가 끼어들었다. 웬일로 아빠와 죽이 맞는 것인지 그럴 거면 왜 이혼을 했냐고 쏘아 주고 싶었다.
“이러다 취하면 엄마가 책임질 거야?”
내가 엄마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는 내 입안의 음식물이 귀에 닿을까 몸서리를 치면서도 마치 자기 일은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가 왜 저러나 했는데 엄마의 종이컵에 투명한 액체가 바닥에 조금 남아있었다. 그것은 분명 소주 같았다. 엄마는 술을 참 더럽게 못 마셨다. 술만 마시면 얼굴이 잘 익은 자두처럼 빨개졌고, 조금 더 들어가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다. 주량은 맥주 355ml 한 캔이었고, 소주는 두어 잔만 마셔도 금세 취했다. 소주잔이 아닌 일반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마셨다면 이미 한도량 초과였다. 지금은 웃지만 언제 수도꼭지가 틀릴지 몰랐다. 호기롭게 지키겠다고 선언한 최전방에서부터 이미 비극의 불씨가 퍼지고 있었다. 나야말로 소주를 병째 들고 콸콸 마시고 쓰러지고 싶었다. 그럼 이 꼴 저 꼴 안 보고 편할 것 같았다. 그때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3나: 엄마 소주 마심. 차라리 엄마를 완전 주정뱅이로 만들어버릴까? 그럼 어떤 일이 생긴지도 모르고 지나가지 않겠어?
답이 없었다. 기분이 싸했다. 응답을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엄마의 잔에 소주를 듬뿍 따라주었다. 엄마는 젓가락으로 홍어를 집어 먹고 소주는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내 물 잔을 엄마 소주잔에 가져 다 대며 엄마가 자신의 소주잔을 잊어 먹지 않도록 상기시켰다. 1초가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드문드문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느리고 비규칙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때 하나 언니에게 메시지가 왔다.
1나: 1진 뚫렸어! 지금 2진으로 돌진 중.
목이 컥 하고 막히고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쳤다. 나는 입안에 있는 음식물을 모두 꿀꺽 삼켰다. 목이 메고 체할 것만 같았다. 너무 급히 먹었는지 속이 더부룩하고 뱃속에서 꾸륵꾸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괜찮았던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두나 언니가 입구 의자에서 일어나 밖을 두리번거렸다. 내 쪽을 한 번 보고는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온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몰랐지만 엄마를 잘 잡아 두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언니가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 한 명을 급히 빈소로 모시고 들어갔다. 손님이 들어가는 것을 본 큰 형부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나 언니가 2진에서 친아빠를 커버하는 동안 빨리 3호실을 떠나야 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에서 땀이 났다. 나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켜 엄마, 아빠를 향해 소리쳤다.
“밥 다 먹었는데 이만 갈까? 손님들 계속 오는 거 봐. 우리가 자리를 비워줘야지.”
“야. 반찬 새로 가져왔는데 어딜 가?”
“형부, 내일 출근해야지! 이제 빨리 가자!”
엄마는 저게 왜 저 지랄이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빨리 동호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못 이기는 척 일어났다. 아빠도 내심 아쉬운 듯 마지막 남은 동그랑땡을 하나 입에 넣고 컵에 남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 엄마 아빠를 소몰이하듯 밖으로 밀어냈다. 이제 3미터. 딱 3미터만 앞으로 가면 2차 대전을 피할 수 있다. 모든 일은 아슬아슬했지만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2미터. 1미터. 바로 그때였다.
“사돈한테 인사는 하고 가야지.”
엄마였다. 엄마는 술이 아니라 물을 마신 것이었다. 엄마가 전전남편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말릴 틈도 없었다. 엄마의 전전남편과 형부가 맞절을 하고 있는 바로 그곳으로 엄마가 성큼성큼 들어가고 있었다. 엄마를 본 두나 언니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뻣뻣이 굳어 버렸다. 영문을 모르는 사돈 어르신은 엄마에게 인사하기 위해 엄마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세 자매가 한 마음으로 막으려고 했던 그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릴리(해리포터의 엄마)가 볼드모트를 만났다.
투명 망토가 있다면 그대로 두르고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디서나 눈에 띄는 핑크색 트레이닝복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