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개천에서 난 용

by Lali Whale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입구에 떡 버티고 늘어서 있던 근조 화환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남자 둘과 여자 한 명이 무서운 기세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마치 영화 속 조폭처럼 눈앞에 놓인 무고한 것들을 부수고 짓밟으며 들어왔다. 소리를 지르고 화환을 던지는 남자 한 명은 조폭이 아니라고 하면 오히려 믿기 힘든 얼굴이었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 짧고 각지게 자른 머리, 쌍꺼풀이 없는 찢어진 눈 옆으로 흉터가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얼핏 보통 아저씨 같았으나 목옆으로 삐져나와 있는 형형색색의 문신이 위협감을 주기 충분했다. 2층짜리 장례식장 건물이 들썩일 정도의 소란이었다. 장소를 잘못 찾아오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생길 수 없었다. 나는 너무 놀라 딸꾹질이 났다. 어느새 엄마와 나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리고 큰 형부의 팔을 꼭 잡고 있는 하나 언니가 눈에 들어왔다. 큰 형부도 하나 언니도 그들을 처음 본 것 같지 않았다.


하나 언니의 남편은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 시골에서 명문대에 입학해 4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졸업 후에 바로 대기업에 취직한 아들. 전설 속의 엄친아였다. 누구보다 모범생이고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으로 이름마저 '정석'이었다. 성격을 보고 개명을 한 것이 의심되는 찰떡같은 이름의 그는 이성적이고 계획적이며 꼼꼼한 내향형 인간이었다. 나라면 절대 사귀지 않을 진지충에 핵노잼, 그가 바로 하나 언니의 첫사랑이었다.


모태솔로였던 형부가 대학에 가서 처음 만난 사람이 하나 언니였다. 형부는 고등학생이었던 하나 언니의 과외 선생님이었다. 나이답지 않은 책임감으로 엄마의 총애를 받았던 과외 선생님은 그 딸의 총애도 함께 받았다. 언니는 3개월이 멀다 하고 학원도 과외도 때려치우던 사람이었다. 사람을 잘 믿지 않고 까다롭기가 국대급인 하나 언니가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 준 사람이 형부였다. 형부는 입대하기 전 1년 반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번도 시간을 어기지 않고 주 2회 AI처럼 같은 시간에 우리 집에 왔다. 하나 언니는 수학을 싫어했지만, 성적이 떨어지면 과외선생님이 바뀔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형부는 문과였던 하나 언니가 이과로 전향하게 만든 주역이었다. 하나 언니가 고등학교 3학년 입학을 얼마 남기지 않고 형부가 입대했다. 언니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좌표를 잃은 사람처럼 출렁였다. 그때까지는 누구도 그 이유를 몰랐다. 설마 그것이 로봇 같은 과외선생님 때문일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둘은 어떤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방황하는 언니를 다시 잡지 못했다. 언니는 엄마가 기대하던 서울 4년제 대학 입학에 실패했다. 엄마는 하나 언니에게 재수를 권했지만, 언니는 안정권으로 하향 지원했던 경기도 변두리 대학에 꾸역꾸역 들어갔다.


나중에 두나 언니를 통해서 알았다. 좋아하는 과외선생님이 자신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입대하자 그 충격에 하나 언니가 고3을 망쳤다고 했다. 그리곤 대학에 가서 다시 형부를 찾아갔다고 말이다. 그 뒤로는 모두가 아는 얘기였다. 언니는 형부가 취직하자 대학교를 자퇴하고 결혼을 선언했다. 엄마는 거품을 물고 쓰러졌지만, 언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 생각에도 큰 형부를 놓치는 것이 아쉬웠을 것이다. 언니의 사나운 성격이나 그리 경쟁력 있지 않은 학력을 고려할 때, 저 정도의 사위는 과분하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당신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큰딸의 결혼을 끝까지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허락했다. 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둘에게 그런 러브스토리가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의외였고 그래서 더 꿀잼이었다.


