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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Feb 08. 2020

숙대 트렌스젠더 사태를 바라보며


숙명여대 트렌스젠더 신입생의 입학 포기 사태는 몇가지 사유점을 낳았다. 1. 여성의 정의란 무엇인가. 진짜 여성이란 어떤 범주까지를 뜻하는가. 2. 남성과 비교해 부당한 처사를 당했던, 상대적 약자였던 여성이 또다른 약자인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은 정당한가. 4차 산업혁명시대, 새로운 자유의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에도 온갖 꼰대적이고 보수적이며 합리라는 미명하에 무자비한 획일화의 칼날을 펼쳐온 기성세대와 똑같은 혐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두가지 명제로 논란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


난 젠더학을 공부한 적도 없고 별 관심도 없어서 여성의 정의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그냥 편의상 따져보면 만약 성기를 기준으로 하면 트랜스젠더는 완트(하반신 수술을 마친 경우)일 경우 여자가 된다. 만약 육체적인 변화가 여성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면? 프로테스테론이 분비되면 여성인가? 한달에 한번 생리를 하면 여성인가? 아니면 태어난 이후 여성이라는 역할을 부모 등으로부터 부여받고, 여성으로서 사회화를 겪었으며 유리천장과 성적으로 불평등한 사회를 감내했으면 여성인가? 어려운 문제다. 학계에서도 여성의 정의, 누가 여성이고 진정한 여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고 이론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숙대 트렌스젠더 사태를 젠더이론으로, 학문적으로 풀어내기엔 어려움이 있다. 1. 여성이란 ~~한 존재다. 2. 한때 남성이었지만, 트랜스젠더는 ~~한 이유로 여성이다. 3. 그러므로 일부 숙대생들이 트랜스젠더 신입생을 거부하면 안된다는 논리가 이어져야 하는데 학문적, 이론적 근거를 대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약자'론을 들어 일부 숙대생을 비판한다. 여성은 평소 남성에 비해 약자라고 주장하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이 그렇고, 이게 좀 과해지면 미러링이 가해지며 워마드나 메갈같은 커뮤니티도 생긴다. 비합리적인 불평등, 조선시대 유교중심주의에서부터 이어져온 여성 천시 관행이 하루빨리 정리되고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다. 미투 논란을 비롯해 강남역 살인사건, 국밥집 성추행 등 여러 사건들이 있었고 일베나 남성연대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시대가 왔고 폭력적인 과거의 잔재가 사라져 진정한 양성평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모두가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피해를 입어온 여성이 이제 또다른 편견의 희생자인 성소수자를 대놓고 혐오하고 차별한다고? 그러면 너희는 더 이상 약자를 논할 자격이 없어-! 라는 논리가 튀어 나온다.


트랜스젠더 수술을 받고 귀대한 변희수 하사


나는 이 '너희도 약자인데 약자를 무시해?' 논리가 일견 폭력적이라고 본다. 물론 일부 숙대생들의 주장은 조악하기 짝이없다. 서울지역 6개 여대의 21개 단체가 발표한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란 제목의 성명서는 그냥 무논리 퍼레이드인 쓰레기 글이다. 성명서를 요약하면 1. 여대는 남자가 여자로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2. (트랜스젠더 합격자의) 나를 보고 다른 트랜스젠더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은 여대를 자신의 변경된 성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3. 여대생들의 공간이 스스로를 여자라 주장하는 남자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정도가 되겠다.


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대를 여성이 지켜야할 최후의 보루 정도로 생각하는 그들의 편협함에 일단 놀랐다. 그리고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성으로 살아온 신입생에 대해 당신들이 도대체 뭘 아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수술을 하기까지 겪었을 부당한 고난과 시련, 사회적 편견과 놀림은 여성으로 태어난 당신들이 겪었을 지옥같은 세상과 뭐가 그렇게 다르냐고 하고 싶었다.


