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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Aug 20. 2016

왜 자유와 다양성이 중요한가

15세기까지 유럽은 중국 및 동북아 보다 잘살지 못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아사(굶어죽기)를 면치 못하다가 감자가 보급되고 나서 17~18세기에 이르러 대규모 아사를 면하게 되고 복리가 향상되기 시작한다. 17세기 아일랜드의 경우 감자 전염병이 돌면 20%의 인구가 소멸될 정도로 그들이 먹고 사는 기술은 취약했다. 이런 농업생산성 문제를 서양시각에서는 자존심 상하기 싫으니 '당시에 대기근이 와서'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고려나 조선 역사에는 왜 대규모인구소멸 효과를 가지는 대기근이 잘 거론되지 않을까.

우리는 12세기 고려시대에 쌀을 더 잘 먹으려고 국가적으로 습지와 갯벌을 개간해서 농지를 확보한다. 15세기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주도해서 대규모 간척사업을 벌이고 평지를 개간한다. 원래 쌀을 한해 뽑아먹으면 그 다음 해에는 땅에 양분이 떨어져 쌀이 안자라는데 시비법이라는 농업 프로세스를 확보 표준화하고 쟁기, 가래같은 툴을 개발, 쌀을 뽑아먹은 자리에 퇴비를 뿌리고 땅의 위 아래를 뒤집어서 다음 해 바로 또 다시 쌀을 뽑아먹는 기적과 같은 농업 혁신을 이룩한다. 단위 면적당 생산성을 적어도 200% 이상 향상시킨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않고 조선 정부는 이런 혁신 기술을 표준화하는데 늘 신경썼고 쌀농사 매뉴얼을 출간, 각 지방 소단위까지 보급하기까지 한다. 이 후에 이앙법이라고 모내기 기술을 개발해서 싹을 미리튀워 보고 잘자랄 것으로 입증된 건강한 싹을 논에 옮겨심는 첨단 배양술까지 개발, 나아가서는 쌀끼리 교배를 시켜 다양한 품종을 확보, 치명적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까지 갖춘다. 그래서 우리는 쌀전염병이 돌아도 유럽과는 달랐다. 적어도 먹고사는 기술에 대해서는 우리가 분명히 한수 위였다. 분명히 먹고사는 기술로는 우리가 영국, 유럽보다 잘 살아야했다.


그런데 왜 근대 이후 서양은 잘 살고 아시아는 못살게 되었는가.


그것은 '자유'의 개념 정립 -> 개별적 다양성 확보 -> 독창성 발굴로 이어지는 서양 지식사 대비 우리는 전근대적 사유에 머불러 있었기 때문이라 본다. 근대 이 후 우리가 서양보다 못한 것은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에서 늦었다. 쌀의 다양성은 추구했지만 인간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면에서는 한발 늦은 것이다. 다양성은 혼자 튀어도 가만히 놔둘 때 나타난다. 독창성은 여러 다양성 중에 소수의 천재성이라 할수있다.


1800년대 사람인 스튜어트 밀은 자유(liberty)란 절대 권력을 제제하는 것 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정신적 복리를 위한 자유의 네 가지 포인트를 제시한다.


1. 침묵을 강요당하는 모든 의견은 진리일 가능성이 있다.

2.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렸더라도 부분적으로 진리일 가능성이 있다.

3. 관습과 통념이 옳더라도 반론에 의한 도전과 시험을 받지 못하면 또 하나의 편견을 가진 상태와 다름 없다.

4. 옳은 생각이더라도 그 생각에 반박가능성을 열어놓지않으면 그 생각의 의미와 바른 맥락을 언젠가 상실한다.


밀은 타인의 이익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는 끝까지 보장되어야 한다고 끈질기고 끈질기게 주장했고 자유주의와 공리, 정치에서 필수불가결한 근대 자유의 개념을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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