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인절미에 콩가루

by Lali Whale

장례식장은 언제 소란이 있었나 싶게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문객들이 빈소에서 절을 하고 식탁에 앉아 육개장을 먹었다. 작은 형부가 입구에서 방명록을 적고 조의금을 받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결연해 보였다. 나와 두나 언니는 형부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큰 형부의 눈치만 봤다. 아까 깍두기에게 잡혔던 머리가 아파 손으로 더듬거려 보니 볼록 혹이 나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머리를 문지르고 한 손으로는 옆에 있는 두나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3나: 이게 뭔 일이래. 언니는 알았어?

2나: 뭘?

3나: 하나 언니네 시댁 말이야.

2나: 아니.

3나: 헐~ 뭐야. 우리보다 더한데.

2나: 뭐가?


나는 '콩가루'라고 썼다 지웠다. 맞은편으로 손님을 맞는 형부가 보였다. 형부의 팔뚝에는 흰 바탕에 검은 띠가 둘러진 완장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하나 언니가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울컥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눈물이 나면 콧물이 나고 코가 막혀 괴로웠다. 긴장이 풀어지자 아까 가고 싶었던 화장실이 생각났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화장실에 갔다.


“세나야! 세나야? 여기 있어?”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두나 언니 목소리가 들렸다.


“나 여기 있어. 왜?”

나는 변기 물을 내리고 한 번 더 코를 풀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니 두나 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찾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 울면서 나가?”

나는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거울을 봤다.


“몰라. 형부 저러고 있는 거 짠해.”

“저것이 으른들의 세계다. 꼬맹아!"

“어른은 개뿔. 걍 못 우는 거 아녀? 언니 콤팩트 있어? 립스틱은?”

언니가 어깨에 둘러매고 있던 작은 핸드백에서 화장품과 물티슈를 꺼내주었다. 난 화장을 고치며 말을 이어갔다.


“형부도 되게 힘들었겠다. 그지? 보면 하나 언니가 의리는 있어. 성질은 개 더러운데 말이야.”

“뭐라고?”

하나 언니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 나는 화들짝 놀라 옆을 봤다. 하나 언니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듬었다.


“야, 롤 있어?”

“가방에 있는데.”


나는 언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례식장으로 가서 내 가방을 챙겨서 화장실로 돌아와 언니에게 헤어롤을 건네주었다. 언니는 능숙하게 엉클어진 앞머리를 모아 물을 묻히고 물비누로 살살 비벼 씻고는 다시 헹궜다. 앞머리의 물기를 꼭 짜서 나의 굵고 긴 핑크색 롤에 말았다. 그리곤 핸드 드라이기에 대고 말렸다. 언니의 이마에 삐뚤빼뚤 들러붙었던 앞머리가 다시 보송하고 동글하게 이마를 가렸다.


“와. 진짜. 다들 최정애 여사 딸 아니랄까 봐. 싱크로율 미쳤다. 이 상황에 앞머리. 세나 쟨 가방에 롤 가지고 다니는 거 봐. 엄마랑 똑같아.”


두나 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하나 언니의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면서도 웃음이 났다. 내가 큭큭 웃으며 질질 흐르는 코를 한 번 더 닦았다.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 나. 너 남친도 있다면서 어쩌려고 그래.”

하나 언니가 화장을 고치며 나를 놀렸다.


“남친 없다고. 이제 진짜 없어!”

두나 언니였다. 그새 하나 언니에게 광고를 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내사랑뀨현 어떡하고 없대!”

“지랄 났어. 개새끼 바람난 듯.”

“미친. 어디 있어 그 새끼. 장례식 끝나면 거기 먼저 가야겠네.”

하나 언니가 매서운 눈초리로 말했다. 우리 세 자매가 함께라면 바람난 남자 친구와 쌍년 열이 와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언닌 괜찮은 거지? 알고 있었어?”

“어. 오빠한테는 친아버지 같은 분이야. 나한테도 그랬고. 좋은 분이셨어.”

“엄마랑 아빠들은 괜찮겠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두나 언니가 말했다.


“야. 최정애 여사가 어디 가서 당할 사람이냐. 뭔 걱정.”

“너희 봤지? 우리 어머님도 보통 아냐. 그것들 다 죽었어.”

하나 언니가 쐐기를 박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이 콩가루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다른 언니 둘, 만날 때마다 싸우는 부모님, 두 번 이혼한 엄마, 그런 엄마와 싸우는 이복언니, 사고뭉치 아빠를 보면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뿔뿔이 가족이 맞는데,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찰떡 같이 붙었다. 인절미에 똘똘 뭉쳐진 콩가루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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