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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an 10. 2021

언론사 입사 논술 쓰는 법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브런치 연동 메일로 많은 질문이 들어왔다. 출간 제의나 강연이면 매우 좋겠지만 ^^ 아쉽게도 ^^ 주로 언론고시생들의 질문이 많다. 절박한 자신의 사연을 밝히고 꼭 기자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청춘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고맙기도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뭐만 하면 기레기라고 욕부터 박는 시대, 아직도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뜻을 지닌 젊은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아무리 그래도 첫 메일에 자신의 자소서를 띡 보내놓고서 첨삭해달라는 건 좀 너무하다 싶었다. 급하고 답답한 건 알겠지만 나도 직장인인데 무작정 봐달라고 하면 좀 당황스럽다. 자신이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까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언론고시의 대략적인 질답을 답은 글 https://brunch.co.kr/@highstem/100 을 작성했다. 언론사 시험과목을 다룬 글(https://brunch.co.kr/@highstem/23)도 썼다. 근데 자꾸 언시생들이 논술과 작문 등 필기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되느냐고 질문이 많아서 미천하지만 소소한 팁을 하나 정리해 보려고 한다.




시험장에 앉으면 이렇게 하라


대부분의 언론사는 1차 서류전형 이후 2차 필기시험을 본다. 예전에는 필기에서 논술과 작문을 동시에 보는 회사가 많았는데 요새는 거의 '논술+기사작성' or '논술+상식'으로 굳어지는 추세인 듯 하다. 필기시험은 대부분 블라인드로 채점되며 언론사 입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니 언시생이라면 필기시험 준비에 가장 공을 들여야 한다.


브런치를 하면서 느낀건데 기자의 글쓰기는 일반인 혹은 작가의 글쓰기와 좀 다르다. 언론 시험에 응시하는 언시생이 쓰는 논술은 작가의 에세이와는 다르다. 논제가 주어지면 응시생은 명확히 자신의 생각을 밝혀야 한다. 여기에 근거를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신변잡기를 쓰는 식으로 물 흐르듯 유려하게 화려하게 쓰면 안 된다. 양시론 양비론도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무조건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당신이 모 언론사 필기시험장에 앉아있다고 가정해보자. 칠판에 감독관이 논제를 적어내려간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생각을 논하시오'. 이런 논제라면 당신은 무조건 원전 찬성 vs 원전 반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퇴계 이황 선생에 빙의해서 둘다 맞는 말이라며 제 3의 길을 제시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려면 원전 문제에 대한 전문가적 소견이 있어서 아주 창의적이고 그럴싸한 해답을 내놔야 한다. 언시생이 개별 사안에 그런 지식을 쌓는 건 불가능하다. 한정된 지면내에서 양시, 양비는 지면 낭비에 불과하다.


그러니 논제가 나오면 무조건 자신의 답을 명확한 한 문장으로 정해놓고 시작하자. 이후 개요를 짠다. 가끔 보면 개요짜기에 시간을 많이 쏟는 사람이 있는데 좋으면서 또 한편으론 좋지 않다. 난 개요라는 게 글이 이상한 방향으로 횡설수설 하지 않도록 잡아두는 끈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문단 별로 주제를 짜되 미리 생각해놓은 나만의 야마 한 문장을 어떻게 확대 재생산하면서도 일관성있게 문단을 배치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너무 많은 시간을 쏟기보다는 문단 별로도 한문장으로 야마를 정리한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입장을 선택한다면 전체적인 내 글의 주제는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일단 서론-본론 1-본론2-본론3-결론 정도가 될 것이다(글의 분량에 따라 이건 달라진다). 나같으면 원전이 주는 이점들-값싼 에너지, 산업화 시대 원전 도입으로 이뤘던 경제성장,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도 에너지는 계속 필요하다-와 외국 사례(탈원전을 선택한 국가들의 전기료 상승과 전기 운반로 마련을 위한 송전탑 논쟁 등) 등을 언급할 것이다. 또 분명 일본 사례처럼 안전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타개할만큼 우리나라의 원전 안전 조치가 잘 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할 것이다.


이런 논거들을 고민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필기 시험이 약 1시간이라면 개요짜는데 10분, 문단에 넣을 논거를 정리하고 생각하는데 15분 가량을 쓰고 나머지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 좋다.


