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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Mar 08. 2020

정들었던 청와대를 떠나며


인사가 났다. 2018년 3월 3일에 청와대에 처음왔으니 만으로 2년 만이다. 오후 6시쯤 인사방이 붙고 부회 때문에 급하게 춘추관 짐을 싸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아쉬움과 섭섭함이 밀려왔다. 부족한 능력으로 과분한 업무를 맡아 2년간 이리저리 치였다. 혼나고 상처받고 하는 와중에도 즐겁고 신나고 자랑스러웠다. 청와대 출입기자 생활은 내게 참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떤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큰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배웠던 시간이다. 


발령 당시 나는 산업부 부동산팀을 맡고 있었다. 그러다 정치부장이 2년전 이맘때 갑자기 나를 호출했다. 청와대 2진을 맡으라고 했다. 당시는 평창올림픽 직후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발전을 언급한 뒤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이 직접 남으로 건너왔고, 외교안보 이슈가 급격히 부각되고 있었다. 


첫 출근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김의겸 대변인이 온지 얼마 안됐을 때였는데 아침 6시30분 브리핑을 해서 챙겨야했다. 얼마 간을 헤매다 가까스로 춘추관에 들어섰는데 긴장감이 너무 커서 토할 것 같았다. 춘추관 1층 책상에 앉자 곧 김의겸 대변인이 들어왔다. 수십명의 기자들과 20여분간 질의응답을 했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 들었다. 남북 관계 관련해서 여러 질문이 나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집무실이 '오벌 오피스'인걸 처음 알았다. 한글자라도 틀리게 받아칠까봐 손이 끊어져라 타이핑을 했다. 이후 국민소통수석과 대변인에게 조간에 나온 보도를 확인하고 오전 9시에는 춘추관장의 일정브리핑이 있었다. 아침 보고를 하고 한숨 돌릴새도 없이 오찬 갔다가 돌아와서 마감하고 하면 만찬 시간이 돌아왔다. 청와대 출근 첫날 내 퇴근 시간은 정확히 오후 11시30분이었다. 약 3달간을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 너무 피곤해서 코피가 자주 났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얼마간은 참 괴로웠다.


복잡한 엠바고와 눈코뜰새 없는 일정보다 더 힘들었던 건 차가운 시선이었다. 처음 오니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에게 전화를 돌리고, 문자를 보냈지만 150여명 가운데 답장을 준 이는 딱 4명에 불과했다. 정당팀도 안 해봤고 정치부 처음 온 거라 비빌 구석도 없었다. 기자들과 청와대 사람들은 내가 산업부에서 어떻게 정치부로, 그것도 청와대로 오게 됐는지 궁금해했다. 일주일 간을 외롭게 지내다가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나도 잘하고 싶었다. 2진 기자지만 그래도 남들이 알아주는 기사를 쓰고 내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임종석 비서실장 공관 앞에서 뻗치기(무작정 기다리는 것)를 했다. 일주일동안 오후 6시쯤부터 2시간 가량을 서 있었다. 비서실장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 몸이라도 던져서 인사를 하고 싶었다. 결국 그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기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지면서 "쟤 그래도 열심히 하네"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079480

청와대와서 쓴 첫 기사. 마침 우리 신문이 기독교 재단이라 1면으로 나갔다. 그냥 풀된 행사 기사였는데도 쓰는데 손이 덜덜 떨렸던 것 같다.


2018년 청와대는 외교 이슈가 주였다. 남북 정상회담이 3차례나 열렸고, 대통령이 평양에 가는 일도 있었다. 취재 기자로서도 참 벅차고 자랑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러다 2018년 12월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의 폭로가 나왔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나면서 외교 이슈는 좀 잦아들었다가 6월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으로 기대치가 다시 올라갔다. 이후 남북, 북미 관계는 수렁으로 빠졌다. 그러다 조국 이슈가 터졌고 검찰개혁이 주된 화두로 떠오르다가 이제 코로나 국면이 됐다. 돌이켜보면 정말 쉴새없는 2년이었다. 일선 부처와 다르게 모든 사회 이슈를 다루는 청와대다 보니까 어느 날은 개각 취재하다가 바로 북한 미사일 기사를 쓰고, 리비아식 북핵 해법을 공부하다 갑자기 사법개혁 또는 교육 이슈를 다뤄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든다기 보단 얕고 넓게 사안을 다루게 된 점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도 대통령 1호기를 타본 건 대단한 영광이었다. 어떤 식으로 순방이 조율되고, 정상 간 외교가 얼마나 치열하게 돌아가는 지 배웠다. 온갖 분야의 최고 엘리트가 모인 청와대 사람들은 정말 똑똑하고 스마트했다. 부처 출신 청와대 행정관은 "부처에선 전문성을 키우지만, 청와대에선 좀더 넓게 그림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비서관실 별로 다루는 분야가 다르지만 함께 하는 회의가 하루에도 많으면 10개가 넘으니 다른 시각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참 그안에서 쌓는 인맥이 소중하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참모들을 보면서 대통령을 모시는 건 참 쉬운일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의전의 경우 정무감각이 필수다. 대통령 행사에 수백명의 참석자가 오는데 누구를 빼놓고 누구는 초대하고 하면 분명 말이 나온다. 태극기 하나, 볼펜 하나가 중요하다. 모든 국민의 관심이 대통령에게 쏠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와대 참모들은 말도 안되는 노동강도를 묵묵히 감내하면서 산다. 이빨이 나가고, 잇몸이 나빠지고, 흰머리가 늘어날 정도로 일에 몰두한다. 청와대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이가 부산까지 줄 서 있다는 농담처럼 대단한 영예이자 기회다. 500여명의 대통령비서실 직원들과 소통하며 배우고, 또 때로는 싸우고 했던 경험이 나같은 잔바리 기자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필자를 찾아보세요


