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욕망의 이름, 사창가

이철용과 어둠의 자식들

by hardy


자취집 바로 옆에는 영등포 사창가가 있다. 오후 7시쯤 되면 진분홍색의 문을 열고 새벽 3~4시쯤 닫는다. '지금이 어느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많은 이들이 드나든다. 10만원 언저리는 짧은 밤, 더 주면 긴밤이다. 긴밤은 값을 흥정한다. 업소 주변엔 ATM 기기들이 널려있다. 업소 여성들은 오후 5시가 되면 바로 옆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다. 커텐을 치고 2시간 넘게 화장을 한다. 남성들은 주로 새벽에 많이 온다. 친구들끼리 오는 사람과 혼자 오는 사람이 각각 반반이라고 한다(예전에 사창가 취재하면서 포주와 대화한 적이 있다).


영등포경찰서 출입할 때는 경찰에게, 한번은 영등포구청 쪽에도 왜 안없어지냐고 문의했는데 토지 문제 등으로 사안이 복잡하다는 말만 돌아왔다. 주로 사람들은 영등포역으로 가는 지름길인 사창가 언저리를 걸으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밝은 불빛의 그쪽을 최대한 쳐다보지 않으려 한다. 주로 새벽 1시쯤 나타나는, 태닝을 마친 고급차량이 아주 천천히 가게와 여성들을 시선으로 훑고 지나가는 것과는 딴판이다. 누구는 의지만 있다면 다른 일을 한다고 지적하고 누구는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다며 성적상품화가 만연한 작금을 개탄하지만 그곳에 여전히 사창가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최근 기이한 일이 있었다. 야근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한 외국인노동자로 보이는 남자가 뭔가를 물었다. 어수룩한 한국말로 섹시녀 어디있어요 라고 했다. 나는 말없이 건너편을 가리켰다. 그는 댕큐를 연발하며 헐레벌떡 뛰어갔다. 안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꿈과 성공, 혹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역만리로 건너왔을 그의 인생과 사창가를 향하는 그의 뜀박질이 겹쳐져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매춘업은 일제강점기부터 번성했다. 일본인들은 일본에서 일인 매춘부들을 불러들여 매춘 영업을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기(藝妓)와 창기(唱妓), 작부(합쳐서 게이샤)가 경술국치 당시에 이미 40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남성의 뒤틀린 욕망이 빚은 사창가, 집창촌, 유곽은 8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라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서울의 경우 북창동, 미아리, 천호동 등이 한때 유명했다. 부산 완월동과 미남로타리, 경기 평택의 쌈리, 파주 용주골 등이 성황을 이뤘다. 다만 정부의 대대적인 지도와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상당수가 사라졌다. 사창가가 점차 사라진 자리는 룸살롱, 텐프로, 안마방, op, 조건만남, 건마 등이 채우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일부 남성들은 태국이나 필리핀 등으로 원정 성매매를 떠나고 있다. 나도 같은 남자지만.. 가끔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때가 있다. 누구나 섹스는 하고 성욕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지만 성매매는 불법이다.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 국가가 공창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정신나간 주장을 하는 꼰대들을 보며 사람이 참 아랫도리만 내려가면 부끄러움이 없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철용이 쓰고 황석영이 윤문한 '어둠의 자식들'은 1970년대 사창가를 조명하며 하층민의 폭력적인 삶, 내일 없는 암울한 나날을 그린다. 우연히 처음봤을땐 야해서 좋았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다시 봤을땐 안타까운 인물군상이 서글펐고 취업후 꺼내봤을땐 작가의 놀라운 관찰력과 취재력에 새삼 놀랐다.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무려 안성기와 나영희, 박원숙이 출연했다.


동두천 기지촌에서 태어난 주인공 이동철은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다리를 절뚝이는 그는 태어날때부터 약자다. 그래서 온갖 나쁜 짓을 하다가 감방도 가고 목사로 거듭나 자신처럼 사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는 어쩌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인데, 이동철의 기구하고 거친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충분히 이해가는 구석이 있다. 약자라서 독해질수 밖에 없던 한 양아치의 더 독한 서울살이 정도로 정리가 되겠다.


소설은 가장 많은 부분을 사창가 묘사에 할애한다. 순자의 기둥서방으로 들어간 이동철이 보고 배운 풍경들. 가수를 꿈꾸다 아이를 잃고 모든걸 포기한 채 이곳으로 온 '영애'나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가 꾼들의 함정에 빠져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사창가로 온 '순임이' 등의 사연은 기구하기 짝이없다.


