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노란 달과 까만 하늘 텅 빈 거리

by Lali Whale

우리 자매가 다시 빈소로 돌아왔다. 조문객이 뜸해진 시간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고, 두나 언니가 형부 대신 접수대를 지켰다. 종일 운전을 하고 난생처음 난투극을 경험한 형부는 빈소 옆의 가족 휴게실에서 잠을 잤다. 형부의 코 고는 소리가 입구까지 그렁그렁 들렸다. 큰 형부가 빈소를 지켰고 하나 언니가 형부에게 고개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동호를 데리러 가는 것이 물 건너간 것은 물론, 작은 형부는 내일 회사에도 결근을 알린 상태였다.


모두가 깜박 졸고 있는 사이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사돈이 돌아왔다. 패기가 넘쳤던 역전의 용사들은 젖은 걸레처럼 축 쳐져 있었다. 엄마는 우릴 찾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빠들을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식당 의자에 덩그러니 앉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공들여 세운 앞머리 만이 그나마 엄마의 죽지 않는 자존심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엄마의 두 남편이 눈을 감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환갑이 넘은 저들이 오늘 종일 차를 타고 온 데다 중간중간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를 경험했으니 경찰서에 가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은 떡실신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 옆에 가서 앉았다.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지만 지금 다 물어볼 수 없었다. 사돈어른도 제단 옆의 방석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로 계셨다. 이번 판의 선장이 누군가는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두나 언니가 가족휴게실에서 자고 있던 형부를 깨워서 나왔다. 형부가 눈에는 눈곱을 얼굴에는 졸음을 한가득 달고 나왔다.


“어머니, 발인 때까지라도 방에 들어가서 눈 좀 붙이세요.”

“그래.”


라고 하셨지만 사돈은 방으로 가지 않고 엄마와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사돈의 인기척을 느끼고 엄마는 아빠를 손으로 톡 쳤다. 내가 있었지만 나에게 시키지 않았다. 아빠는 눈을 끔뻑이며 안경을 고쳐 쓰고는 하나 언니 아빠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깨웠다. 우리는 사돈을 쳐다봤다.


“멀리까지 고생스럽게 오셨는데 이렇게 못 볼꼴을 보여 드리고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아범에게 주변에 제일 좋은 숙소 잡아 드리라고 할 테니 푹 쉬시고 내일 편히 들어가세요.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사돈이 왜요. 가족이라고 와서 그깟 돈 몇 푼 뜯으려고 행패 부린 것들이 잘못이지요. 저희는 괜찮아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정석아!”

형부가 우리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너는 이제 사돈 어르신들 숙소 잡아서 쉬게 해 드려라. 집에 가서 애들도 들여다보고.”


사돈이 옷매무새를 다잡으며 말했다. 나는 이제야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호텔 침대의 하얀 이불 위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내 철없는 엉덩이는 벌써 들썩이고 있었다. 아빠도 이미 마음은 침대 위에 풍덩 인 듯 엉덩이가 반쯤 들려 있었다. 역시 내 아빠였다. 그래도 방은 따로 주겠지? 하고 생각하며 단톡방에 '방은 따로, 온돌 말고 침대방'이라고 메시지를 보낼까 생각하던 찰나였다.


“아니에요. 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함께 있어야죠. 여자들은 가족휴게실에서 자고 남자들은 여기 상 좀 치우고 자면 될 것 같아요.”

“어떻게 그래요. 이렇게 불편한 데서요. 정석아 어서 모시고 가거라.”

“진짜 괜찮아요. 하나는 집에 갔다가 발인 전에 애들 챙겨서 오고.”

“아이고. 안 그러셔도 돼요. 힘드신데…….”

“어서어서.”

“그럼 여기 가족휴게실에서 바깥사돈들과 남자들 자고 안사돈 하고 사돈처녀들은 하나랑 즤이 집에서 주무세요. 그렇게 안 하시면 저도 더는 못 물러서요. 저랑 정석이가 빈소 지키면서 돌아가며 눈 좀 붙이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다. 제가 하나랑 애들 데리고 발인 전에 오겠습니다. 사돈도 빈소는 정석이한테 맡기시고 몇 시간이라도 푹 쉬세요.”


