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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l 25. 2019

부자란 무엇인가


과거 한 카드사가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했다. 연회비 얼마를 내면 A 호텔 헬스장을 이용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웰빙 열풍을 타고 너도 나도 가입을 했고, A 호텔 헬스장엔 30~40대 직장인이 폭증했다. 기존 이용자(보증금 몇천만원을 낸 부자)들이 호텔에 격렬히 항의했고, 관련 기획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는 슬픈 전설이..

영화 기생충을 곱 씹어보며 부자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영화에서처럼 지하철을 타는 사람=가난한 사람 / 차를 타는 사람=부자 라는 명제는 애매하다. 135억원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던 한 청와대 비서관도 지하철로 출퇴근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외제차를 모는 사람이 부자? 길거리에 아우디 벤츠 BMW라 넘쳐난다. 그러면 운전기사가 있는 사람? 그것도 뭔가 이상하다.


20년 전만해도 부자만 가던 해외여행은 요즘은 누구나 간다. 골프도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다. 강남에 집 있는 사람이 부자? 집 한채 마련하기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강남족도 너무 표본이 많다. 다주택자가 부자일까? 대출이 얼마인지 일일이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루이비똥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을 수십개 가지고 있는 사람? 요즘 명품푸어도 그렇게 많다며.. 외국어나 악기를 하나 정도는 할 줄 아는 이를 중산층으로 규정한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처럼 누군가 명확히 해줘야 할 것 같다(개인적으로 '퐁피두 기준'은 정신승리인 것 같다. 살인적인 파리의 집값 탓에 허덕이는 프랑스 국민을 보라. 물질 이외의 고상한 기준들로 '너도 중산층이야' 하는 착각을 심어줘 국민 통합을 꾀하려는 것 아닐까. 아직도 사람들은 우리도 프랑스처럼 고상한 기준으로 중산층과 부자를 나눠야 한다고 하는데 국민성의 차이 운운할 게 아니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내가 만약 부자라면 답답할 것 같다. 자신들만 누리던 것들이 대중에게까지 친숙해지는 이 상황이. 난 정말 너희와 다르다고 티를 내려면 평창동 펜트하우스나 운전기사가 달린 마이바흐 정도는 되어야 하는 세상이 왔다. 베블런 효과가 한계치에 달한 느낌이다. 일정 선을 넘어야 진짜 부자가 되는 초 부자의 시대가 도래했달까.. 중산층은 훨씬 뛰어넘지만 재벌급은 안되고, 그래도 부자임을 보여주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서두에서 언급한 호텔 헬스장 회원권인 것 같다. 청문회에서도 여러번 공직후보자가 신라호텔이나 워커힐호텔 헬스클럽 회원권을 소지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었다. 자기 돈 들여 운동한다는데 딱히 지적할 사안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머리속에도 차별화의 욕구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여의도 M호텔 헬스장을 가봤는데 비싼 운동기구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사실 일반 헬스장에도 다 구비돼 있는 것들이었다. 다른 점은 정말 규모가 컸지만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 범인과 필부들로 가득 찬 불쾌한 곳이 아니라 넓고 쾌적한 장소에서 나의 우월감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서민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집과 차엔 돈을 쓴다. 필수재라고 생각한다. 반면 호텔 헬스장은 여전히 사치재다. 다수에 의해 점령되지 않은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휴일이었던 오늘 점심에 영등포 제2 스포츠센터를 다녀왔는데, 집 근처에서 단돈 4000원으로 수영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 서민으로서 너무 좋다. 지자체 문화/체육센터를 보며 내 세금이 잘 쓰이고 있음을 확인한다. 근데 자꾸 수영장에서 말을 거는 왠 꼰대 아저씨와 사람이 많다보니 부딪치고 발로 차고, 누군가 우연찮게 손으로 내 머리를 치고, 왠 아줌마가 총각 먼저 가라며 허벅지나 등을 툭툭 칠때마다 좀 여유롭게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쉽게도 몇천만원짜리 호텔 헬스장 회원권을 평생 살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부자란 누구일까. 궁금하니까 부자인 분이 명확한 답 좀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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