필자를 찾아보세요


청와대 기사는 참 쓰기가 힘들다. 단독기사를 쓰면 내게 정보를 준 취재원이 다칠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도 취재원이 "쓰지 말아달라"고 하면 쓰면 안된다. 달랑 기사 하나보다 그 사람과의 신뢰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 기사를 쓰기 쉽지 않았다. 정보공개청구도 하고, A 비서관에게 들은 것을 특정되지 않게 하려고 10명 넘는 다른 직원들에게 크로스체크하는 척 했던 적도 있다. 특히 청와대는 1진(반장)이 아닌 2진이 출입하기 어려운 곳이다. 내가 마음대로 쓸수가 없고 회사와 정권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상대하는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행정관은 나같은 잔바리를 넘어 우리 회사 사장 국장 실장들과 훨씬 더 친하다. 그러니 말 한마디도 조심하게 된다. 어려모로 신경쓸 게 참 많았던 곳이었다. "이런 걸 왜 취재하느냐"는 사람도 있었고 내 기사를 가지고 "소설"이라고 대놓고 힐난했던 청 참모도 있었다. 꼬일대로 꼬인 내 성정으로도 참기 힘든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참은 적이 많다. 청와대 생활은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기도...


나는 그래도 남들과 다른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어차피 기사는 청와대 사람에게 들으면 안된다. 부처와 함께 하는 행사는 부처쪽에서 소스가 나올 수 있다. 다른 루트로 뚫으면 의외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소소하고 미천하지만 내가(혹은 선배와 함께) 썼던 단독들은 이런것들이 있었다. 사실 다들 별건 아니다. 다만 청와대 기사의 비중이 크다보니 생활적폐 기사의 경우 연합뉴스와 지상파, 조중동을 포함해 전국 총 88개 매체가 내 기사를 받았다. 뿌듯한 기억이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16089

https://news.v.daum.net/v/N2BwXRB9Bw?f=p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147136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154232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1167000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168934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125096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122363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169395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233257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247838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178236


기사를 쓰면서 청와대와도 많이 싸웠다. 표현이 너무 거칠다는 게 많았고 또 하나는 단독이라고 썼는데 "확정되지 않고,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돌려서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참 애매한 것 같다. 모 청와대 아저씨는 "회의때마다 조간 단독보도를 오보로 만들기 위해 궁리한다"고 했다. 청와대라는 조직 자체가 국가안보와 안녕을 위해 비공개로 해야 되는 정보들이 참 많다. 그래서 일단 청와대가 틀리다고 하면 진실 여부를 떠나서 틀린게 된다. 최종까지 확인한다고 했는데도 틀리다고 하는 경우가 있어 힘들었다.


단독으로 쓰기가 애매하지만, 재미있는 것들은 청와대 인사이드라는 코너로 썼다. 사실 남북 정상회담 시기나 장소같은 큰 것들은 단독으로 쓸 수가 없다. 워낙 덩치가 큰 사안은 청와대가 보통 먼저 밝힌다. 다만 벽으로 뚤러쌓인 청와대 내에서 일어나는 신변잡기는 알아내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소소한 이 코너를 쓰는 게 단독기사 쓰는 거보다 더 즐거웠다. 청와대 참모들의 반응도 더 컸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172713&code=61111211&sid1=all 

https://news.v.daum.net/v/20190330040100262

https://news.v.daum.net/v/20190210090154482?f=p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8440855&memberNo=12282441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8722226&memberNo=12282441


난 아마 지난 2년간의 청와대 생활만큼 치열하게 살 수 없을 것 같다. 좋은 타사 기자 선후배를 만나 술도 많이 먹고, 대화나 토론도 많이 했다. 마지막으로 춘추관을 나서는 데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좀 놀랐다. 2년간 내가 춘추관에 뿌린 땀과 노력 만큼 앞으로도 좀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살고 싶다. 


마지막 퇴근길에 기념사진을


이제 정권도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간다. 이념이나 선호 정당을 떠나서 내가 본 청와대 사람들은 모두 참 열심히 일했다. 일부 생각이 다를 순 있겠지만 2년간 보아온 그들의 마음-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 대통령을 보좌해 보다 살기좋은 세상을 꾸미고 싶다-만은 진심이었다. 부족한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코로나 정국도 잘 헤치고, 국민들에게 칭찬받는 청와대로 남아주길 바란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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