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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Jul 03. 2023

문어배를 타고 어디로 가려했나

조규찬 - 추억#1 (1993) 

문어배를 타고 나는 어디로 가려했나

https://youtu.be/Aarpi9y064A


2006년 유학을 위한 영어시험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언니가 결혼을 하고 잠시 순천에 살았어서 그 곳에 갈 생각이었다. 언니네 집에서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형부와 언니의 마중을 받으며 섬으로의 여행을 떠났다. 언니는 함께 가주지 못해 미안해했지만 사실은 혼자이고 싶었다. 익숙한 모든 것과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헤어지고 싶었다. 혼자 가는 나에게 자꾸만 먹을 걸 주는 언니에게 '무거워 사양'이라고 했지만, 어느덧 가방 안에는 샌드위치, 얼린 매실차, 사과 세알이 들어있었다.


“꼭 필요한 때가 있을 거야.”


형부가 웃으며 말했다. 꼭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언니와 형부의 마음이 고마워 가방에서 굳이 빼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사과 세 알이 마치 동화 속 파란 구슬, 노란 구슬, 빨강 구슬이 되어 나의 구원이 될 거란 것을…


여수여객터미널에서 가장 빨리 오는 배표를 샀는데, 금오도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어디에 가든 그곳의 숙소나 맛집, 관광 포인트를 검색할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그냥 표가 있어 간 미지의 섬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섬이어서 좋았고 태어난 김에 떠난 여행처럼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 돌아올지 걱정이 되었던지, 언니에게는 "내가 매일 전화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 알았지?"라고 쐐기를 박아두었다.


나는 ‘금오도’라고 적힌 허름한 연락선 뱃머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무서운 속도로 나의 온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목청껏 노래를 불러도 내 목소리는 흔적도 없이 바람에 흩어졌다.


"난 괜찮아. 그대 떠나가도. 잊을 수 있어. 그대 웃음마저도…"


유학을 함께 준비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결국은 나만 남아 있었다. 혼자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그래도 괜찮다는 믿음이 절실했다. 배를 타는 1시간 30분 내내, 이대로 여행이 끝난다 해도 '훌륭했어!'라고 말할 정도로 행복했다. 혼자라는 가벼움은 바람보다 자유롭게 잔잔한 바다 위를 선회했다.  


금오도.

작은 섬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이 섬을 통째로 사러 왔었다야. 이케 큰 섬인지 몰랐었겄지.”


라고 민박집 아주머님이 말씀하셨는데 나도 그 누구처럼 무지했다. 금오도는 컸다. 여천 터미널에서 섬의 가장 얇은 허리를 가로지르는 직포의 민박집으로 가는 재를 넘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직포에 도착했을 땐, 이미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해변이 가장 잘 보이는, 보안 따위는 전혀 고려에 없는 듯한 민박집에 짐을 풀고 언니에게 생존신고를 했다. 식당도 없는 동네에서 언니가 준 샌드위치와 매실차로 저녁을 때웠다. 땀으로 눅눅한 몸을 씻고, 바다를 보았다. 해가 지고, 오늘이 순식간에 저물고 있었다.


“산꼭대기서 제주도 바다가 보인당께.”


라는 말을 믿고, 다음날 대부산 정상을 올라 능선을 타고 칼이봉 까지 갈 작정으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민박집 옆 슈퍼 사장님의 용달을 얻어 타고 함구미 등산로 입구로 갔다. 식당이 없는 너무나 그저 섬 동네인 직포에서, 아침 대용으로 형부의 첫 번째 사과를 먹었다. 달았다.


- 함구미에서 대부산 정상 등반

- 문바위에 앉아 간식으로 두 번째 사과를 먹기

- 칼이봉에서 남해바다 너머 제주도 보기

- 하산하여 여천 항구에서 12시 20분 여수로 가는 배 타기  


처음의 계획은 깔끔했다.  

금오도가 작은 섬이라고 생각했던 착각에서 못 벗어났던 탓인지, 대부산은 동네 야산쯤일 거라고 생각했다. 함구미에서 나를 내려주는 슈퍼아저씨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여자 혼자 산은 뭐타러 탄당가? 오늘 가면 온 산에 혼자일꺼인디.”

“그럼 이 산이 전부 제 거네요.”


라고 오만하게 얘기했다. 무지한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은 금세 비명으로 바뀌었다.  