2012년 동아일보 공채 논술 시험 주제는 '공지영 소고'였다. 보수지인 동아일보 였지만 공지영을 옹호하기로 마음 먹었다. 작가이면서도 평소 정치적인 메시지를 발산해 온 공지영을 옹호하려면 작가의 사회적 참여, 작가의 정치적 발언 등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논거를 잘 엮어야 한다. 난 공지영이 쌍용차 사태 등을 거치면서 미혼모와 비정규직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적었다. 그의 저서 '의자놀이'의 구절을 인용하며 소설가지만 현실을 놓지 않는 작가라고 썼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사회적 참여로 논제를 확장해서 작가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현실 문제를 지적하고,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인플루언서이자 지식인이라고 결론지었다. 보수지 시험에서 진보 인사를 옹호했지만 필기시험은 결국 합격했다.

    



언론고시반에서 스터디 하던 시절..


논거는 어떻게 모을건데?


만약 내가 공지영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면? 난 동아일보 필기를 합격할 수 없었을것이다. 그의 행동을 옹호하며 나의 논리를 펼쳐야 하는데 근거를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험장에서 휴대전화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머릿속에서 주어진 논제에 대한 다양한 팩트와 논거가 번뜩!하고 떠올라야 하는데.


시험장에서 어떤 주제가 나올진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평소 이슈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팩트 등은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신문을 읽고 정리하든, 스터디를 통해 미리 글을 써보든, 누군가와 토론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든 평소 공부와 암기, 사유와 고민이 없다면 필기시험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해당 주제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1시간 안에 놀라운 해법을 뽑아내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누구는 시험 직전 공부해 둔 논제가 나와서 대박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극히 희소하다.


그렇다면 필기 시험전에 나올만한 논제를 적어도 30개 정도는 생각해보고 기본적인 통계나 팩트 등을 정리해 놓는 것이 좋다. 기자들은 원래 통계에 환장하는데, 탈원전으로 예를 들면 독일의 전기료가 탈원전 선언이후 25% 올랐다더라 혹은 공지영을 예로 들자면 공지영이 무슨 책을 판 수익금 얼마를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기부했다더라 하는 팩트나 통계를 넣어주면 글이 그럴싸해 보인다. 틀린 통계를 쓰면 마이너스지만 일단 평소 논술을 준비하며 통계 등은 수시로 공책을 만들어 적어놓고 외우다시피 해놓는 것이 좋다. 결국 평소 얼마나 책과 영화, 신문, 칼럼, 토론 등을 많이 읽고 접하고 친숙하게 지내놨는지가 논거 모으기에 영향을 미치니 부지런히 현안을 접하고 익히고 고민해 놓는 것이 논술 합격의 첩경이라 할 수 있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론!!!!!!!!!!!!


수많은 언론사 채점관들에게 들은 건데 논술의 꽃은 서론이다. 수많은 답안지를 보다보면 마음이 지치고 채점자들-주로 언론사 논설위원이나 데스크-도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이때 뭔가 남들과 다르게 시작하고, 예시가 맛깔나며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이어진다면? 솔직히 본론을 좀 못쓰더라도 합격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우리 회사 입사 때 주제는 '걷기 운동의 사회적 함의를 논하시오' 였다. 당시 걷기운동과 둘레길이 열풍이라서 좀 빤한 주제였다. 논제가 뻔하면 글도 뻔하다. 본론과 결론이 뻔해 보였다. 그러면 승부를 볼 곳은 서론밖에 없다. 난 밀란쿤데라가 언급했던 오토바이 얘기로 시작했다.


그는 '느림'이라는 책에서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그는 시간의 연속에서 바져나와 있다. 그는 시간의 바깥에 있다. 달리 말해서 그는 시간의 엑스터시 상태에 있다'고 했다. 나는 산업화 시대, 빨리빨리에 집착해온 우리를 오토바이 위에 앉은 사람에 비유하며 글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제 사람들이 느림을 찾고 오토바이에서 내려 걸으면서 자신과 사회를 성찰하는 시대가 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 별건 아니다. 다 똑같은 얘기이지만 서론을 잘 포장하면 뭔가 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준다. 글을 시작하며 지쳐있는 채점관을 유혹할 덫과 미끼를 놓는 것이다. 특히 식자층인 기자들의 눈을 잡으려면 좀 전문적이고 구체적이며 특이한 서론이 좋다. 나 이렇게 아는거 많아요~ 하는 셈이다. 난 공지영 논술에서는 서론에 조지오웰을 인용했다. '정치적인 목적을 결여한 글에는 생명력이 없다'하는 구절이다. 공지영이 정치적이니 옹호하는 내 논제에 잘 맞는 구절이다.


