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걱정했던 고성은 오가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엄마는 분명 '그거'를 알아봤고, 잠시 숨겨놨던 호저의 가시를 세우는 것이 마음의 눈으로 훤히 보였다. 전전남편을 알아채고 바로 그 옆에 있는 두나 언니를 노려봤고, 주변을 살펴 하나 언니를 찾았다. 하지만 엄마 앞에는 어제 남편을 잃고 상복을 입은 사돈이 있었다. 며느리에게 친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돈 앞에서 자폭할 만큼 엄마는 감정적이지 않았다. 후일을 도모하며 이대로 돌아가려는 엄마의 쓰린 속을 나는 한 발치 뒤에서 바라봤다. 재수생 때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었는데, 먹은 것도 없는데 목으로 신물이 넘어왔다. 토하고 토하다 토하면 맨 마지막에 더 나올 것도 없는데 위액이 토해져 나온다. 그때 느낄 수 있는 궁극의 쓴맛. 지금 엄마가 딱 그 위액을 입안 가득 물고 있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분노를 꾹 참는 엄마를 향해 나는 '브라보'라고 외치면 존경을 표현하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의 노력은 허사가 되었지만, 이대로라면 최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의 눈이라도 좋았다. 이제 나의 유일한 바람은 이대로 장례식장을 떠나는 것이었다. 엄마가 사돈에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두나 언니와 나는 얼음처럼 굳어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엄마를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엄마가 드디어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이제 끝났다는 생각을 하니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바로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네요.”
아빠였다. 엄마의 전전남편이 아닌 바로 전남편, 이성구 씨였다. 아빠의 도발에 엄마는 물론 우리 모두 화들짝 놀라 그들을 쳐다봤다. 그도 당황했는지 잠시 아무 말 없이 아빠를 쳐다봤다. 아빠는 자신의 금테 안경을 오른쪽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상대의 중앙이 완전히 휑해진 대머리를 인식했는지 자신 역시도 그리 빽빽하지 않지만 숱이 좀 있는 앞머리를 손으로 쓰윽 넘겼다. 여기까지는 분명 아빠의 압승이었다. 술로 붉어진 얼굴에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언니들의 친아빠가 절을 하느라 잠시 벗어놨던 중절모를 집었다. 중절모를 쓰기 위해 위로 올라간 왼팔의 손목에 육중한 롤렉스 시계가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딱 칠 뻔했다. 롤렉스를 보여주기 위한 전략으로 오른 속이 아닌 왼손으로 중절모를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이 우세하다는 표정을 잃지 않았다. 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아빠를 응시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시간 되시면 잠깐 앉았다 가시죠.”
엄마의 전전남편이 전남편의 결투를 받아들였다. 엄마는 사색이 된 표정을 간신히 숨기고 아빠를 붙잡았다.
“여보, 윤 서방 시간 없어. 빨리 가야 해요.”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엄마가 나를 통하지 않고 바로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는 엄마가 보내는 간절한 위기의 제스처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세가 등등해진 것 같았다. 정말 부리지 말아야 할 허세가 잘못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정말이지 낄낄 빠빠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여보, 잠깐만 기다려주겠어요. 내가 잠시 할 말이 있어요.”
웩. 다시 역류성식도염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아빠의 어울리지 않는 존댓말과 다정한 표현에 난 못 볼 것을 본 듯 인상이 구겨졌다. 엄마가 아빠에게 매서운 눈초리로 레이저를 쏘았지만 더는 말리지 못했다. 아빠의 표정이 평소 그 답지 않게 단호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빠가 한 번 마음먹고 고집을 부리면 어느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아빠와 20년 가까이 살아온 엄마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호랑이 같은 엄마도 미친개 앞에서는 잠시지만 꼬리를 내렸다. 지금은 3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때였다. 아빠는 우리 모두의 시선을 무시한 채 부리부리한 부엉이 눈의 사내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통제할 수 없는 폭탄은 엄마가 아니었다. 아빠는 소주라는 연료를 가득 채운 폭주기관차였다. 하나 언니가 1층에서 계단을 뛰어 올라왔는지 헐떡이며 입구 쪽에 서서 지금의 광경을 넋이 나간 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교환학생이고 원룸이고 그냥 서울로 뛰어서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술을 마셨어야 했다. 차라리 내가 고주망태가 되어 드러눕고 미친년이 되었어야 했다. 현실은 책과 달랐다. 불사조 기사단은 철저히 실패했다. 처음부터 우리의 적은 볼드모트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핸드폰 액정에 갑작스럽게 메시지 알람이 반복해서 울렸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망연자실하여 핸드폰을 확인했다. 멀리서 찍힌 규현의 사진이었다. 옆에 있는 것은 뒷모습이지만 여자가 분명했다. 둘의 각도와 물리적 밀접성, 주관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그것은 공적인 관계 또는 친구 거리가 아니었다. '이 개새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빠가 먹다 남은 동그랑땡과 엄마가 마시다 만 소주가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무슨 대기업 회의라도 하는 듯 테이블 두 개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이렇게 온 가족이 둘러앉은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기 때문에 난 이 희귀한 광경을 사진으로라도 찍어 놓고 싶었다. 나의 멘탈은 이미 탈탈 털려 온전하게 남은 조각이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그때는 엄마 아빠보다도 어떻게 규현이 이 개새끼를 죽여 놓을지 머릿속에서는 하드고어 복수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학교 캠퍼스에는 CCTV 말고도 친구들의 눈과 귀가 사방에 깔려있었다.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규현의 동행이 박제되어 나에게 전달되어 내 마음을 들쑤셔 놓았다. 나는 알림을 끄고 차라리 부모님의 촌극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둘은 한 참을 말이 없었다. 새로 온 손님에게 육개장과 쌀밥이 배달되었다.
