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냥년 주제에 어디 상주 자리를 꿰차고 있어! 뻔뻔한 연놈들! 지들이 무슨 진짜 피붙이라도 되는 줄 아나! 안 나와!”
나는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역사물 드라마에서나 들어봄직한 욕을 눈앞에서 듣는 것도 신기했지만 여자 둘이 몸으로 싸우는 것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엄마는 소리 지르고 욕은 했지만 우리에게 손을 댄 적은 없었다. 그것은 부부싸움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돈 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여자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늙은 사돈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여자는 말릴 틈도 없이 사돈의 머리에 있던 하얀 리본이 달린 머리핀을 머리카락 채 움켜쥐고 뽑아 버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주저앉아 통곡했다.
“오빠! 나왔어 나. 미숙이 왔어. 오빠 막냇동생 미숙이가 이제야 왔어!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떻게! 내가 늦게 와서 미안해! 오빠!
순식간이었다. 여자는 손아귀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털지도 않고,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이산가족을 죽어서 만난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 여자의 뒤로 깍두기와 문신남이 빈소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아섰다. 우리 쪽 아빠 둘이 빈소로 들어가려 하자 깍두기가 막아섰다. 언니들의 아빠가 큰 눈을 부라리며 이게 무슨 난동이냐며 호통을 쳤고, 우리 아빠가 그 옆으로 미꾸라지처럼 파고들었지만 문신남에게 잡혔다. 깍두기는 빈소 앞에 부의금을 받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 잠겨있는 서랍을 우악스럽게 잡아 뜯었다. 아빠가 문신남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다시 깍두기에게 달려들어 서랍을 못 뜯게 막았으나 바로 다시 잡혔다. 언니들의 친아빠가 아빠를 잡고 있는 깍두기를 뒤에서 쟁반으로 내리쳤다. 깍두기의 팔에 붙어있던 아빠가 그의 완력에 신발장 쪽으로 벌렁 나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1대 1이라면 그랬다. 하지만 아빠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우리 아빠를 발로 차려고 하는 깍두기에게 달려들어 팔뚝을 물어뜯었다. 나 역시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깍두기가 내 머리채를 잡아 내 던지려고 하자 눈이 뒤집힌 엄마가 달려들었다. 형부가 뛰어가는 장모를 쫓아와 깍두기의 잘 잡히지 않는 머리털과 얼굴을 움켜쥐었고 엄마는 구둣주걱으로 깍두기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그 사이 언니들의 아빠가 문신남과 멱살을 잡고 싸우고 두나 언니가 물통에 있는 물을 문신남에게 뿌리며 빈 물통을 휘둘러댔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동안 큰 형부와 하나 언니가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은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그때였다. 육중한 도자기가 창하고 깨지는 소리가 작은 빈소에 울려 퍼졌다. 국화를 담아놓은 사기 도자기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깨졌다. 안사돈이었다. 형부도 놀란 듯 자신의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만! 그만해! 그만해!”
잠시 정적이 흐르고 그녀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제단 앞에서 곡을 하던 여자가 사돈의 기세에 밀리지 않고 벌떡 일어나 그런 사돈의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
“이년이 미쳤나! 이게 어디 남의 오빠 장례식장에서 소리를 질러!”
그때 사돈이 오른 팔로 여자의 뺨을 향해 풀스윙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반격에 여자는 휘청하더니 옆으로 넘어졌다. 160cm도 안 되는 사돈에게서 어떻게 그런 괴력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내 남편이야! 정석아 여기 사람들 다 경찰에 신고해라.”
그때 깍두기 남자가 사돈 쪽으로 가더니 소리쳤다.
“야 이 쌍년아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 동거녀 주제에 무슨 남편이야 남편이. 가족관계증명서 떼 와봐? 여기는 우리 형님 장례식이야!”
남자는 거칠게 말했지만 아까 보다는 다소 기세가 꺾여있었다. 하지만 사돈은 더 날카롭게 몰아붙였다.
“니들이 무슨 가족이야! 정석이 아버지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그 집에서 쫓겨나서 이날 이때껏 혼자 죽을 고생 하며 살았어! 니들이 무슨 낯짝으로 여기 와서 행패야! 피 반쪽 섞인 게 무슨 대수냐! 거머리 같은 것들! 피붙이라고 이제껏 대우해 줬더니 개돼지만도 못한 것들!”
아까 사돈의 멱살을 쥐었던 여자가 일어나 달려들었다.
“말 잘했네! 우린 피라도 반 섞였지. 넌! 넌! 네 자식은 반쪽이라도 섞여서 여기 있어? 정석이 아버지 같은 소리 하네. 누구 피 인지도 모르는 놈을 누구 아들이래.”
큰 형부가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다가가려 하자 사돈이 그런 아들을 저지했다. 사돈의 표정에 더는 분노도 흥분도 없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사돈은 풍랑을 맞은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조타수 같았다. 그녀가 서자 이제 흔들리는 배가 균형을 잡는 것 같았다.
“형님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할 것 같으면 하고 가고 아니면 돌아가.”
사돈은 내리 깔린 목소리로 마지막 경고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돈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우르르 몰려 빈소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제단 앞에 나비다리를 하고 앉았다.
“우리가 이대로 갈 것 같아! 우리 형님 재산 가지고 와! 안 그러면 한 발자국도 못 나가니까.”
좀 전까지 분탕질을 치던 그들은 갑자기 동상처럼 버텼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그들이 돈을 뜯으러 왔다는 것만큼은 명확해졌다. 내일 새벽이 발인이라 오늘이 마지막으로 고인에게 인사를 드릴 수 있는 날이었다. 저녁이라 조문객이 몰리고 있던 틈에 일어난 난리에 모두들 당황하여 웅성거렸다. 아마도 그들은 사돈과 형부를 망신 주어 돈을 뜯을 요량으로 지금 이 시간을 고른 것 같았다. 사돈은 그들이 앉아 있거나 말거나 빈소를 정리했다. 깨진 사기 조각을 손으로 주워 쓰레기통에 담았다. 하나 언니와 형부가 그런 어머니를 도와 다시 제단을 세우고 국화꽃을 담을 그릇을 가져왔다. 엄마와 나, 두나 언니, 형부가 빈소 밖에 어지럽혀진 식탁과 의자, 물통, 집기들을 정리했다. 아빠가 끙하며 허리를 짚고 일어나 하나 언니의 아빠와 화환을 다시 세웠다. 우리는 같은 청소 용역업체에서 온 사람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곧이어 경찰 두 명이 올라왔다.
사돈은 경찰에게 조곤조곤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폭력에 휘말렸던 이들이 모두 경찰서로 동행했다. 깍두기와 문신남, 무서운 아줌마는 물론 허리와 목을 부여잡고 죽는소리를 하던 나의 아빠와 구겨진 중절모를 다시 쓴 언니의 아빠, 그리고 그들의 전부인 인 엄마가 따라갔다. 같이 따라가려던 큰 형부 앞을 다시 사돈이 막아섰다.
“상주가 어딜 자리를 비워. 넌 빈소 지켜라.”
사돈이 머리를 매만지고 경찰을 따라갔다. 역전의 용사들은 모두 떠나고 졸병만 남은 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