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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an 14. 2020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으로 본 질문의 기술


올해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청와대 출입기자의 1년 중 가장 큰 행사인데 무릎 부상으로 놓쳐서 아쉬웠다. 대신 집에서 봤다. 평소 함께 밥 먹고, 취재하고, 놀던 기자들을 TV에서 보니까 신기하기도 했다. 다들 연륜이 있고, 경험이 많은 베테랑 기자들인데 많이들 긴장한 표정이었다. 누군가 질문하면 바로 카톡을 보냈다. 다들 정신이 없어보였다. 저기에 있었다면 나도 그랬겠지, 싶었다.


작년 이맘때 진행된 대통령 신년회견이 떠올랐다. 문재인정부는 정말 짜고 치는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그런걸 싫어한다. 사전에 질문을 정해놓지 않고 자유롭게 질문을 받는다. 작년에 질문을 5개 정도 준비해갔는데 이미 다른 기자들이 다 해버렸다. 근데 카메라가 계속 기자들을 비추고 있으니까 눈치가 보였다. 우리 회사 사람들도 다 TV로 생중계를 보기 때문에 다른 이의 질문이 끝나면 손을 계속 들어야 한다. 회사를 대표해서 와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와대 출입기자 2명 가운데 사정 상 나만 작년 회견장에 들어가 있었다. 그 부담감이란..


중요한 질문들이 다 나왔으니까 대통령이 만약 나를 지목하면 애매한걸 물어볼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또 기레기라고 욕을 먹는다. 2018년 신년 기자회견 당시 대통령에게 안좋은 질문을 한 동료기자는 아직까지 사람들이 알아본다고 했다. 그러니 나도 애매하게 손을 들었다. 당당해져야 한다고 되뇌어도 실제로는 그렇게 되질 않는다. 타사 선배는 질문 후 몇십년전 연락이 끊어진 초등학교 동창에게까지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만큼 국민적 관심이 큰 행사다. 기자들의 부담과 긴장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기자회견이 끝나자 온몸이 뻐근할 정도였다. 며칠동안 행사를 잡지않고 회견을 준비한 대통령의 긴장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사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획기적이거나 중대한 발표는 없었다. 어차피 현안에 대해 질문이 나눠질 것인데 외교안보의 경우 북한문제, 일본문제, 이란-미국 문제 등이 주요 화두였고 부동산과 조국 전 법무부장관 문제, 검찰개혁을 제외하면 크게 이슈가 되는 사안이 없었다. 대통령께서도 많이 준비해서 적절하게 입장을 밝히신 것 같다. 


지난해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직찍


청와대에 배치받은 후 굳이 대통령 뿐 아니라 주요 수석이나 비서관들이 주재하는 기자회견만 수백번 거치면서 좋은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기자라면 누구나 꿈꾼다. 자신의 한마디로 정부의 허를 찌르고, 모두가 캐치하지 못한 사실을 끌어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런 핵심 질문, 키 질문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오랜 준비와 재빠른 눈치, 똑같은 질문이라도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는 노련함이 필요하다. 굳이 기자가 아니더라도 직장인이나 대학생, 일반인도 누군가에게 질문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질문 기법을 나름대로 정리해봤다.


1. 질문은 짧게 해야 한다


질문은 무조건 짧아야 한다. 작년이나 올해나 기자 가운데 주저리 주저리 배경지식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었다. 예를 들어 부동산 질문을 하는데 경제연구소의 지표를 먼저 제시하고 그다음에 부동산을 어떻게 잡을거냐 물어보는 식이다. 토론이라면 근거를 드는게 당연하겠지만 질문 시간은 정해져있다. 그러니까 짧게 핵심만 전달해야 한다. 길게 질문하는 사람의 속내는 '나 이렇게 많이 안다'고 과시하는 심리가 많다. 문제는 다른사람들도 다 아는 얘기라는 점이다. 그러니 질문하는 문장은 무조건 짧아야 한다. 차라리 짧은 질문을 2개 정도 던지는 게 좋다. 그래야 응답자의 주의도 집중할 수 있고 모두가 이해하기도 쉽다. 