“윤 서방, 소주 한 병 더 가져오게.”
아빠가 굳이 주방의 이모님이 아닌 윤 서방을 찾은 것이 그는 네가 아니라 내 사위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 같았다. 형부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주 한 병을 가지고 왔다. 언니가 보내준 사진을 형부가 찍은 것이라면 형부도 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모두 말이 없었다. 아빠는 형부가 가지고 온 소주를 열어 자신의 잔에 스스로 따르고 그에게 한 잔을 권했다. 둘은 건배 없이 술을 쭉 들이켰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둘이 무슨 말을 할지 너무 궁금해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말없이 술만 연이어 두 잔씩 더 마셨다. 아빠가 술김에 아는 체 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계획이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 어색한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이럴 거면 그냥 빨리 가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아빠였다.
“하나 결혼식장에서는 경황이 없어 인사도 못했습니다.”
“네. 저도. 뭐.”
“제가 이 사람과 총각일 때 결혼해서 갑자기 큰 딸이 둘이나 생기다 보니 한다고 했는데 많이 부족했습니다. 진짜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허허……. 그래서 하나 두나에게는 미안한 것이 참 많습니다.”
아빠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난 생각지도 못한 아빠의 자기 고백에 너무 당황해서 손에 꼭 쥐고 있던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아빠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턱없이 부족한 아빠인데……. 아버님도 아시겠지만 우리 하나 두나가 좀 착하고 똑 부러집니까. 부족한 부모 밑에서도 좋은 대학 가고, 그 어렵다는 취직도 척척 하고, 자기 짝 만나서 가족도 꾸리고요. 진짜 너무, 너무 훌륭하게 잘 컸습니다. 사위들도 보시다시피 하나같이 착하고 똑똑하고요. 다 자기 앞가림하고 우리 애들에게도 잘해요. 보면 제가 다 뿌듯합니다.”
아빠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작은 형부와 큰 형부를 바라봤다. 지금의 상황을 눈치챈 큰 형부도 이미 하나 언니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나 언니와 두나 언니의 표정이 진지했다. 두나 언니의 눈에는 심지어 눈물이 그렁그렁해 보였다. 작은 형부가 그런 두나 언니를 살짝 보더니 어깨를 감싸 안는 것이 보였다.
“저도 아버지가 되고 나이도 이만큼 들고 보니, 하나 아버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아빠는 어떤 마음을 알겠다는 것일까? 나는 숨을 죽이고 아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빠의 밀당은 나를 안달 나게 했다. 아빠는 한참을 뜸 들이더니 비어있는 상대의 잔에 술을 따랐다. 하지만 소주는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작은 형부가 웬일로 귀신같이 달려가 소주 한 병을 더 가지고 왔다. 아빠가 그의 잔에 술을 마저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따르려고 하자, 언니들의 아빠가 나의 아빠의 손에서 술병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아빠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둘은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다시 비웠다. 아빠는 겸연쩍은 듯 눈물을 손등으로 쓱 닦았다. 하나 언니가 그런 아빠에게 휴지를 뽑아 건네주었다. 아빠는 언니가 준 휴지로 코를 팽하고 풀었다.