사돈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엄마의 팔을 잡고 내모는 시늉을 했다. 아빠의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였으나 기분이 나빠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나 역시 안타까운 마음이 한가득이었으나 주섬주섬 내 물건을 챙겼다. 하지만 옆에서 보니 작은 형부의 눈에 동공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불편한 형님에, 두 명의 장인어른, 그리고 처형의 시어머니까지 어느 한 사람 편한 이가 없었다. 그나마 맘 붙이고 있는 두나 언니마저 다른 곳으로 간다니 어쩌면 나보다 더 멘붕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나 언니도 이미 너무 지쳐서 그런 형부를 돌볼 겨를이 없어 보였다. 하나 언니가 차 열쇠를 챙겨서 나왔고 우리는 그런 언니의 뒤를 따랐다. 나는 두나 언니에게 말해서 차 열쇠를 받아와 남는 담요를 챙겨 형부에게 가져다주었다. 장례식장에 구비되어 있는 칫솔을 챙겨 이를 닦으러 가는 아빠에게 내일 보자고 인사를 하고, 언니 아빠에게도 꾸벅 인사를 했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와는 다른 끈끈한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사돈이 사는 아파트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누구도 말이 없었다. 최정애 여사와 딸 셋이 이렇게 차를 함께 타 본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옆에서 두나 언니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언니 쪽으로 다가가 언니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게 했다. 차창 밖으로 까만 하늘에 노란 달이 스티커처럼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탄 차가 개미 한 마리 없는 텅 빈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언니의 고롱고롱 거리는 숨소리와 엄마의 화장품 냄새, 하나언니의 살아있는 눈빛이 모두 한데 어울렸다.


사돈이 사는 아파트는 방이 세 개짜리 거실이 넓지 않은 아파트였다. 5월의 밤은 시원하고 쾌적했다. 아파트는 마치 손님이 올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초등학교 조카들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하나 언니가 엄마에게 시부모님 침대에서 주무시라고 권했지만 엄마는 거절했다. 내가 자겠다고 할까 하다가 왠지 그건 아닌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 엄마가 제일 먼저 욕실에 씻으러 들어갔고 나와 언니들은 잠자리를 만들었다. 하나 언니가 거실 중앙에 있는 탁자를 옆으로 치우고 주변을 정리했다. 작은 방에서 요와 이불을 한 뭉치 가져오더니, 나에게도 더 가져오라고 했다. 평생을 침대 생활만 한 우리 가족은 침대가 없으면 잘 못 잤기 때문에 언니는 2인용 요 두 장을 넓게 피고 그 위에 이불을 잔뜩 올려서 바닥이 가능한 딱딱하지 않게 하려는 듯했다. 이불까지 세장씩 깔린 잠자리는 침대는 아니었지만 꽤 폭신하고 아늑했다.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이불 위에 누워있었다. 아직 순번이 안 된 두나 언니도 함께 있었다. 두 눈을 감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난 이만 닦고 잘 거야.”

“나도.”

“이게 무슨 일이냐.”

“내 말이.”

“사돈집 마루에서 이불피고 잘 줄.”

“그래도 장례식장에서 자는 것보단 개꿀.”

“형부 어쩔.”

“등 붙이면 바로 코 골걸.”

“큭큭큭”


하나 언니가 안방에서 사돈의 것으로 보이는 티셔츠와 헐렁한 바지, 잠옷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훌렁훌렁 옷을 벗고 사돈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팔과 다리가 좀 짧았지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고 그렇다 한들 잠잘 때까지 꼬질꼬질하고 타이트한 핑크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싶지 않았다. 옷을 다 갈아입은 우리는 모두 한 자리에 누웠다. 두나 언니와 내가 함께 누웠고 하나 언니가 다른 요에 누워있었다.


“일은 어떻게 정리된 거야? 언니는 들 은거 있어?”

내가 하나 언니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오빠도 거기 있었던 건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는데 잘 끝났나 봐. 폭력은 쌍방이라 그냥 화해하는 걸로 했대. 어머니가 장례 비용하고 화장터랑 봉안당 비용 다 낼 거면 형제들이 형님 장례마저 치루라고 하셨나 봐. 그러니까 가만히 있더라네.”

“와. 진짜 양아치네.”

“어머니도 이렇게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셨나 봐. 마음의 준비를 하셨던 것 같더라고. 그래도 장례식장에서 이렇게까지 난동을 부릴 줄은 상상도 못 하셨겠지. 그래도 지들 형인데.”

“대박이네.”