2. 질문은 두괄식으로 하자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는 것이 좋다. 조국 전 장관 관련해서 "대통령께서는 조국 전 장관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론 분열과 이념, 진영갈등이 극대화 된 바 있었기 때문에 질문드립니다"라는 식이 좋다. 주저리주저리 여러 의견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는 거보다 훨씬더 강렬한 질문이 된다. 굳이 질문 뿐만이 아니다. 면접을 볼 때도 이런 전략이 유효하다. 나는 모 언론사 면접을 보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답은 "저는 ~~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두괄식 질문이나 대답은 화자의 생각이 정리된 느낌을 준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부터 우선한 뒤 근거를 대는 방식이 좋다.



3. 한번에 1~2개의 질문만 하자


주요 정부 공직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는 많지 않다. 아무리 제도권 기자라도! 그래서 브리핑 때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하는 기자들이 많다. A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그리고 B와 C도 질문합니다 하는 식이다. 이때 3가지 사안이 연계가 되면 그나마 낫겠지만 아예 다른 사안인 경우 집중력이 흐려진다. 그래서 대답하는 사람도 하나 답하고, 다음질문이 뭐였죠? 라고 한다. 이러면 실패한 질문이다. 기자회견에선 다른 기자를 믿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한개의 질문만 하는 것이 좋다. 이번 질문으로 이 현안에 대해서는 최종적인 답을 듣겠다고 생각해야지, 자신이 모든 질문을 독점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은 오히려 회견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4. 남들이 안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기자회견을 하다보면 기자들이 묻고 싶은 건 대개 정해져있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들은 한정적이다. 나만 혼자 취재하는 단독기사는 회견에서 물어보면 안된다. 타사 기자에게 알려질 수 있으니 개별적으로 확인하며 보안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남들이 안하는 질문'은 시각의 문제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다르게 질문할 수 있다. 청와대 압수수색에 대한 공식 입장은 누구나 하는 질문이니까 민정비서관실과 자치발전비서관실 압색이 어떻게 다르게 진행됐는지 확인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러려면 기자가 출입하는 부처에 대해 소상히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 출입처 현안에 대해 빠삭해야 하고, 질문하기 전에 미리 모든 내용을 파악하고 관련 실무자에게 미리 확인해야 남다른 질문이 나온다. 취재원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그 취재원의 나이, 학력, 경력, 성격 등을 인지한 상태에서 가야 새로운 질문을 할 수 있다. 역시 미리 준비하는 게 최고다. 허를 찌르고 상대방을 당황시키며 말 실수를 하게 만드는 좋은 질문은 철저한 준비에서 비롯된다.


5. 하나마나한 질문은 그냥 하지 말자


일부 기자들은 진짜 궁금해서 질문하는 게 아니고, 본인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질문한다. 검찰 티타임(차 마시는게 아니고 차장검사와 현안에 대해서 문답하는데 고도의 눈치가 필요하다)과 청와대 대변인 혹은 수석 브리핑에서 거슬리는 질문들이 많이 나온다. 과시하기 위한 질문이다. 내용이 없고 뻔한 질문이다. 첫마디 부터 느낌이 온다. 이런 질문은 그냥 안하는게 좋다. 모두가 말을 하지 않을 뿐 보여주기식 질문인걸 다 안다. 조금더 공부하고 노력하고 취재해서 정제된 질문을 해야 본인 이름도 더 알릴 수 있다.


청와대의 경우 공식적으로 밝힐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일부 하위 기관이나 부처와 다르게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차피 못들을 대답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게 효율적이다. 따로 취재하거나 따로 물어봐야 한다. 누구는 "기자가 그런거 가려서 질문하면 되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는데 현실과 이상은 다르기 때문에 노련하게 현실에 맞게 효율적으로 질문해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굳이 기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 것보다 업무 적응이 훨씬 더 빨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방이 노련하고 경력이 탄탄하며 경험이 많을 수록질문하는 이의 수준을 보고 대응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평소에도 질문하는 습관을 들이자. 예의있게 질문하되 두괄식으로, 남이 하지 않는 질문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 서서히 노련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저 사람 참 말 잘한다. 내가 궁금한 걸 잘 묻는다"는 평가가 나와야 한다. 올 한해도 '잘 묻고, 궁금증이 많은' 기자가 되기 위해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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