생각해 보면, 언니들의 친아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사람은 나의 친아빠 이성구 씨가 맞았다. 둘은 모두 최정애 여사에게 이혼을 당했고, 여전히 둘 다 엄마에게 쌍욕을 먹고 있으며, 그들의 친딸을 잃은 동지였다. 아빠는 지금 엄마의 필요에 의해 불려 다니는 장식품 같은 존재다. 하지만 언제 그 역할이 필요 없어질지 몰랐다. 외도와 부채라는 자신들의 귀책이 그들을 당당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저씨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보고 싶고 궁금하고 애틋한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그것은 엄마가 자른다고 잘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아빠랑 별거를 하면서 나는 쾌재를 불렀지만, 그렇다고 아빠를 마음에서 잘랐던 것은 아니었다. 아빠가 혼자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어디 가서 또 사기를 당하는 건 아닌지, 술 마시고 눈치 없이 굴다가 다른 사람에게 맞고 다니지나 않는지 걱정이 마를 날이 없었다. 엄마한테 매일 혼나고 사고 치는 아빠가 한심하고 밉기도 했지만 언제나 측은했다. 퉁퉁거렸지만 그래도 매주 한 번씩은 전화하고 명절 당일은 엄마에게 내줘도 그 전후에 날을 잡아 아빠를 꼭 따로 만났다. 내가 아빠에게 그랬듯, 하나언니와 두나 언니도 그랬을 것 같다. 명절도 그럴 진데 결혼식과 장례식은 왜 안 그렇겠는가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폭풍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하나 언니가 왜 매번 아빠를 따로 불렀는지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부리부리 아저씨는 아빠처럼 주책없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마음속에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어 말을 하면 터져 나올 것 같아 무거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빠들은 내 아빠나 언니의 아빠나 참 짠하다. 아빠들을 이해하고 있는 내가 신기하고 낯설었다.
매번 더 이해하려고 했던 쪽은 아빠보다는 엄마였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해를 바라는 엄마의 적극적인 표현을 거절할 수 없었다. 사실 거절이란 옵션은 우리에게 없었다. 우리 세 자매 중 누구도 엄마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 편이 되지 않으면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나 보다 언니들이 더 컸을 것이다. 언니들은 나보다 훨씬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세뇌를 받아왔다. 그러니 엄마의 뜻을 거슬렀을 때 그녀에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매우 컸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빠는 의지하기에는 믿음이 안 갔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나를 책임져 줄거리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릴 때도 그랬다. 아빠는 챙겨 줘야 할 사람이지 나를 키우고 보살펴 줄 것 같지 않았다. 아빠의 실체 자체가 아닌 엄마의 해석을 통해 아빠를 봤고 그 해석에서 아빠는 우리를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빠에 대한 엄마의 부정적인 평가는 아빠를 더 형편없게 만들면서 우리가 더 엄마를 의지하게 만들었다. 약했던 우리는 엄마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었고 그녀의 말에 반기를 들 수 없었다. 비겁했지만 생존 본능이었다. 엄마는 우리를 오롯이 책임지는 대신 그 대가를 바랐다. 엄마가 세운 철옹성의 충실한 보초가 되어 아빠와 맞서야 했고, 남편이 줬어야 했던 애착의 자리를 대신 채워 줘야 했다.
하지만, 엄마가 그 모든 일들을 철저히 계산해서 우리를 이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에도 그녀를 미워할 수 없었다. 우리는 엄마 삶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고, 언니들도 그럴 것이다. 엄마의 삶은 그녀의 한탄 보다 더 고되고 외로웠다. 엄마는 365일 중 365일을 밤낮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모든 시선을 모든 마음을 딸들에게 고정했다. 엄마가 그러길 바라지 않았지만, 엄마의 삶에는 우리들 밖에 없었다. 나의 아빠 이성구 씨가 잠시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던 적이 있지만, 그것이 한 때의 바람이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아빠가 가장 잘 알았다. 엄마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엄마가 절대 나를 놓지 않는다는 믿음이 월등히 더 컸다. 그럴 리는 절대 없지만, 내가 설령 사람을 죽여도 그런 나를 숨겨 줄 사람은 엄마뿐이라는 당연한 믿음이 있었다. 엄마는 만만하지 않지만 든든한 언덕이고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도 찾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뻔뻔하지만 나에게는 당연하다. 엄마가 그렇지 않을 거라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렇지. 엄마의 말 때문이 아니라 엄마의 삶이 나를 그녀와 한 편 먹게 만들었다. 나는 당연히 엄마 편이고 엄마는 당연히 내 편이다. 하지만 굳이 아빠와 반대편일 이유는 없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화나 보이지도 않았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엄마의 생각이 가장 가늠하기 어려웠다. 엄마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뭔가 말을 하려는 걸까? 나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엄마가 자기 앞에 있는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으려는 찰나, 밖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들렸다.
“야, 이 화냥년! 어디 있어! 나와!”
큰 형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