자는 줄 알았던 두나 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사실 아버님 앞으로 재산이라고 할 거 하나도 없어. 여기 아파트랑 땅이라 가게랑 다 어머님 거야. 아까 그 쓰레기들은 그래도 뭐라도 있는 줄 알고 왔나 보지만 이제 알았겠지. 지들 형 죽었으니 그나마 떨어지던 콩고물도 끝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우리 어머님이 어떤 분이신데. 처음부터 어머님이 혼인신고 안 하고 사신 것도 그런 거머리 같은 가족들이 한 둘이 아닌 걸 알고 계셔서 그랬던 것 같아. 아버님이 본 처 자식인데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새어머니가 들어왔는데 아버님을 엄청 학대했나 봐. 아버님 아버지도 아들을 전혀 안 챙겼는지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나와 사셨대. 집 짓는 사람들 쫓아다니면서 목수 일 하신 것 같은데 여기저기 다치면서 일도 제대로 못 하고 돈 생기면 가족들에게 다 뺏기고 그랬나 보더라고. 나랑은 크게 마주친 적이 없는데 오빠랑 어머닌 골치 좀 썩었나 보더라고. 아버님이 너무 착해. 자기한테 뭐 해준 거 있다고 그 아버지랑 이복동생들 문제 생기면 모른 척하질 못했나 봐. 감방도 드나들었다던데 말이야. 나라면 해준 것도 없으면서 뻔뻔하게 못 그럴 것 같은데 진짜 양심도 없어. 보면 어머니도 대단해. 그런 아버님을 받아준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 두 분이 사이좋게 사셨잖아. 병시중도 다 들고.”

“그러게 대박이다. “

“근데 아버님이 오빠한테 진짜 잘하셨어. 내가 봐도 그랬어. 오빠 군대 있을 때도 아버님이 위문편지 제일 많이 써줬대. 군대 간다고 논산까지 따라가서 어머니 보다 더 펑펑 우셨다는 거야. 오빠 중학교 때부터 같이 살았는데 저 뻣뻣하고 재미없는 아들을 '우리 똥강아지'라고 불렀다더라. 진짜 안 어울리지 않냐. 아버님 나이가 어머님보다 많았으니까 중학생이면 아기 같기도 하셨으려나. 어머니 장사하느라 바쁘면 아버님이 오빠 도시락이랑 저녁밥도 살뜰히 챙겼다 하더라고. 그러니 저 벽창호 같은 남자가 생판 남인데 진짜 아버지처럼 대우해줬겠지. 안 그러면 모른 척하고도 남았을 사람인데. 우리 명절에 올 때마다 아버님이 집 깨끗이 치우고 입구부터 오빠를 기다리고 계시더라고. 편찮으셨을 때도 오빠랑 우리 애들 제일 보고 싶어 하셨어. 마지막에도 어머니 아니고 오빠 찾았잖아. 그때 오빠를 보는 표정을 니들이 봤어야 하는데. 진짜 자기 자식이라도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아버님은 찐 이었어. 나한테도 진짜 다정하셨는데…….”


하나 언니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불쑥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 자식 예뻐하는 사람을 누가 싫어해. 그래도 사돈이 똘똘하네. 솔직히 누가 먼저 죽을지 어떻게 알아? 안사돈이 먼저 죽으면 상속은 가족끼리 1/n인데. 내가 고생해서 번 재산 엄한 놈들에게 퍼주는 것보다 혼인신고 안 하고 사는 게 백번 낫지. 땅도 있다고? 어디 얼마나?”

“역시 우리 최정애 여사님. 감동파괴자.”

나는 일어나 앉아서 박수를 쳤다.


“미안해 엄마. 미리 말 안 해서.”

“뭐가? 한두 가지 여야 뭐 말을 하지. 하여간 헛똑똑이.”

“그래도 오빠는 진짜 좋은 사람이야. 엄마도 알잖아. 오빠도 우리 집 사정 다 알아. 자기 집에 아무 말도 안 했고.”

“우리 집이 뭐!”

엄마가 그 와중에 발끈했다.


“우리 집이야 인절미에 콩가루지. 뿔뿔이 떨어진 것 같은데 똘똘 뭉쳐있고. 쫀득하니 맛있고.”

나는 웃으며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의 동글동글하고 마른 작은 뼈와 살이 느껴졌다.

“그래도 애들한테는 얘기하지 마.”

엄마가 쐐기를 박았다.

“역시 최정애 여사. 철저하다 철저해. 엄마 이제 그런 거 아무도 신경 안 써. 엄마도 신경 쓰지 마.”

두나 언니도 엄마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마저. 뭣이 중헌디. 그나저나 내일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이렇게 된 거 발인까지 보고 가야지.”

나의 질문에 엄마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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