그럼 서론에 쓸 거리는 어떻게 준비하나? 본론 준비와 비슷하다. 평소 서론에 쓸 만한 나만의 무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스 로마신화도 좋고 삼국지도 좋다.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그것도 좋다. 유명 작가의 한마디, 정치인의 일화 등도 다 좋다. 남들이 절대 쓰지 않을 만한 내용이라면 그 유니크함은 더 올라간다. 본론에 쓸 논거를 준비하듯이 서론도 따로 공책을 만들어서 정리해놓고 외우다시피 하자. 어떤 주제가 나오더라도 가져다 쓸수 있다. 다만 문제는 논술이 기본적으로 딱딱한 글쓰기인만큼 자신의 사례를 배치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좀 무거운 출처가 더 나을 것 같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건 서론이 글을 잠식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좀 애매해서 어려운데, 서론은 남들과 다르게 참신하게 써야하지만 서론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용두사미가 되면 안된다. 또 서론이 본론과 잘 연결되어야 한다. 본론을 살려줄수 있는 내용을 배치해야지 너무 뜬금없으면 안 된다. 흔히 비유가 내 생각을 좀먹은 글을 보면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뭔데? 처음은 그럴싸한데 끝은 영.. 하게 되는데 이는 개요를 짜지않고 막 썼기 때문이다. 개요를 분명히 한 문장으로 짜고 여기에 맞는 서론을 내 머리속에서 끄집어내 배치해야 한다.





결론? 거창할 것 없다


언시생들의 착각이 글의 마무리를 엄청 거창하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수미쌍관에 집착해 이상한 구절을 되풀이 한다든지, 본론에서 언급안한 새로운 내용을 언급하며 끝낸다든지. 그러면 글의 완결성이 더 떨어진다. 차라리 본론 123 문단에서 했던걸 가볍게 반복 언급하며 끝내는 게 낫다. 이때 똑같은 말을 그대로 쓰라는게 아니고 내가 개요로 짰던 한문장을 다시한번 상기시키며 마무리하는 거다. 아니면 본론 123 분량을 조금줄여서 내 주장을 넣고 본론 마지막에 반대 의견을 넣으며 이를 재반박하고 결론은 짧게 마무리할 수도 있다. 개인의 선택이지만 하고싶은 말은 결론은 무조건 깔끔하게 지금껏 내가 해온 주장의 안에서 끝내야 한다.


결국 명확한 야마를 가지고 남들과 다른 참신한 서론 - 팩트와 통계를 논거로 한 본론 - 가볍게 마무리 하는 결론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본론 3~4 문단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각 문단마다 야마를 명확히 정하고 전 문단의 끝문장과 다음 문단의 앞문장을 잘 연결해주자. 이건 직접 써보면서 체득해야 한다. 결국 언론사 논술 시험에도 다독 다작 다상량이 필수다. 내가 더 열심히 읽고 쓰고 토론하고 생각하면 어떤 문제가 나와도 자신있게 남들과 다르게 쓸 수 있다.  




논술 고사장에서 주의할 점. 일단 분량을 지켜야 한다. 분량이 부족하거나 넘치면 감점 요인이다. 연필로 미리 써볼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개요를 명확히 짜고 바로 볼펜으로 글을 쓰자. 화이트는 지참하되, 필요할 때마다 빌려주는 회사도 있다. 무엇보다 시간 배분에 공을 들이자. 개요만 그럴싸하게 짜놓고선 시간이 부족해 글을 완성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니..


이 글을 보고 자신의 논술을 또 메일로 보내는 수험생이 있을수도 있는데 ㅠㅠ 미리 죄송합니다. 저도 바빠서요.. 다음 글에서는 논술보다 자유로우면서 또 더 어려운 작문 쓰는 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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