가는 곳마다 헤맸고 모든 곳이 새로웠다. 나는 20  같은 동네에서도 길을 잃는 길치다. 처음에는 넓은 아스팔트 길을 여유롭게 올라갔다. 돌로  계단길을 지나, 고즈넉한 대나무 숲을 지나갔다. '그렇지... 산행은 이렇게 조용히 자연과 함께가 최고야'라고 했지만, 내가 길이라고 믿고  길은 등산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이 무성하고, 곳곳에 매미만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었지만 길이라고 믿었다. 단지 오늘처럼  산은 사람들의 손을  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내가 가는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풀은 내 머리까지 차오르고, 온갖 벌레들이 사방에서 꿈틀대고, 새들은 여기저기 놀라 퍼덕였다. 절로 '죄송합니다'라고 소리쳤다. 다른 사람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불청객이었다.


  "죄송합니다. 빨리 가겠습니다."


허겁지겁 뛰어가다 둥근 평지가 나와 숨을 고르면 내가 온 길을 빼곤 더는 나아갈 길이 없었다. 대나무가 둥글게 높은 울타리를 치고 있는 그곳에 거칠게 자란 풀이 볼록 솟아있었다. 그것은 무덤이었다! 듣는 사람도 없는 산에서 연신 죄송하다며 소리치곤 왔던 길을 돌아갔다. 대부산을 거쳐 문바위, 칼이봉, 여천까지 두 시간이라고 했지만.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난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왔던 길을 마구 뛰었다. 뛰었다고 하기엔 발걸음은 너무나 무겁고 땅이 날 잡아끌기라도 하듯 터벅댔다. 무서워서 그런지 더 허기졌다. 막바지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걸음걸음 거미줄이 내 앞길을 막았다. 몸서리처지게 싫었지만 앞으로 나아갔다. 절벽아래로 바다. 무성한 숲. 둥그런 평지. 또 다른 무덤이었다. 귀신에 홀린듯했다. 하지만 왔던 길을 빼고 나아갈 길이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 소리가 들렸다. 뱃소리가 들렸고, 바위절벽 위 숲에서 누군가 칡줄기를 걷어내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길을 잃었어요! 살려주세요!"


마구마구마구 소리를 질렀다. 나의 어마어마한 절규에 들려오는 답변은 너무나 덤덤했다.


"욱으로 가. 욱으로"

"욱이 어디예요? 북쪽인가요?"

"욱으로 가. 왔던 길 고대로 욱으로 가!"


길을 찾는데 그다지 도움 되는 말은 아니었으나, 사람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무덤 옆 그늘에 걸터앉아 두 번째 사과를 꺼냈다. 고스레하며 한입 베어 던지고, 무덤을 향해 두 번 절을 하고 사과를 먹었다. 꿀맛이었다. 살 것 같았다. 거미와 나무에서 떨어지는 벌레가 무서워 찌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입었던 재킷이 땀에 절어 쩍 하고 몸에 붙어있었다. 재킷을 벗으니 바람만큼은 가을 향을 가득 담고 시원하게 불었다.


사과 한 알을 다 먹고, 파란 옷의 아저씨 말처럼 '욱으로' 갔다. 애써 피하던 거미줄도 그대로 밀고 갔다. 보았다. 매미 만한 거미가 날 피해 나무로 들어가는 것을!


한참을 갔다. 중간중간 등산로임을 알려주는 143번 주홍딱지도 분명 보았다. 하지만 한참 가서 도착한 곳은... 첫 번째 보았던 무덤이었다. '흐억' 파란 옷의 아저씨가 있는 두 번째 무덤으로 나는 또다시 뛰기 시작했다. 믿을 사람은 파란 옷의 덤덤이 아저씨뿐이었다.

 

밑은 바다. 길은 외길. 내 다리는 허둥댔다.


"아저씨! 죽을 거 같아요!"

내 입에서 터진 말은 참... 뜨악 했다.


"북으로 갔는데 자꾸 무덤만 나와요. 길을 못 찾겠어요."

자꾸자꾸자꾸 소리를 질렀다. 아니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너무나 덤덤히 낫으로 칡을 베고 있었고, 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루 내려와! 아루. 풀이 넘어진 길로 내려와."


어렴풋이 사라져 가는 소리를 놓칠세라 발이 달렸다. 길은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루 내려갈밖에. 바위 절벽 위의 가파른 언덕이었다. 길은 없었고, 무성한 풀들이 겨우 알아볼 정도로 쓰러져있었다. 풀을 잡고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갔다. 손과 다리에 가시가 박혔다. 피가 배어 나왔지만 문제 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아저씨를 확인하기 위해 소리 내어 아저씨를 불렀다. 파란 옷의 아저씨. 긴 풀 넘어 아저씨가 보였다.


절벽아래 바다에는 고깃배가  척이 넘실댔다. 어쩌자고 이리로 왔느냐, 어서 왔느냐, 혼자 왔느냐, 혼자 뭣하러 여까지 왔느냐... 내 여행에 깊은 뜻은 그닥 없었기에 답을 해도 그들의 의아함을 다 풀어줄 수 없었다. 그냥…

 

"아저씨 어떻게 항구로 가죠? 여천에서 배를 타야 해서요."

