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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Feb 15. 2020

다음(daum) 댓글의 몇가지 특징


정신병 걸릴까봐 다음(www.daum.net) 사이트에 잘 안 들어간다. 친구가 보내준 뉴스 링크를 눌렀다가 나도 모르게 다음 포털이 열렸는데 댓글이 역시나 가관이었다. 정세균 총리의 실언(코로나로 손님이 없는 음식점 주인에게 편하겠다고 한 것)과 민주당의 임미리 고발 뻘짓을 두고 지적하는 기사였다. 본인들이 지지하는 당이나 인물이 실수한 건 생각도 안하고 그냥 또 기레기를 지적하는 정신나간 댓글이 주를 이뤘다. 


그 와중에 보고야 말았다. 4월 15일 총선을 한일전으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민주당이 한국이다. 비민주당, 특히 자유한국당이 일본이다. 그러니 애국심을 발휘해 민주당을 찍어야 한다는 삽소리를 자못 진지하게 하고 동조하는 세력이 있다는 게 너무나 놀라웠다. 지네가 뭔데 함부로 애국선열을 들먹이나. 자신들과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고 일본으로 매도하는 폭력적인 행태를 보며 그 옛날 아고라를 통해 시민참여의 터전으로 기능했던 다음 포털이 오히려 우리 사회에 해악으로 다가오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다음은 카카오가 운영하고, 브런치도 같은 식구이니 나쁘게 쓰는게 좀 눈치보이긴 한다만..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언제부턴가 다음에는 좌파 성향의 이용자가 점령했고, 네이버는 반대로 우파적 시각의 댓글이 넘쳐난다. 네이버 댓글도 분명 문제는 심각하다. 무분별한 욕설과 전라도로 대표되는 지역비하, 여성 혐오와 장애인 비하 발언까지 보인다. 이런 부분은 분명 개선돼야 한다. 근데 흥미로운 것은 네이버와 달리 다음 댓글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생성되는 뜬금없는 것들이 많다. 적어도 네이버는 기사와 관련한 의견이나 논평이 댓글의 주를 이루는데 다음은 그렇지 않았다.


진중권 부인 국적까지 언급하는 못 배운 수준을 팍팍 보여주는 다음 댓글의 현주소


우선 다음 기사 댓글의 90%는 무조건 기자 욕이다. '이 기레기야' '좃중동 쓰레기 언론사 다니면 안 부끄럽냐' '한걸레 경향은 좃중동 2중대냐' '기레기 아웃, 시민이 나선다' 이런 식이다. 웃긴 건 기사 내용의 정확성이나 오류를 보지않고 그냥 본인들이 보고 싶은 내용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도해도 기레기라고 한다는 거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매주 대통령 지지율을 발표한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대통령 지지율이 전 주보다 떨어졌다고 기사를 쓰면 다음 댓글은 '기레기야 우리는 안 믿는다'라고 달린다. 아니 언론사나 기자가 조사한게 아니고 리얼미터가 한 거라니까? 친여권 성향으로 매번 현실과 맞지 않는 데이터를 내놓는 리얼미터가 발표한 건데 기사도 안읽고 그냥 기레기 타령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췌 이게 깨어있는 시민이 맞는가? 그냥 어디 굴러먹던 무뇌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고라 시절의 집단지성은 어디로 갔나. 꿈같은 일이다.


검찰 기사 댓글도 비슷하다. 추미애 아들 의혹, 조국 공소장 비공개 논란등을 보도하면 '왜 나경원, 윤석열 의혹은 파지 않느냐'고 한다. 나경원 자녀 건이야 분명 언론이 주목하고 계속해서 워치해야 할 부분이 맞다. 그런데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루머는 훨씬 예전부터 돌았고, 기자들도 여러 번 사실관계를 확인해 본 결과 큰 문제가 없어서 보도가 없는 거다. 뭐라도 먹거리에 굶주려있는 언론이 윤석열 비위처럼 뜨끈한 재료를 가만 놔둘리 없다. 다만 허위사실을 보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조국 관련 의혹은 전국민적 관심 사안이었고 지난해 조 전 장관은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조국 의혹 가지고는 지네 멋대로 '문제가 안된다'고 일축해 버리면서 무조건 물타기 왜 안하냐고 난리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떡검 개검 비판이야 자유롭게 할 수 있겠다만 별 증거도 없고 그냥 우리편, 우리이니, 우리 당 겨눈다고 검찰개혁 시급하다고 해버리면 설득력이 생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음 이용자들은 대부분 애국자인 것 같다. "대한민국 만세" "대통령님 힘내세요" "총리님 사랑합니다" 류의 댓글이 주를 이룬다. 또 일본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서 민주당과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면 무조건 "너 토착왜구지" "일본으로 가라 이 쪽바리야"라고 한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난 이들의 필사적인 키보드워리어질이 노무현 정부의 전례에서 비롯됐다고 추측한다. 대통령님을 한번 잃은 만큼 이번에는 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그들을 키보드 앞에 가서 앉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편이 저지른 범죄와 실수에는 너그럽고, 남이 한마디만 하면 '죽일놈' '적폐' 운운하게 된다. 


미네르바로 대표된 국민적 공론장이었던 다음이 결국 정치 팬클럽의 거대 까페로 전락해버렸다. 기사 소스나 방향에 대한 일리있는 지적이 아니라 "이 기레기야 너도 일본편이지 부끄러운줄 알아라 까악 퉤~" 이렇게 유치하게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진다. 수준이 무슨 유치원생 보다도 못하다. 떼로 몰려와서 같은 편끼리 좋아요 누르고 댓글 달고 하면 그게 사실이자 진실이 되나. 그게 국민 다수의 의견이 되나. 그렇다고 착각을 하고, 깨시민은 우리다라고 착각을 한다. 여권 사람들도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자꾸 잘못보고 이상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애초에 뉴스 댓글이 이런 분탕의 장으로 기능한 건 아니었다. 기자들이 생산한 뉴스를 일방향적으로 소비하던 과거와 달리 생산자와 소비자가 자유롭게 소통하고 논의하는 차원에서 뉴스 댓글은 새로운 소통의 세계를 열었다. 다양한 생각과 시각이 공존하며 보다 나은 대안과 미래를 짚으라는 뜻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현실은 일방적인 생각과 논리가 맨 위로 올라가며 다른 의견은 신고해버리는,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민의를 더 보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게 댓글이다. 


드루킹은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 등으로 2016년부터 1년 6개월간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해 포털사이트 기사 8만여건에 달린 댓글의 호감·비호감을 클릭해 그 순위를 조작하기도 했다. 댓글 시스템을 악용한다는 건 가감없어야 할 시민의 뜻 자체를 조작해 우리편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함이다. 이런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이렇게 사회를 양분하고 갈등을 오히려 더 조장하며 국민 혹은 네티즌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더 어렵도록 하고 있는 댓글 시스템을 존치할 필요성이 있는가 따져묻게 된다. 뉴스는 보고 싶은데 밑에 달린 댓글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가 크다. 무식하고 품격없는 워딩 하나에 하루 기분이 잡친다. 양대 포털, 특히 다음의 경우 자사의 댓글 정책에 대해 심도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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