하나 언니는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투사였다. 형부를 먼저 좋아한 건 하나 언니였다. 재미없는 형부가 언니를 꼬시는 모습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꼬신다고 넘어올 언니도 아니었다. 형부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직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치밀하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조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형부도 하나 언니를 좋아했던 것 같다. 난 언니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 호랑이 같은 엄마와 싸우는 것이 원망스럽고 힘들었지만 내심 부러웠다. 사랑 때문에 자퇴를 해서 고졸이 된 것은 안 부럽지만, 재수하지 않을 수 있는 단호함도 부럽고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한 것도 대단해 보였다. 언니는 정말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선택했다. 자기 싫다고 군대로 도망간 남자를 끝까지 쫓아가 결혼까지 골인 한 언니야 말로 진정한 젠더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언제나 언니가 더 형부를 좋아한다는 생각에 좀 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형부를 보고 알았다. 저 철옹성 같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 언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렸던 거다.


형부는 친구도 별로 없고 친척도 없다고 했다. 언니는 그래서 형부가 더 좋다고 했다. 허세도 없고 필요 없는 친구들 때문에, 정작 가족들에게는 소홀한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형부는 회사가 끝나면 바로 집에 왔고 그만의 루틴대로 사는 칸트 같은 사람이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고 골프를 치러 다니지도 않았다. 그러니 입방아에 오르내릴 일도 전혀 없고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사기를 당하는 일도 없었다. 부모님은 서글서글한 작은 사위에 비해 편하지는 않았지만, 실수 없고 진중한 큰 사위를 누구보다 믿었다.


형부를 보면 그 부모님도 형부 같은 분들일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언니는 고지식한 형부에 대해 간혹 투덜대기는 했지만, 시댁 어른들의 흉을 본 적은 없었다. 정확히는 어떤 얘기도 잘하지 않았다. 언니는 명절에 시댁에 가도 이 집 저 집 인사하러 갈 필요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너무 편하다고 자랑했었다. 가족끼리 먹을 음식만 간단히 하면 되고 남는 시간에는 푹 쉴 수 있다고 했다. 결혼식을 할 때도 친척들이 많이 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형부의 부모님도 형부처럼 형제가 없으려니 생각했을 뿐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사실 그런 공식행사가 있을 때는 ‘내 코가 석 자’였기 때문에 상대의 상황은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 언니는 자기 생각을 얘기한 것이지 시댁에 대한 실제 정보는 거의 노출하지 않았다.


우리는 형부가 보통의 가정에서 올곧게 자란 사람이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더 우리 가족의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 전전긍긍했었다. 혹시라도 언니의 시댁에서 엄마의 이혼을 흠잡아 언니를 무시하거나 괴롭힐까 봐 결벽적으로 조심했다. 하나 언니와 앙숙같이 싸우는 때가 많았지만, 엄마는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언니를 괴롭히거나 무시하면 가만두지 않았다. 엄마는 되지만 다른 누구도, 설령 아빠도 언니를 혼낼 수 없었다. 엄마는 언니를 엄마의 치마폭에 두고 아빠를 선 밖으로 밀어냈지만, 그럼에도 아빠는 언니들을 나와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대해 주기를 바랐다. 아빠가 엄마와 잘 지내고 싶었다면 나나 엄마보다 언니를 더 챙겼어야 했다. 하나 언니의 친아빠가 엄마의 역린이라면 하나 언니는 엄마의 아킬레스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상황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수학의 정석 같은 형부에게 깡패 같은 친척이 있을 것이라고, 사돈이 화냥년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들이 장소를 잘못 알고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부의 그 일그러진 얼굴은 낯설지 않았다. 조금 전의 내 얼굴이고, 하나 언니의 마음이고, 두나 언니가 맘 졸이던 모습이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형부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라면 형부는 아마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의 비밀을 들켰을 때의 그 낭패가 분명 형부의 얼굴에 있었다.


그들은 형부와 사돈을 찾아온 불청객이 맞았다.

이전 12화12. 전남편 vs. 전전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