"저 밑에 배 타고 가야지. 기다려봐. 여그 그늘에서 기다리던가."

 

난 이럴 때 말을 잘 듣는다.

넓적한 바위에 생면부지의 아저씨를 기다렸다.

바위에 서 아래를 보니, 절벽, 바다, 배가 있었다. '어디로 내려간다는 거지?' 바로 아래가 절벽이었기 때문에, 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서워하는 3가지가 총출동되어 있었다. 물, 높은 곳, 벌레.


경사진 그늘에서 아저씨를 기다리다 보니  그만 , 행복해져 버려서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10장쯤 읽고 나니 불안함이 물밀듯이 밀어닥쳤다. '아저씨   오시지? ...   그냥 가는  아냐?'


그때. 누군가... 인기척이 들렸다. 담배를 물고, 모자를 씌고, 고무장화에 목장갑. 검게 그을린 얼굴의 왼쪽 눈 옆으로 2.5센티 정도의 흉터가 대각선으로 나 있는 까맣고 매서운 눈을 가진 남자였다. 뭣하러 왔느냐, 어디서 왔느냐, 여기서 뭐 하느냐, 혼자 왔느냐... 또 같은 질문이었다.  


"저 배에서 오셨나요? 전 파란 옷의 아저씨를 기다리는데요."


뭐라고 뭐라고 많은 말을 하는데, 사투리와 입에 물린 담배 때문에 웅얼거려 잘 들리지 않았다. 분명하게 이해한 것은 아래로는 길이 없다는 것. 위로 올라 돌아가야 한다는 것. 갈 거냐 말 거냐 이런 것 등이었다. 이쯤에서 난 머리를 굴려 생각해 보았다. 아래로 길이 없으니 나를 윗길로 안내한다는 뜻 같았다. 뭐 피하려다 범 만난 다고. 슬쩍 산이 아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치고 들어왔다. 하지만 내 발은 어느덧 그를 따라갔다.

 

하지만 잠시 걷던 흉터의 사나이는 가던 발을 세우고 연이어 담배를 세 대나 피웠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무서워졌다.


"사과 드실래요?"

 

그렇다 형부가 넣어준 세 번째 사과는 나의 마지막 빨간 구슬이었다.

그는 생뚱맞은 나의 제안에 황당한듯 사과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맨손으로 사과를 쩍하고 반으로 쪼개어 내게도 주었다. 사과를 오물오물 먹고 몇 발자국 가려는 찰나 파란 옷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반가운 이라도 만난 듯 급히 소리쳤고, 두 남자 사이의 대화가 오고 갔다. 절벽으로 내려갈 수 있네 없네, 위로가면 못 내려간다 등의 얘기로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난 말 잘 듣는 아이처럼 파란 아저씨를 쫓아 내려갔다.


흉터의 사나이는 계속 아가씨 못 내려간다고 소리쳤고, 파란 옷의 아저씨는 온 길이 있는데 왜 못 내려가냐고 소리쳤다. 그리고... 용감한 난 살기 위해 바위절벽을 탔다.


칡줄기에 가방을 묶어 미리 절벽아래로 내려놓고 우리 셋은 밑으로 기어갔다. 나는 억센 풀을 움켜 잡고 절벽을 내려갔다. 가파른 바위 절벽 앞에 서서 난 까맣게 흙이 묻은 목장갑 한쪽을 공손히 빌렸다. 파란 옷의 아저씨는 내가 못 내려갈 거라고 얘기하는 흉터의 사나이에게


"떠들지만! 아가씨 당황해. 당황하면 누구나 실수를 해. 암말마. 니가 안 떠들면 갈 수 있어!"

라고하며, 나에게는

 

"언제든 가장 최악의 상황을 보지 않으면 갈 수 있어. 바다를 보지 마."

라고 하셨다.


아래를 보지 말라는 아저씨의 말에도 파도가 치는 바다를 노려보며 (이건 내 습관이다. 나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노려보는 습관) 밑으로 기어갔다. 무릎과 다리, 손과 팔에 멍이 들고, 풀물이 들고,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런 일쯤 삶과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데 문제 되지 않았다.


본래 산이었던 부분은 섬으로, 산등성이는 바다에 돌출하여 곶을 이루고, 골짜기는 만(灣)을 이루어 해안선이 톱니 모양의 복잡한 굴곡면을 이루게 된다는 리아스식 해안. 난 리아스식 해안 산등성이의 가파른 절벽을 타고 바다로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가 배를 탔다.