순자의 사연을 보자. 순자는 부모의 얼굴도 모른채 태어났다. 그는 부산의 고아원에서 6살 위 오빠와 살았다. 순자가 두살때 어미가 다른남자와 눈이 맞아 달아났고 아버지는 남매를 버렸다. 순자가 여덟살 되던 해에 오빠와 서울로 도망쳐왔다. 배가 고파 먹을 것을 훔치다가 걸렸고 오빠는 잡힌 뒤 순자만 풀려났다. 순자는 구걸패에 들어갔고 열살부터 남자 아이들에게 희롱을 당했다. 순자가 열두살이 되자 패거리 두목은 순자를 청량리 사창가에 팔아넘겼다. 순자는 우연히 업소에서 오빠와 재회했고 둘은 도망친다. 오빠는 소매치기..가 되어있었다. 그러다 오빠는 누군가에게 또 잡혀갔고, 순자는 다시 술집에서 일하다 '진한'이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진다. 둘은 살림을 차린다. 순자는 자신에게도 행복이 온 것같아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산다. 근데 진한은 점점 이상해진다. 잠자리를 할때면 몇명과 섹스를 했는지 캐묻고, 술을 마시고 들어와선 순자를 때렸다. 1년넘게 참으며 진한이 원래대로 돌아오길 기도했지만 그는 달라지지 않았고 순자는 집을 나와 다시 사창가로 온다.



영애의 사연은 더 기구하다. 시골 처녀 영애는 가수가 되기 위해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다. 그러나 여기저기에서 사기를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무명 작곡가에게 떠 넘겨진 후 그와 함께 살면서 딸까지 낳게 된다. 그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지만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남자는 동네 불량배들과 시비 끝에 파출소로 끌려가고 아이마저 앓다가 죽자 영애는 결국 윤락촌을 전전하게 된다.


그녀들의 기구한 인생 역정을 읽다보면 7080년대 우리네 밑바닥 삶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퍽치기와 탕치기, 절도와 포주,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하류 인생들은 사창가 여성들을 볼모로 살아간다. 누구는 누구를 등치고, 경찰에 꼰지르고, 경찰을 매수하며 상대방 세력 혹은 사업 라이벌을 제거하면서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딘다. 개인의 선택일 수 있겠지만 시대의 아픔이기도 하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 분위기, 제대로 된 권리조차 외칠 수 없었던 암울하고 미개했던 시대, 여성의 성을 사고파는게 관행화 되어온 그때의 아픔과 상처에 가슴이 저리다. 야하고 외설적이며 자극적인 소설이나 영화라고 폄하할 일만은 아니다.




사창가 단속은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1968년엔 종로3가, 소위 '종삼' 단속이 있었다. ‘종삼’ 사창가는 6·25 이후 서울 세운상가 맞은편 종로 3가와 4가 일대에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었다. 작전명은 ‘나비 작전’으로 정해졌다. 나비란 윤락녀(꽃)를 찾는 남성들을 뜻했다. 단속은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세운상가 건축현장을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에 한 업소녀가 시장 얼굴을 몰라보고 호객행위를 한 것에서 비롯됐다.


성매매 단속 역사에서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김강자 전 총경은 여경이 경찰 내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98년 여경으로서 처음 총경에 진급한 김 전 총경은 2000년 서울 종암경찰서장 재직시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른바 ‘미아리텍사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03년 말 경찰의 길을 접고 정치에 입문했다. 그랬던 그는 한 라디오에서 "제한적 공창제를 운영해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성매매 여성들의 생계선택 자율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2015년 성매매 남성과 여성 모두 처벌대상으로 규정한 성매매특별법 제정에도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미아리텍사스를 단속하고 있는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




최근 검찰 관계자가 성매매(오피)를 하다 적발돼 논란을 빚었다. 아직도 남성들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불법 노래방 도우미를 부르거나 룸살롱에 가거나 강남 텐프로를 간다. 건마나 오피, 키스방, 대딸방에 메디컬바 등도 유행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성을 구매하는 호스트바도 인기를 얻고 있지만.. 결국 성을 사려는 수요가 있고 이에 따른 공급으로 이뤄지는 성매매는 형태를 달리하며 이어질 것이다. 어떻게 단속하고,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 불법으로 인정됐지만 자신의 성을 팔겠다는 여성을 처벌하는게 맞느냐는 시각도 있다. 한편으론 그들이 새삶을 살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알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한때 한 지자체에서 이들에게 세금으로 지원을 해주려고 했다가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사창가는 우리 모두가 쉬쉬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에 기생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그 형태와 방법의 다양성에 대해 잘 알 것이다. 단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의 정부의 몫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쓸쓸한 밤에는 기형도를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