남성으로 태어난 내가 넘겨짚을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여성이고 싶고 여성으로서 세상을 살고 싶은 신입생을 남성으로 규정하고 우리만의 성역, 소도같은 공간을 뺏으려는 더러운 침략자로 상정하는 그 너절한 모습을 보며 저런게 페미니즘이라면 응당 폐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냥 일베의 또다른 모습이다. 인정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는 그만해주셨으면 좋겠다. 당신들 논리라면 신입생을 받아들이겠다는 숙대 선배들은 남성들과 타협한 배신자인가? 성별을 떠나 인간의 행복하게 살 권리, 천부인권의 측면에서 성소수자를 바라봐주었다면 어땠을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근데 일부 학생들의 처신이 아쉽긴 해도 '약자가 약자를 보듬어야 한다. 니네가 이래도 되느냐'는 시선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말 하는 주체들을 곰곰히 보라. 평소 페미니즘에 악감정을 지닌 남성들이 이때구나 하고 등장해 "그것봐 너네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혐오를 말하잖아. 너네도 우리랑 똑같잖아"라고 한다. 일부 강자가 약자에게 또다른 약자를 챙기지 않는다고 힐난하는 모습. 트랜스젠더들이 나서서 부당함을 토로하면 모를까, 제 3자인 누군가가 이 사태에 대해 과도하게 개입해 지적하는 것은 그 저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굳이 성별문제만은 아니다. 대학 TO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밥그릇 싸움이라 힐난할지언정 매일 밥 안먹고 사는 사람있나? 나한테 피해가 올것같으면 반대하는게 당연한 일 아닌가?


자꾸 글이 횡설수설 하는것 같지만 그만큼 이번 사안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복잡하고 어렵다. 이런 게 논란이 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 늘어나고 있구나 싶으면서도 향후 이런 논란와 사회적 공론이 계속되면 합리적인 해결책이 마련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야마 없는 양시론 양비론 진짜 싫어하는데 숙대 트랜스젠더 사태는 명확한 답을 내기가 어렵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게 아니다. 모두의 이해관계가 조금씩 이해가 가서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평등과 탈혐오도 사안에 대해 달리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난 변희수 하사의 지속 복무에 대해서는 일단 지금은 반대한다. 일부 여군이 찬성을 표했다곤 해도 숙대 사태에서 보다시피 트랜스젠더를 완전한 여성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이 아직 충분히 영글지 못했다.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어도 여군 대다수를 대상으로한 공론화 절차를 거쳐야 정상적인 군대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고추나 불알 있어야 나라지키느냐'는 구호는 자극적이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각자의 영역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여군이 많다. 중요한 것은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인해 여군 일부가 신경을 쓰고 하는 과정에서 전투력에 무리가 가고 군내 혼란이 야기되선 안된다는 점이다. 분명 불편해하는 여군이 있을 텐데, 그에게 "너는 인권은 생각안하냐"고 다그칠 수는 없지 않은가. 태어날 때부터 트랜스젠더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리 교육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록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또다른 폭력일 뿐이다.


최근 두명의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긍정적이다. 욕설 한번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고 진지한 사회적 논쟁과 토론이 벌어지는 현상도 좋다. 불과 십년전과 다르게 우리 사회는 한발짝씩 진보하고 있다. 남을 향한 오지랖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저 사람이 좋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나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신과 부모가 준 성별을 바꾸는 건 벌받을 일이라고? 그게 바로 꼰대스러운 마인드다. 나 또는 보편적 우리와 다르다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라 쳐도, 그들이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피해를 받으면 안 된다. 다만 사안에 따라 빠르게 바꿔야 할 분야가 있고 좀더 시간이 필요한 영역도 있을 것이다. 본인이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 함부로 인권 운운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다. 그러니 소수자분들이여 용기를 내세요. 좀더 부딪치고 빌어먹을 세상으로 더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아직은 시기상조인 듯한 곳들도 조금씩 마인드가 바뀌고 수용가능한 때가 올 겁니다. 지긋지긋한 편견으로 가득찬 김치국에서 오지랖의 물이 빠지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나도 힘을 다해 그렇게 되도록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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