아마 미쳤다고 할 거다. 여자 혼자 덜렁 알 수 없는 배를 의심 없이 타는... 이럴 땐... 난 나의 직감을 믿는다. 이 배는 안전하다는. 아니 어쩌면 안전하다고 믿고 싶었다. 허공에 날아가는 같은 질문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받고, 선장아저씨에게 신고를 하고, 간첩이 아니라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신상을 적었다. 시원한 숭늉 한 한 대접을 얻어 마시고 나서야 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내가 탄 배는 문어배였다.

배에서 제일 어린 총각이 문어가 잔뜩 들어간 맛난 라면을 끓여줬다. 우리는 2리터짜리 패트병에 든 소주를 맥주컵에 나눠마셨다. 선장님 다음으로 준 내 라면 그릇에 특별히 많은 문어가 들어있었다. 라면과 함께 소주를 꿀꺽꿀꺽 마시는데 취하지 않았다. 흉터의 사나이는 두 아이의 아버지였고, 빨간 모자의 질문이 많은 아저씨는 여수가 집이고, 날 구해준 파란 옷(정확히는 파란 줄무늬 셔츠) 아저씨는 술을 전혀 못 마시는 노총각이었다. 선장님께 원래 배에 아무나 태워 오면 안 되는 거라는 훈계를 한 차례 듣고, 문어배의 아저씨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막내 총각이 자꾸 내가 간첩일 거라고 해서 신고하면 로또라고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농담을 건넸다. 빨간 모자 아저씨는


"내 나이 50에 30년 넘게 배를 타면서 절벽에서 아가씨를 데려오긴 처음이네."


라며 여전히 의아한 눈빛으로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금방 편안해진 나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배 밑의 문어들을 구경하고, 포말이 부서지는 뱃머리에 앉아 여수의 고깃배가 머무는 돌섬으로 갔다. 내려서 또 한 번 항구의 관리직원에게 같은 질문들을 받고, 어리바리 갈길을 못 찾고 헤매다 버스를 탔다.


날 구해준 파란 옷의 아저씨다.

다른 사람이 쉴 때도 혼자 칡넝쿨을 챙기고, 배의 뒷머리에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던... 곱게 깎은 아오이 사과 한 알을 통으로 내게 주던 묵묵하고 인정 많은 뱃사람.  

배에서 내리기 전, 감사함의 표시로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끌러서 드렸다. 예전에 아널드슈워제네거가 소련장교로 나왔던 영화 레드히트에서 동료였던 미국형사와 우정의 표시로 시계를 나눠가졌던 장면이 아무래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나 보다. 생명의 은인에게 뭐든 드리고 싶었지만 드릴 게 없었다. 그리고 정중하게 배꼽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배를 타고 오면서 알았다. 내가 1시간이 넘게 길이 아닌 벼랑의 능선을 달렸다는 것을. 한 발만 잘못 디뎠으면, 내 작은 존재는 파란조차 없이 평온한 바다의 일부가 되었을 거다. 최악의 상황을 몰랐기에 그렇게 잘 갔을 거다.  


"길이 아니면 돌아가야지 계속 가면 어떻게."


누가 알겠는가.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다가 막히면 내가 못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이라고 나는 믿었다. 분명 돌아갈 수 있다고.  

사람은 아무도 없어도 두렵고, 있어도 두렵다.

혼자라는 게 두렵고, 나를 해칠 사람인가 싶어 두렵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만남의 기억을 갖게 된다.

문어배를 타고 여자 혼자, 억센 뱃사람들 틈에서 무서운 괴기 영화를 찍을 수도 있겠지만, 넉넉한 웃음의 휴머니즘 드라마를 찍을 수도 있다.

알고 보면 누구누구의 아버지, 부끄러운 웃음을 지닌 스물몇의 총각, 소주 한잔이 꿀같이 목으로 미끄러지는 소박한 이들이다.  

그저, 오늘 하루, 내가 만난 이들과의 인연에 감사할 뿐이다.


혼자여도 괜찮고 싶었지만 나는 그날도 사람들 덕에 살았다.





조규찬 - 추억 #1


나에게서 멀어진 건

거짓 없는 그대 사랑일 뿐

난 괜찮아 그대 떠나가도

잊을 수 있어 그대 웃음마저도


그대와 함께 바라본

그 하얀 구름을 잊을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과 그 햇살 그 향기마저도

잊을 수 있을까

그대와 함께 거닐던

그 하얀 거리를 잊을 수 있을까

수많은 얘기와 그 눈물 뒷모습마저도

잊을 수 있을까

그대와 함께 거닐던 그 하얀 거리를 잊을 수 있을까

수많은 얘기와 그 눈물 뒷모습마저도

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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