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시험을 준비하며 스터디를 많이 했다. 주요 언론사의 공통적인 시험 과목인 상식과 논술, 작문 등을 준비했다. 스터디를 꾸려서 타 학교 학생들과 만나서 글을 썼고 우리 학교 고시반 친구들과도 공부를 했다. 보통 시간을 정하고 주제를 정해 글을 쓴뒤 돌려 보고 첨삭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좀 공허함을 느꼈다. 전역 후에 대학교 2학년때부터 스터디만 3년 가까이 했는데 도대체 필력이나 사고가 늘어나는 것 같지 않았다. 좀더 살아있는 글쓰기가 하고 싶었다. 아직 기자는 아니지만, 대학생으로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주요 일간지 '독자투고' 란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신문에서 이런 코너가 사라졌지만 내가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2010~2012년 사이에는 독자의 의견을 실어주는 신문사가 많았다. 어차피 기자 시험을 준비하려면 매일매일 주요 신문은 독파해야 했기에 현안 파악하고, 기사 공부도 할겸 글을 써서 무작정 신문사 독자투고 이메일로 보냈다. 수십번 보냈지만, 잘 실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주요 대학 교수나 공직자, 관료, 기업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주로 독자투고란을 채웠다.
그런데 좀 재미가 없었다. 그들은 전문성은 있겠지만 글이 재미가 없다. 결론이 뻔하고, 글쓰기 방식도 올드하다. 일단 나는 '~~이다'라는 문체가 싫었다. '~~다'라고 쓰면 되지 굳이 '이'를 왜 넣는지. 논거를 나열하며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의 글 구성도 별로다. 무엇보다 그럴싸한 일화로 시작해서 비유를 넣고 '~기대해 본다'로 마무리하는 허세로운 글이야말로 내용도 없고 신문지면 낭비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다운 참신한 시각과 발랄한 문체로 승부를 보고자했다. 결론적으론 실패한 것 같지만.. 기자가 된 이후로는 그토록 싫어했던 그들의 필력을 따라가고 있다.. 아무튼.
무엇에 관해 쓰든 대학생이 무슨 전문성이 있겠나. 좀 눈이 가는 기사가 있으면 이에 대한 평가 위주로 독자 투고를 작성했다. 우리 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엮어서 썼고, 논쟁이 되는 현안의 경우에는 남들과 좀 다른 의견을 내보고자 했다. 그 결과 모 부처 장관의 기고 바로 옆에 내 독자투고가 실리는 경우도 생겼다. 수십번의 도전끝에 얻은 결과다만, 많은 도움이 됐다. 실제로 해당 언론사 시험을 볼때 독자투고한 것을 들면서 "그만큼 제가 해당 언론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하고 소위 '구라'도 털 수 있었다. 뭐라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면 좋은 것 아닌가.
독자투고를 낼 때마다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신문에 실리면 많은 이들이 볼 테고, 그러려면 팩트가 틀리거나 애매한 문장 등이 없어야 했다. 미리 기자체험을 한 거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정치외교학과 문헌정보학을 복수전공한 만큼 학과를 살린 컨텐츠를 많이 집어넣었다(사실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1도 없었지만...) 조선일보 기고의 경우 수십번 제출 만에 채택된 경우였다. 기고료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와서 생활비에 보태쓴 기억이 난다.
대학생 가운데는 진보성향이 많지만 나는 이념과 진영, 보수와 진보 매체 상관없이 글을 냈다. 한번의 기고가 아쉬운데 따질 필요가 있나. 혼자서 글을 쓰거나 블로그, 페이스북 등 SNS에 올리는 것보다 집중이 잘되는게 신문기고 쓰기다. 분량도 많지 않고 제한된 지면 안에서 내 입장을 전달해야 하니 글을 줄이고 고치고 줄이는 연습이 자연스럽게 된다. 신문사가 해당 기고를 실어줬다는 것은 일단 그들의 기준을 통과했다는 뜻이다. 훈련된 글쟁이인 기자들의 마음을 잡았다면 내 글쓰기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도 활용 가능하다.
난 한발 더 나가서 신문사 옴부즈맨 활동도 했다. 신문에 기고를 계속 보내다보니 해당 언론사 담당자들에게 입소문이 났고 기회를 얻었다. 중앙일보에서 일요일마다 발행하는 중앙선데이에 3달에 한번씩 옴부즈맨 칼럼을 쓰게됐다. 대학생으로써, 또 기자 지망생으로서 참 좋은 기회였다.
아무리 미디어 혼돈의 시대가 오고 유튜브가 점유율을 높여가도 글쓰기의 중요성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영상의 시대에 글 잘쓰는 이의 경쟁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여전히 보고서와 리포트, 논문과 하다못해 메모를 하더라도 글쓰기가 중요하다. 우리가 쓰는 기기와 기계, 시스템만 바뀔 뿐이다. 유튜버들이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고 녹음하는 대본도 결국 직접 쓰는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다. 신문 기고를 통해 언론에서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그냥 내 생각을 주저리 주저리 쓰는 것이 아니라 정제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런 경험은 향후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을 하면서도 큰 도움이 됐다.
굳이 기자에게만 유용한 게 아니다. 본인의 글쓰기 실력을 확인받고 싶다면, 또 현안에 대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싶다면 신문기고를 이용해보자. 아직도 독자 투고를 운영하는 언론사들이 있다. 또 각 현안과 관련해 전문성이 있거나 기자의 시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글의 경우 특별히 실어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독자투고에 지금 바로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떠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